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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따라 떠나는 풍경(風景) 김유정역 동백꽃, 봄봄, 산골나그네

한아름정원 2011. 3. 9. 14:08

봄바람 따라 떠나는 풍경(風景) 김유정역 동백꽃, 봄봄, 산골나그네, 소낙비

 

 

김유정은  1908년 2월,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김춘식과 청송 심씨의 2남 6년중 차남(일곱째)으로 태어났다.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서유아기에 서울 종로로 이사한 뒤 일 곱살에 어머니를, 아 홉살에 아버지를 여윈뒤 모성결핍으로 말을 더듬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재동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당대 명창 박록주를  열렬히 구애求愛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달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김유정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읜 슬픔은 그의 자전적 소설 「생의 반려」 속에 잘 나타난다. 매일  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던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어머니를 닮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김유정의 첫사랑 박록주이다. 그때부터 김유정은 박록주에게 2년여 동안 광적인 구애를 했으나, 그의 애절한 마음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대의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록주가 네 살 연하의 김유정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었다.

 

   「 어디 사람이 동이 낫다구 거리에서 한번 흘낏 스쳐 본, 그나마 잘 낫으면 모르거니와, 쭈그렁 밤송이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럿두 서루 눈이 맞아서 달떳다면야  누가 뭐래랴 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너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달동안 썼다.」〈생의 반려〉중에서
  
   박록주는  본명 명이(命伊), 경북 선산(善山)출생으로 12세 때 박기홍(朴基洪)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고 뒤에 송만갑(宋萬甲),정정렬(丁貞烈), 유성준(劉成俊), 김정문(金正文) 등에게 배웠다.

 

   1937년 창극좌(唱劇座)에 입단하였으며,  1945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여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4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부가>의 예능보유자로 다시 지정된 그야말로 당대의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었다.

실연失戀과 학교 제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귀향한 김유정은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옴팍한 떡시루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지어 야학등 농촌계몽활동을 약  2년간 벌이는 가운데 일제치하의 30년대 궁핍한 농촌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된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게 된다.

 

    1935년 소설「소나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1등으로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선 입작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벌이는 한편,〈구인회〉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글쓰기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는 1937년 다 섯째 누이 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휘문고보 동창인 안회남에게 편지쓰기를 끝
으로 3월 29일 39세에, 새벽 달빛속에 하옇게 핀 배꽃을 바라보며 삶을 마감한다.

   김유정이 남긴 30여편의 단편 소설은 탁월한  언어 감각에 의한 독특한 채취로 오늘날 까지도 그 재미, 그 감동은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김유정 이야말로 소설의 언어에서나 내용은 물론  진술방식에서 우리 문학사에 다시 없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음을 뜻한다.

 

김유정문학촌 뜰에 서면, 금병산 자락에 푹 안긴 마을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금병산자락 아래 잣나무숲 뒤쪽은「동백꽃」의 배경이다.  맞은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야학터(「안해」)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잣자무숲으로 들어서면 실존인물이었던 「봄ㆍ봄」의 봉필이 영감이 살았던 마름집이 있다. 점순이와 혼례는 안 시켜주고 일만 부려 먹는데 불만을 느낀 주인공이 봉필영감과 드잡이를 하며 싸우는 모습이 막 눈앞에 그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 옆으로 김유정이 세운 간이학교 금병의숙이 있다. 건물 옆에는 당시 김유정이 기념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김유정이 코다리찌개로 술을 마시던 주막터도 남아 있다.

 

   멀리 들판의 팔미천에는 산골 나그네(들병이)가 남편을 숨겨 두었던 물
레방앗간(「산골 나그네」)터가 있다. 이들 작품과 함께「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금따는 꽁밭」 「산골」「만무방」「솥」「가을」
등 12편이 모두  이 곳 실레마을에 살았던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한 작품들
이었다고 한다.


   실레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는 금병산(해발 652m)에는  김유정 소설 제목을 딴 등산로가 산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을 소설속으로 이끈다. 실레 마을은 작가의 생가와 기념전시관은 물론 금병의숙이 있고,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인 소중한 김유정 문학의 산실이다.
 
   그럼 여기에서 잠깐 김유정의 소설속으로 들어가 보자.

