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꿀벌이 어디로 갔을까. 텅 빈 벌통을 소각하며 울부짖는 농민들에게 물어봤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랬다.
벌 집단 폐사의 원인으로는 낭충봉아부패병이 꼽힌다. 일종의 벌 독감 바이러스다.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산골짜기에 사는 토종벌에까지 바이러스가 들어왔다는 게 아이러니다. 환경오염 탓이다. 야생벌도 예외는 아니다. 내년엔 종벌(여왕벌)도 없다고 하니 멸종 얘기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벌은 식물을 수정시키는 매개체다. 생명의 가교인 셈. 벌이 사라지면 꽃도 열매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동물은 물론이고 결국 인간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성경에도 벌은 수시로 등장하는 유익한 곤충이다. 벌이 생산하는 꿀은 풍요의 상징이다. 꿀이 마른 현장을 찾아가봤다.
경남 산청의 한 굽이진 언덕을 올라갔다. 경사가 가팔라 힘겨워하던 소형 자동차는 “웅”하며 소리를 냈다. 길이 제대로 포장되지 않아 차체가 덜컹거렸다. 중턱에 이르자 자그마한 십자가 탑이 솟아 있었다. 차문을 열고 왼발을 땅에 딛자마자 귓가에 ‘앵앵’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벌이었다. ‘오랜만에 사람이 찾아왔다’는 듯 벌 두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반겨줬다.
그때 한 중년여성이 “아이고 멀리서 오느라 고생하셨네”라며 인사했다. 안채로 들어섰다. 손님이 찾은 건 오랜만인 듯했다. 그는 흰색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밥은 먹고 오셨나? 밥 안 먹었으면 칼국수라도 좀 빨리 만들까?” 사양하자 끓인 물을 컵에 따랐다. 꿀차였다. “여기서 나온 꿀입니다.” 컵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진한 향과 맛이 일품이었다. 호호 불어 한 모금 넘기자 달콤함이 혀의 침샘을 자극했다. “토종벌꿀이라 더 진하고 맛있을 겁니다.”
지난 14일 만난 전방자(66·여)씨는 이곳 산청기도원에서 15년째 토종벌을 키우고 있다. 시설이 낙후돼 기도원을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지만 품질 좋은 토종벌꿀로 근근이 살림을 이어가고 있다. 전씨와 기도원장인 언니 전숙순(74)씨가 을씨년스러운 기도원을 지키고 있었다.
꿀이 마른다
독한 놈이 찾아왔다. 토봉(土蜂:토종벌 농사)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처음 맞은 어려움이다. ‘벌 감기’, 누군가는 ‘벌 에이즈’라고 불렀다. 보통 10월 말에서 11월 초가 되면 각 벌통에 쌓인 토종꿀을 뜨곤 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창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을 때지만 올해만큼은 다르다.
지난 7월부터 전라도를 시작으로 병이 돌기 시작했다. 애벌레들이 성충이 되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약도 없었다. 아무리 소독해도 벌의 죽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인삼과 홍삼엑기스가 벌을 강하게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다보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씨가 한숨을 쉬었다. 보상 문제조차 논의되지 않아 전씨와 언니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기도원 주위를 전씨와 함께 둘러봤다. 기도원을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벌통의 숫자는 족히 200개가 넘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이 꿀을 나르고 있는 통은 일곱 개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벌의 움직임은 둔했다. “지난해만 해도 200개 대부분의 벌통에서 꿀이 만들어졌어요. 딱 이맘 때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 계속 꿀 담아내고 벌통 정리하고 했으니까.”
