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카와 디카의 세상구경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식물 자료/식물 이야기

연꽃의 유래(전설), 연꽃만큼 순수하고 티없이 맑은 빛깔의 꽃

한아름정원 2010. 12. 20. 17:45

연꽃의 유래(전설)

 


 

연못에 핀 연꽃의 청초한 모습을 보면 세상에 이처럼 깨끗한 것도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정말 연꽃만큼 순수하고 티없이 맑은 빛깔의 꽃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진흙탕에 핀 연꽃이지만 주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서 예로부터 '성자(聖者)의 꽃'이라 불리어 왔다.

연꽃은 웅덩이에서 자란다. 물이 있으면 우선 시원하다. 인도라는 열대성 기후대에 속한 땅에 사는 사람들은 물이 있는 인더스강을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불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터전, 즉 열반에 드는 것을 '물이 불을 끄는 일' 에 비교한다. 뜨거운 불기둥 같은 땅에서 더위와 고통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연못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최고의 안락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물 속에 고귀한 연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바램이겠는가? 그래서 연꽃을 부활의 상징으로 보았고 재생의 기운을 타고난 꽃으로 보았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의하면 '극락세계의 보련화(寶蓮華)에는 백천억 개의 잎이 있고, 그 잎에서는 수많은 광명이 비치며, 하나하나의 빛에서 부처가 나타난다'고 적고 있다. 또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에는 '목숨이 다한 뒤에 극락세계로 가거나 칠보로 장식된 연화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 고 했다.

불교 경전에서는 연꽃이 피는 세계를 낙원으로 본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에는 향수가 가득한 바다에 거대한 연꽃이 떠 있고, 그 연꽃 속에 비로자나여래가 사는 화장장엄세계해(華藏莊嚴世界海)가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와 일본에도 오래된 늪지나 연못에 연꽃이 널리 분포하고 있지만 언제부터 자라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5세기 경 일본의 웅략왕(雄略王) 때 중국의 연꽃이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그 이전에 한반도에서는 연꽃을 널리 재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연꽃은 처음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신성한 꽃이었으나 약용 또는 식용으로 쓰이면서 민간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광(李杀光)의《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안변 부사로 있을 때 심은 연꽃이 활짝 피었다고 적고 있다. 또 강릉의 함담지(稑嬓池)에 심어진 연꽃은 해를 걸러 꽃을 피우는 괴상한 연꽃이라며, 연씨는 백 년을 지나도록 상하지 않고 연근은 땅에 버려 두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시대 때는 전라도 김제와 만경에서 연(蓮), 마름(菱), 순채(蓴)가 많이 난다고 했다. 또 경산과 황해도 연백에서 나는 연실(蓮實)을 토산품으로 치고 있다.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연못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연꽃을 심어 연근을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즐겼을 것이다.

유래가 가장 확실한 연꽃은 시흥 강씨 고택의 연못에서 자라는 옥순(玉脣)이라는 품종이다. 백련으로 꽃잎 가장자리에 붉은 줄이 둘러져 있는 지극히 아름다운 꽃이다. 이 연꽃은 조선 세종 때의 명신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선생이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갖고 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간송미술관, 독립기념관, 아산 인취사(仁翠寺) 등지에 분양되었는데 해마다 고운 꽃을 피운다. 옥순을 심은 강희맹 선생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쓴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선생의 아우로 시·서·화 삼절로 당대의 이름을 더 높인 분이시다.

 

사숙재 선생은 《금양잡록(衿陽雜錄)》이라는 농업서적을 남겼을 정도로 식물학 지식이 뛰어난 분이시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중국에 갈 때마다 조선에 없는 백송이나, 회화나무, 석류, 좋은 품종의 매화, 모란 등을 갖고 왔다. 사숙재 선생이 얼마나 많은 식물종을 조선으로 갖고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옥순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