   「“닭 죽은 건 염려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몽둥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빠져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듯 왼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동백꽃>에서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남쪽해안에 피는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꽃을 말한다고 한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꽃을 동백꽃 또는 산동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그전날 내가 사실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봄ㆍ봄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낯선 여인이 덕돌이네 집앞에 허기져서 쓰러진다. 덕돌이는 그녀를 구해 한 가족처럼 산다.  그러나 그녀는 밤만 되면 물레방아에 숨겨둔 남편을 위해 몰래 밥을 나른다. 그는 바로 문화재인 대금의 명인인곽파람이었다. 덕돌이는 가희를 사랑하게 되나,  가희는 곽파람이 부는 대금소리에 끌려 남편을 찾는다.」

 

 

〈산골 나그네〉에서

주인공인 ‘산골나그네’는 헐벗은 유랑민. 나그네는 산골의 어느 가난한 주막의 주인의 호의로 걸식한다.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작부노릇과 여러 곤욕을 치른다. 그러다 그 집 덕돌이가 함께 살자고 치근대자 몸까지 허락하고 주인도 그녀가 수입을 올려주자 집요하게 성례를 치르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모든 일의 수동적일 뿐 말이 없다. 그러던 중 여인은 덕돌이의 옷을 흠처 도주한다. 그녀에게는 병든 남편이 근처 폐가에 병으로 몸져 누어있었던 것이다. 사정을 알리 없는 덕돌이는 여인을 찾고 여인은 남편과 밤을 이용하여 산길로 달아난다.


이 작품은 희극적인 분위기 속에서 비극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거짓말도 하지 못하는 여인은 순박함과 은비녀를 베개 밑으로 묻어두고 가는 선량함 때문에 그녀의 대한 연민은 더욱 간절해진다. 이 작품은 다른 유정의 작품처럼 토속적 서민적 어휘에 구사 아이러니와 유머라는 김유정적인 기법을 보이면서 인간주의의 바탕을 두고 불행한 시대의 서민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떡>에서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 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별은 겹겹 산 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달구고 있었다. (생략)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춧잎에 부닥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는 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하였다.」

 

 

 

 

 

 

 

 

 

 

 

 

 

〈소낙비〉에서

김유정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畵的 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게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  주었다. 어리숭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애상적 哀傷的인 성격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독특한 문체가 특징적이다.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토속어와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비속어, 갖가지 비유와 풍부한 어휘 등으로 이어지는 정교한 조사법 등은 김유정 특유의 문체이다. 이러한 문체는 주로 우직하고 가난한 농민이나 무식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보여 주었다.
 
  「소낙비」에서는 '안말·싸리문·제누리·봉당' 등이 나오고,「산골」에서는 '떡머구리·버덩·지게·작대기' 등이 나오는데, 이 작품들은 방언· 토속어·비속어의 보고寶庫라 해도 좋을 것이다. 


   강원도 농민의 속어와 방언을 쓴 구어체는  작중 인물들의 생활 실체를 보여주는 주요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나아가 이런 문체는 도시가 갖는 세련미가 아닌 평범하고 속된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비속미卑俗美를 낳는다.

 

   비속미는 그의 소설에서 또 하나의 특징인 웃음의 철학, 웃음의 심리학을 시도한 것과 관계가 깊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이며 익살미가 있다. 이런 점은 대표작「동백꽃」에 잘 나타나 있고, 그 밖에 「봄봄」·「아내」등에서도 해학諧謔(익살스럽고 품위있는 농담,유머)이 자연스런 즐거움보다 슬픔과 어처구니없음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은 상당히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인데, 이때의 해학은 극단적 상황이나 조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덮어두는 역할을 한다.「아내」에서처럼 작중의 농민들은 속으로는 통곡을 삼키면서도 그 통곡을 웃음으로 바꾸어 표현한다. 여기서 해학의 미적 효과는 숭고미의 엄숙성을 부정하면서 생활의 중압감이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문단에서 최인호 소설가라면  부富ㆍ명예를 얻은 최고의 작    
가라고 볼 수 있다. 그 분도 지금 어려운 암투병중이라고 한다. 저작년 신
문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기자가 최인호 작가에게 지금 가장 하고픈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소설가 김유정씨가 살아 있다면, 그와 함께 밤지새워 강원도 막국수와 막걸리를 먹고 싶소.”라고 말하고 있다. 무슨 뜻일까?
 

                         *   *   *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김유정문학촌〉을 처음 찾은 그날도 하늘에 구
멍이라도 뚫린듯이 뿌옇게 비가 쏟아 졌다. 그 비속에서도 문학관 입구 토
담옆 덩굴에는 진한 황토빛「능소화」가 폭우속에 처량하게 피어 있었다.

 

   〈김유정문학촌〉의 뜰에는 철마다 꽃들이 피어난다고 한다. 겨울을 앞두고 묻어두었던 감자(봄감자)를 꺼낼 즈음 「동백꽃」의 생강나무 노란꽃을 시작으로 하여 양지꽃,제비꽃,할미꽃 등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난다.

 

 

 

http://blog.daum.net/hanarm/1651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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