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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자료/식물 이야기

대나무분재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퍼온글]

한아름정원 2012. 10. 20. 00:32

대나무 분재

 

 

 

  담양은 예로부터 대나무가 유명합니다.

고유의 대나무 문화가 이어지고 있고, 이를 계승시키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읍니다. 친환경 소재인 대나무 제품이 플라스틱 제품으로 대체되고 중국산 경쟁에 밀려 소비가 없다보니 생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관계기관에서는 각 분야별로 명인을 두어 명맥이나마 유지코자 노력하고 있으나 이도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고민이랍니다. 새 집을 지으면 정원수로 좋을것같아서 대로 분재를 만들어 봤읍니다

 

 

 

 

 

 

 

 

니트

2010/12/01 22:30

 

와~넘 멋지네요
분재 만들기 쉽지 않을텐데~
대단 하시네요^^
아~그리고 한가지 여줘 볼께요
대나무에 대해서 잘 아시는듯 해서,,,
저희집이 주택인데~
대나무를 심었다가~다 잘라 버렸는데요
그래도 자꾸만 여기 저기서 잎이 올라 옵니다
마당도 좁은데~
어떻게 대나무를 완전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초제를 뿌리면 될런지,,,
대나무 작품앞에서 이런 질문 죄송 합니다,,

  • 2010/12/02 08:29

     

    니트님!반갑습니다,번거롭지만 대나무밑을 뿌리가 나올때까지 파고 뿌리를 들고 위로 잡아
    올리면 따라 올라옵니다,대뿌리는 지하경 45cm이내만 뻗습니다,생육이 왕성해서 한번 번지면
    걷잡을수 없으니 속히 파내야 합니다,일년에 보통 15m이상도 뻗습니다,분재를 큰 화분
    에 심어서 묻거나 4~5년에 한번쯤은 뿌리를 정리하고 다시 심으면 됩니다,,^^

  • 2010/12/01 22:55

     

    마당에 그냥 땅에다 심었서요
    팔수도 없습니다
    보도블럭 밑으로 파고 들어가 있는지라~
    제초제를 일년내내 붓다 싶히 하면 죽지 않을까요
    대나무 사계절 낸 푸른잎을 볼땐 좋았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나뭇잎이 올라 오니~
    어찌 할수도 없고,,,,

  • 2010/12/01 22:53

     

    오.. 색다른 멋이 있네요. 아름다워요.

  • 2010/12/01 23:26

     

    겨울에도 보는 녹색의 즐거움이 대나무를 칭찬할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땅밑으로 번지는 뿌리는 대단한 힘이 있더군요.

  • 2010/12/02 08:33

     

    대나무 뿌리를 보면 2~5cm의짧은 마디 마디에 생장점이 있어서 생육이 왕성하죠,대나무가
    올라오는 나무(죽순)부근을 10cm정도 파고 근사미 100배액을 만들어 흥건하게 부으면
    그부근은 몇마디 부페되어 고사합니다,죽순 올라오는 곳마다 약을붇고, 조경수 5m이내
    는 약을치면안됩니다, 보도블럭을 들춰내고 뿌리를 제거 해야 합니다,ㅎㅎ보이는 즉시 실행하셔요,,^^

  • 2010/12/02 08:40

     

    어머나..대나무를 저렇게도 키우는눈요. 처음보았습니다.

  • 2010/12/02 20:28

     

    특이하네요. 대나무 잎은 저리 무성히 안자라던데.... 가지에 몇개씩 달리던데,,, 멋있습니다.

  • 2010/12/02 20:52

     

    네에~맞습니다,위의 대나무는 생장점을 억제하여 크기를 3~5배를 줄여서 만들었기 때문이죠,
    물론 생장 조절제나 억제제를 쓴건아니고 대나무특성을 이해하고 생장축인 껍질(죽피)를 어린
    죽순때 매일 한두개식 까주면 마디가 짧아지고 가지사이가 촘촘한 분재를 만들수 있읍니다,대
    밭 부근에 사시면 아무라도 할수있는 단순한 작업으로 정원에 심으면 특색있는 정원수가 됩니다,,^^

  • 2010/12/05 17:21

     

    유리 항아리를 집어 씌우면 꼬불꼬불 해 질까요? 또 한가지 맹종죽을 소재로 쓰면 마디의 간격을 더 줄이고 굵기는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요?.