한산하고 조용했다. 텅 비어 있는 벌통은 단내를 맡고 온 말벌의 차지였다. 일벌보다 두 배 이상 몸집이 큰 말벌은 벌을 하나씩 잡아 죽이며 통 안의 꿀을 마음껏 빨았다. “말벌이 힘이 없는 일벌을 통 밖으로 끄집어내 죽인 뒤 나무 밑에 버려요. 내 새끼들 죽어나가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원.” 몇몇 말벌은 안채에서 꿀을 먹고 나온 사진기자의 입으로 달려들었다. “원래 벌들이 부지런히 벌통에 꿀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으면 말벌이 숫자에서 밀려서 얼씬도 못하거든. 일벌들이 알아서 저 놈들을 쫓아줬는데 지금은 손을 쓸 수가 없네.” 전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벌이 없어지면 생태계 전체에 교란이 생긴다. 벌은 꿀을 나를 뿐만 아니라 꽃가루도 옮긴다. 수정의 매개체다. 벌이 없으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은 아름다움을 뽐낼 수 없다. 사람에게도 피해가 온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과실 중 상당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도원 인근의 감나무와 밤나무에서 탐스러운 열매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년엔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영글지 않은 채 땅에 떨어진 밤송이들이 수북이 널려 있을 뿐이었다. “이맘때면 감도 먹음직스럽게 주황빛을 띠고 밤도 많이 열리죠. 밤송이에 찔리면서도 까서 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피해가 올해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내년 토봉도 기약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전 해 왕성한 활동을 통해 건강해진 벌이 종자 벌 역할을 해야 하지만 벌이 전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자 벌을 살 수 있는 곳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자식 같은 벌
“기도하는 시간 이외의 대부분을 벌을 보며 지냈죠. 아들 키울 때보다도 애착이 강했지.”
기도원은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는데다 공기 맑고 주위에 나무도 많아 토봉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산청군청은 95년 기도원 인근을 토봉단지로 정했다. 꿀의 품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김진홍 목사의 두레마을에도 이곳의 꿀이 상당 기간 제공됐다. 기도원을 운영하며 자매가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고 공기가 좋을 땐 해마다 700∼800ℓ 정도의 꿀을 얻어냈어요.” 그는 토봉은 사람의 손이 많이 들지 않아 나이 든 사람이 하기에 어렵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인조 벌집을 만들고 그 안에 벌이 꿀을 담는 양봉과 달리 토봉은 벌이 직접 집을 져 꿀을 채우기 때문이다.
묵묵히 벌을 바라보고 있던 전씨가 한마디 했다. “벌을 바라보고 있자면 예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처음엔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벌은 평생 일만하고 자기를 희생하니까. 그러면서 꿀을 만들어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죠.”
전씨에게 벌은 평생 남에게 베풀기만 하는 곤충이다. 그는 가끔 토종꿀로 피부 마사지를 한다고 했다. “시간 되면 우리 기자님들도 한번 해보면 좋아요. 내 피부 보세요. 50대 중반 피부 같나요?” 정말 그랬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피부를 자랑했다. 벌에게 고마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듯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내주는 벌의 일생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인간들이 벌처럼 행동하면 다툼이 일어날 리가 없지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벌은 몸소 실천하고 있으니까요.” 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봤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벌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며 차곡차곡 꿀을 쌓았다. 여왕벌은 부지런히 분봉(分蜂:새끼 여왕벌이 일벌의 반을 데리고 새집을 찾아 벌통을 떠나는 것)하며 여러 곳에서 꿀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일벌은 꽃과 벌통을 왔다 갔다 하며 얻은 꿀을 통에 쌓는다. 벌이 벌통을 들락거리는 사이 수분은 증발해 꿀 결정체가 쌓인다. 전씨는 “하나님의 섭리가 정말 신기하고 대단해요”라고 했다. 그는 이를 보며 신앙적으로도 성숙하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전씨는 “인간이 환경을 어지럽혀 벌이 죽어가는 것이니 더 안타깝지”라고 속상해 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 때문에 망가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는 요즘 새벽, 정오, 저녁에 벌을 위해 기도한다. “가나안 땅처럼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게 합력해 선을 이룰 수 있겠죠.” 근심을 뒤로 한 채 그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산청=글 조국현 ·사진 이병주 기자 jojo@kmib.co.kr [2010.10.20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