도시농부 황용씨가 자신이 캔 큼지막한 고구마를 들어 보이고 있다.
10월 중순, 고구마를 거뒀다.
작업은 의외로 힘들었다. 줄기를 낫으로 베어 모두 걷어내고 고구마가 있을 법한 곳을 호미로 파냈다.
가장자리부터 살살 파야 하는데, 요령 없는 우리 초보 도시농부들은 아무데나 푹푹 찍어 버려 ‘천금 같은’ 고구마에 상처를 냈다.
반만 머리를 내민 고구마를 뽑겠다고 잡아당겼다가 뚝 부러진 일도 부지기수였다.
“(여자나 고구마나) 힘으로 하려고 하면 안되고, 살~살 달래듯이 해야죠!”
유부남 손장희씨(32)가 총각 황용씨(36)에게 자신이 결혼 선배임을 은근히 과시하며 놀린다.
한시간 넘게 흙과 씨름하니 수북이 고구마가 쌓였다.
철없는(?) 우리 초보농군들은 큰 고구마만 보면 “우와~ 크다!” 하고 환호성을 질렀는데, 이를 보고 노희선 도시농부학교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큰 고구마를 사진 찍어서 올리면 농사 잘못 지었다고 혼나요. 너무 크면 상품성이 없거든.”
하지만 내다 팔 고구마도 아닌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큰 고구마도 내가 키운 것이요, 작은 고구마도 내가 키운 것이니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찐고구마의 짝꿍은 바로 김치. 고구마와 함께 먹기 위해 50일 정도 키운 알타리무를 뽑고 빽빽한 갓을 솎아 김치를 담갔다. 알타리무를 잘 손질해 절인 뒤 김치를 담그는 게 꼭 11월 중순의 김장 예행연습 같았다.
도시농부 손장희씨가 보온을 위해 배추를 묶고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꽤 힘든 작업이다.
어머니는 “익혀서 먹어야 더 맛있다”며 식탁 위에 김치통을 내놓으셨는데, 곶감 빼먹듯 오며가며 하나씩 손을 대는 나와 아버지 탓에 김치통은 며칠 안 지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무튼 달콤한 고구마를 한입 크게 베어 물어 목이 멜 즈음, 알타리무를 아작아작 씹어 삼키는 그 맛이란!
고구마를 거둔 다음주부터는 무의 영양분이 뿌리로 가도록, 아래로 처진 무청을 무 하나당 매주 서너장씩 땄다. 무 수확 전 매주 나오는 무청은 훌륭한 반찬거리다. 무청은 햇빛에 2~3일 바짝 말렸다가 줄줄이 엮어 그늘에 보관하거나 삶아서 냉동보관하면 된다. 어느날, 무청을 열심히 따는 나를 보고 밭 식구 홍석경씨(56)가 한마디 했다.
“인경아~ 적당히 따라! 옛날에 누가 ‘무 이발시키라’고 하니까 무청을 하나도 안 남기고 죄다 따서 스님 머리를 만들어 버렸다지 뭐냐~!” 밭에 오면 웃음이 터지지 않는 날이 없다.
10월 마지막주엔 서리가 오기 전 보온을 위해 배추를 묶어 주었다. 쪼그려 앉아 양손으로 끈을 잡고, 배추를 안듯이 감싸 매듭을 지으면 된다.
그런데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그런지 배추통은 왜 이리 크고, 겉면에 가시는 또 왜 그리 많은지…. 혼자 열포기 정도를 잡고 끙끙대고서야 많은 전업농들이 이 작업을 생략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난 한가한 도시농부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배추와 씨름했다. ‘놀면 뭐해, 밭에 왔으면 이거라도 해야지!’
곧 김장철이다. 우리 밭은 11월 중순께 밭 식구들이 다 함께 김장을 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설렌다. 내가 공들여 키운 배추·무로 담그는 김치는 ‘월매나’ 고소할까나!
김인경 기자 wh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