  • 2010/12/05 19:56

     

    물님!안녕하세요?맹종죽을 분재로 만들수있읍니다,직경 6cm이상 되면 어떤종류의 대도 다 만들수있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만들기 쉬운 종류는 분죽(솜대,감죽)입니다,맹종죽은 몇그루면 몰라도 많이 만들지 못
    함니다,맹종죽의 뿌리는 억새고 질기기 때문에 本(뽕)을 뜨기에 힘이듭니다,꼬불 꼬불하게 하는것은 다른
    방법이 있읍니다,유리항아리나 여타의 방법으로는 그렇게 (꼬불 꼬불)되지 않고요,여기는 온라인상이라
    말씀 드리기 그렇습니다,저는 아니지만 업으로 하는 분 들이 있기때문에,,, 어느때라도 물님께서 담양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저의 노하우를 전부 전수해 드리겠읍니다,그것도 꽁짜로,,정말입니다,,^^

  • 2010/12/09 11:44

     

    딱 제취향입니다..몆주 구입원합니다..가능하시면 연락부탁드려요..010-6331-8718

  • 2010/12/16 22:01

     

    더 자라지 않고 딱 저만큼만 자라면 이쁘겠네요.
    담양가면 죽통밥 해서 먹는 그 대나무인가요?

  • 2010/12/17 07:22

     

    이 대나무는 더이상 자라지 않습니다,평생 클것 다 컸으까요,
    그렇습니다,현재 담양에서 재배되는 종류는 1,왕대 2,솜대 3,맹종죽 4,오죽
    등 이며, 대나무박물관 전시포에는 수십종의 대나무(주로외래종)가 전시 되
    고있으나 위의4종이 대세를 이루고 있읍니다,죽통밥으로는 왕대 맹종죽
    솜대가 쓰입니다,위대분재는 솜대로 만들었읍니다,

  • 2010/12/28 13:27

     

    정원에 쭈우욱 심으면 분위기 끝내주겠어요.
    촘촘한 잎이 넘 보기좋아요.

  • 이색 대나무를 찾아서....

    집 주변 사방이 온통 대나무 분재로 둘러 싸여...

    “이 키 큰 대나무를 어떻게 이처럼 앙증맞게 기를 수 있을까 ?”

     

     

    “이 키 큰 대나무를 어떻게 이처럼 앙증맞게 기를 수 있을까?”

    “집안 뜰에 대규모의 대나무분재를 가꾸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차 방문한 지난 주말, 기자는 마치 걸리버여행기의 소인국에 와 있는 느낌마져 들었다.

     

    키가 다 자라면 15~20m이상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을 왕대, 분죽 등 수백그루의 키다리 대나무들이 1m 안팎의 앙증스런 모습으로 뜰안 곳곳에 옹기종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까닭이다.

    수북면 대방리에서 5년째 대나무분재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종식씨는 기자의 인기척에도 아랑곳 없이 대나무 분재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이 중 일부는 분에 옮겨 심어져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분재 대나무들이 처음 죽순을 낸 자리에 그대로 자라고 있어 신선함과 더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떻이 많은 대나무들을 분재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종식씨는 “오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처의 고향인 담양에 정착한지 올해로 7년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주변이 온통 대나무 천지여서 처음에는 취미삼아 분재를 시도해 봤는데 잘만 하면 고부가가치 상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인 분재 만들기에 뛰어 들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대나무 분재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대나무는 마디를 통해 생장하기 때문에 처음 죽순이 올라 올때 줄기 마디를 손상하지 않고 얼마나 잘 껍질을 벋겨 내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을 제대로 깨닫는데 수년이 걸렸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기자가 “이 귀한 분재들을 그냥 집마당에 심어 놔 두기에는 아깝지 않냐?”고 묻자 그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몇그루씩 사가는 사람도 있고 최근 군청에서도 보고 갔다”며 “언젠가 이 대나무 분재들이 요긴하게 쓰일 날이 있지 안겠냐”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아울러 그는 “대나무분재가 담양의 또 하나의 명물로 고부가가치 아이템이 되기 위해선 지금 보다 좀 더 키를 축소하고 수형잡기 등 한차원 상품성을 높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사실 집앞에 소유하고 있는 수천평의 대밭을 모두 분재로 가꿔 공원을 조성해 볼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분재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공력을 생각해 보니 혼자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고장이 웰빙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대나무에 반해 죽녹원 등 담양을 찾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노하우를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내비쳤다

