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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요리 - 감태와 김, 파래 같은 바다 이끼의 일종이지만 이들보다 훨씬 곱고 달다

한아름정원 2012. 1. 28. 01:32

매생이 아… 바다향 그맛


 

 
 매생이는 젊디젊은 아가씨 같다. 생긴 것도, 색감도, 촉감도, 향도, 맛도 모두가 부드럽다. 심지어 뭉쳐 놓은 모양새조차 삼단 같아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여인의 뒷머리채마냥 단아하기 그지없다. 시장 좌판에 깔아 놓은 매생이를 보면 마치 쪽진 머리를 한 여인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은근히 그 얼굴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매생이는 조류가 완만하게 흐르고 물이 잘 드나들며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만 자라는데, 이 까칠한 특성조차도 예민한 여인의 심성을 그대로 닮았다. 태풍이 일어 바다가 뒤집어지거나 연안에 오·폐수라도 유입될라치면 매생이는 변심한 연인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런 이유로 매생이는 환경오염의 척도로 평가받으며 전남 장흥·고흥·강진·완도 등 남해안의 청정한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장흥의 진공품으로 기록돼 있을 정도다. 임금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양식장에는 골칫덩이였다. 김발에 잘 붙어 자라기 때문에 김 양식 어민들에게는 유기산 약품으로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운 존재였던 것. 그럼에도 탄수화물·단백질·지방·비타민·무기염류 등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고단백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우주식량으로 지정될 만큼 웰빙 식품이 됐다. 김 대신에 매생이를 양식하는 어민이 느는 역전이 일어난 이유다.

 매생이는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3개월 정도 채취가 가능한데, 기온이나 환경에 의해 채취량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가격변동이 비교적 큰 편이다. 따뜻한 남해에서 서식하지만 가장 추울 때라야 잘 자라는 이 이상한(?) 성격의 해조류는 최근 들어 온난화의 영향으로 수확량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매생이는 감태와 김, 파래 같은 바다 이끼의 일종이지만 이들보다 훨씬 곱고 달다. 김은 말리고 파래는 새콤하게 무쳐 먹지만 매생이는 주로 국을 끓여 먹는다. 매생이는 채취하고 3일이 지나면 맛과 향이 변하는 데다 산에 약해 식초에 버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도 말이 국이지 사실은 죽에 가깝다. 물을 많이 넣어 ‘국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물은 최소한으로 하고 부드러운 ‘매생이 자체’를 즐긴다. 볶은 굴에 물을 적당히 넣고 팔팔 끓인 다음 매생이를 넣은 후 한소끔 끓여낸다. 이때 그냥 끓이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식으로 말하자면 국자로 휘휘저어 ‘덖어’ 내야 한다. 잘 덖다가 거품이 뽁뽁 올라오면 그때 불을 끄고 참기름 몇방울 뿌리면 완성이다.

 향내와 촉감, 모양새는 여인네와 같이 부드럽지만 먹을 때만큼은 예쁘게 먹기 힘들다. 한술 뜨면 올들이 엉켜 숟가락에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후후 불어 한입 넣으면 씹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부드러운 매생이의 촉감을 느낄 새도 없이 그냥 후루룩 넘어간다. 바다향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수제비나 칼국수에 넣거나 전으로 부쳐 먹기도 한다. 라면에 넣어 먹어도 좋다.

 매생이에는 아스파라긴산이 콩나물보다 3배나 많이 들어 있어 해장에도 그만이다. 이밖에도 니코틴을 중화해 주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술·담배 좋아하는 남자들은 주목하고 볼 일이다.

 매생이국은 끓여도 연기와 김이 잘 나지 않는다. 실보다 가늘고 촘촘한 올이 빽빽하게 엉켜 김을 머금고 있어서다. 보기에는 짙은 색깔 때문에 오히려 차가워 보인다. 그래서 미운 사위가 오면 슬그머니 내놓는 음식이었다. 딸 속 썩이는 사위, 뜨거운 줄 모르고 먹었다가 ‘예라이~ 입천장이나 데어라’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장모는 “어이쿠. 자네, 어디 데인데는 없나” 하고 준비된 연기를 하고 나서는 아마 딸에게 윙크라도 한번 날렸을 것이다. 그러니 미운 사위에게는 경고의 음식이요, 더할 데 없이 사랑스러운 사위에게는 시원한 해장국인 두 얼굴의 음식이 바로 매생이었다.

 “매생이 산지에는 오히려 전문점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어디서나 늘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지요. 철이 되면 메뉴판에 없어도 매생이 달라고 하면 어디서나 줍니다. 마치 된장같이 친근한 음식이지요.”

 전남 완도 중앙시장에서 진미횟집(☎061-553-2008)을 운영하는 박종칠씨의 말이다.


 시인 정일근씨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고 썼다. 그리고는 그 뜨거움에 대해 말했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 훌훌 소리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매생이는 부드러움 속에 뜨거움을 숨긴, 곱디고운 사랑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