     

     

     

    담양주간신문/ 김관석 記者

    [출처] 담양특집 - 대나무 분재를 만드는 사람 이종식 씨|작성자 청학산방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고재흠


     

    푸른 산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집의 뒤란에는 푸른 대밭이 있었다.
    뒷산 숲 속에서는 온갖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고 있었고, 풋풋한 냄새와 이끼 낀 수목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있어서 좋았다.

    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 더불어 뒷산 노적봉(露積峰)을 자주 찾았다. 노적봉은 변산반도의 많은 산봉우리 가운데 유독 독립된 산으로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우리 마을을 감싸안은 채 의연한 자태를 자랑하고 서 있었다. 산 중턱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웃마을도 눈에 잡혔다. 또 숲 사이로 파란 하늘도 보였다.


    숲 속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한줄기의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언덕을 가로질러 동편 하늘에 쌍무지개 걸렸었다. 그 무지개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때 나는 그 무지개에 꿈을 싣고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레몬 빛 노을이 보랏빛으로 물들면 석양 속의 숲들은 찬연히 빛났고, 빗방울들은 나뭇잎 위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었다.


    내가 살던 집은 초가 4칸 겹집으로 남향이었고, 우측은 아주 옛날에 지었다는 행랑채가 5칸이었는데 기둥은 큰 재목을 써서 궁궐 같았다. 6대를 이어오며 내리 살던 집이었다. 집 뒤에는 대나무 밭이 있어 운치가 아주 좋았다. 조상들로부터 수백 년 동안 물려받은 집이어서 금 쪽 같이 여기며 살았다. 마을 사람은 물론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 집을 찾아와 대나무를 몇 개씩 얻어가기도 했었다.

    우리 집안은 대나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전통적 유교를 숭상하는 집이어서 인지 할아버님과 아버님은 학문이 높은 학자로서 부안 지방에서는 널리 알려진 분들이셨다. 할아버지 호는 죽와(竹窩), 아버지 호는 죽헌(竹軒)이시다.
    나와 깊은 친분을 맺고있는 서예가 한 분이 있다. 이 지방은 물론 경향각지에서도 명성이 높은 서예가 치당(痴堂:金圭完) 선생이 그분이시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신 치당 선생께서 나이가 들면 호가 있어야 한다면서 웃어른의 대죽 자를 따서 나에게 죽촌(竹村)이라고 호를 지어주셨다. 집 뒤에는 대나무 밭이 있고 3대의 호(號)에 대죽 자를 넣어 지었으므로 대나무와는 밀접한 인연이 있는 셈이다.


    평소 나는 대나무 집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쭉쭉 뻗은 대나무가 온 집을 감싼걸 보면 괜스레 마음이 든든했다. 언제나 푸른 대나무는 나에게 자기네처럼 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뒤란 대 숲의 기운이 내 몸과 마음에 전이되는 것 같아 흐뭇했었다.


    무엇보다도 대밭의 묘미는 죽순(竹筍)에 있다. 묵은 잎을 제치고 웃자라는 어린 싹 곁에서 나의 희망도 함께 자랐다. 어른들은 그 대나무를 베어내어 생활도구를 만들고, 아이들은 가늘게 켠 대나무 살로 연을 만들어 날렸다. 하나의 죽순이 돋아 견고한 결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바람과 싸워내야 하는가를 나는 그때 몰랐었다. 옹골찬 모습으로 대나무가 제 꼴을 갖추기까지 대나무의 속살 말라붙는 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성격이 곧은 사람을 '대쪽' 같다고 한다. 상황에 굴하지 않고 어떤 일에 소신을 밝힐 줄 아는 사람의 기개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자칫 교만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아도 옳은 소릴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바로 조선시대의 '조광조(趙光祖)' 같은 분은 대쪽의 표본이라 할 만 하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여 바른 정치를 외치다가 목숨을 잃긴 했지만, 그 분의 기개는 오늘날까지도 역사의 귀감이 되어 회자된다. 그러나 요즘엔 절개의 상징인 대쪽의 의미마저 흐려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여 사회에서 차츰 설자리를 잃어간다.


    올곧은 사람을 생각하면 대나무가 생각나고 따라서 죽순(竹筍)이 떠오른다. 옛날 우리 집에선 대밭을 모시 밭, 감나무 밭과 더불어 생금(生金) 밭 또는 생재(生財) 밭이라고 불렀다. 한번 심어 놓으면 크게 일손들이지 않아도 철따라 봄에는 대나무, 여름에는 모시, 가을에는 감으로 상당한 수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철없던 시절에 동네 아이들과 봄철 죽순이 한참 솟아날 시기에 대나무 밭에서 말달리기 놀이를 하느라 1년 농사를 망친 적이 있었다. 그때 엄하신 부모님 앞에 종아리를 걷어올리고 매를 맞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대는 매년 이른봄 3년 생을 모두 베어내고 보토(補土)를 하여야 성죽(成竹)이 된다. 벤 대는 죽세공을 불러 죽제기물(竹製器物)을 만들어 생활용기로 활용하곤 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귀대 받던 대나무도 요즘은 현대문명에 밀려 쓸모 없는 식물로 전락하고 말아 아쉽다.


    제멋대로 뻗어 가는 대나무 뿌리를 보면서 시대의 변화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윤리의식이 희박해져 가는 요즘, 올곧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 이재(利財)를 앞세우다가 사회의 지탄을 받은 사람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대쪽같이 굳은 절개를 지키다 목숨을 버린 이들이 어찌 조광조, 정몽주, 사육신뿐이던가?


    나는 대쪽같이 고결한 사람이 그리울 때면 사철 푸른 대나무를 생각한다. 아울러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귀띔해준 한 선배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4군자의 하나다.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사시사철 푸르고 곧으며 속을 비운 대나무의 속성을 본받아 마음을 닦는 본보기로 삼았다.


    지난봄 전주 국립박물관의 문화유산대학에 수강한 적이 있었다. 첫 강의부터 시작하여 연3일간 대나무에 관련한 내용의 강의가 이어졌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문헌상 대나무가 등장하는 이야기와 사람살이의 정신적인 면과 결부시켜 볼 수 있는 최초의 설화 죽엽군, 만파식적, 죽통미녀 등을 비롯하여 실생활의 혜택 등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선인들의 지혜에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2002피파(FIFA) 한일 월드컵 전주 개최를 맞아 이를 기념하고 성공적인 문화축전을 기원하는 특별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우리 문화 속의 대나무'를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대나무 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인식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었다. '백자중문절형병'과 이정의 '통죽도' 등 선인들의 정신세계와 생활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유물 300점이 전시되었었다.

     

    문학작품으로는 이인로의 '죽취일이죽' 이곡의 '죽부인' 윤선도의 '오우가' 등이 대표작이라고 했다. 나는 대나무 유물 수가 그렇게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놀라움이자 기쁨이었으며, 그동안 우리 것에 무관심했던데 대한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대와 관련한 선열들의 유적과 호와, 이름, 자 등 문화유적은 늘 여기저기 수없이 많이 있다. 선죽교, 오죽헌, 매죽헌, 도산서원의 대나무 등 많기도 하다.


    예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 상장(喪杖)을 짚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 상장을 짚었다. 아버지를 하늘에 비유하고, 대나무 또한 겉이나 속이 모가 없이 둥글둥글하여 하늘에 비유하였으며, 대나무는 사시처럼 푸르름을 변치 않으므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평생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대나무 상장을 짚었던 것이다.
    대나무에 대하여 생각을 모으다보니 선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그렇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바로 대나무다. 올곧은 선비의 기상을 지닌 대나무야말로 말없이 우리에게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준다. 대나무는 무언의 스승이다. 고향 옛집 뒤란의 대나무를 옮겨올 수는 없을 지라도 대나무 분재 하나쯤 마련하여 서재에 들여놓고 아침저녁으로 눈을 맞추며 가르침을 받아야 하려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