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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자료/성경이야기

성경에 나타난 일곱교회의 역사

한아름정원 2010. 9. 17. 18:03

성경에 나타난 일곱교회의 역사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는 1)유형론이자 2)초대교회 당시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존재하던 실제 지역교회를 나타내며, 3)2000여년 교회사를 예표하기도 하고 4)구원받고 거듭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휴거후 지상의 대환란에 남게 될 배도의 교회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3)번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럭크만 주석서중 해당 부분의 약본으로서 가톨릭 중심의 거짓 교회사의 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막기 위한 사탄의 전략은 크게 봐서 "외적 박해에서 내적 부패로"의 전환입니다. 이 전환은 기독교의 변질을 가져와 가라지가 알곡을 혼돈케 하는 역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네이버블로그 "두만강 여울목"에서 가져옵니다.


관련글1) -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역사(종교개혁전 숨겨진 교회사)

http://scepter.egloos.com/7195995

관련글2) - 일곱교회와 니골라당

http://scepter.egloos.com/7196092

 

▲ 사탄의 계략에 맞선 교회의 치열한 영적 전쟁의 역사


- 프롤로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신의 사람들(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즉 교회를 불러내셨다. 교회는 지상에서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으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로 구성되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거룩한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흑암의 권세자인 사탄 역시 하나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사탄은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불경견한 교리와 불경건한 자들에 의해 오염된 자들을 이용하여 교회들의 증거를 훼방해왔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기가 무섭게 사탄은 즉각 교회의 부패화 작업에 착수했다. 거짓 사도들을 일으켜(고후 11:13) 거짓 복음을 전파토록(갈 1:6-9) 했고 그 결과 거짓 신자들이 양산되었던 것이다(마 13:25). 2000년이 지난 지금 교회시대의 사탄의 사역은 절정에 이르렀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투쟁의 역사다. 이 투쟁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1◎ 에베소 교회시대


A.D. 90-96년경에 사도 요한에 의해 계시록이 쓰여진 이 후 교회사는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의 내용에 따라 영적으로 적용되어 흘러간다. 이 교회사는 하나님의 진영과 사탄의 진영과의 치열한 영적전쟁의 역사이다. 교회사의 첫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직후부터의 교회사로서 계시록 2장에 나오는 첫 교회의 이름을 따라 에베소 교회시대(A.D. 33-200년)라 부른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었고 사도들이 죽은 후(A.D. 100년 이전)에는 “사도 교부들”(Apostolic Fathers)이 계승했다. 이 교회의 역사에서 폴리캅(Polycarp), 이그나티우스(Ignatius),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 파피아스(Papias)가 사역했는데 우리는 후에 교회 사멸을 초래한 씨앗들을 보게 된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교부들”로 시작된다. 비록 사도 “교부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들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주신” 성경적인 믿음을 마침내 파괴하는 헬라 철학과 교회 전통의 씨앗들을 품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일단의 사람들이 자칭 “사도”(계 2:2)라고 하는 주장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사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초기 교회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A.D. 200년 때까지도 우리는 어떤 교회 지도자들이 사도들에게 “안수받고” 사도 직분을 계승했다는 주장을 보게 된다. 이 무리는 자기들이 교회를 지배할 때까지 계속 교회에 있었다. 이들은 “유일하고 참된 사도의 맥”을 주장하면서 자기들은 시몬 베드로에게서 “사도직을 계승”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도들이 아니며 거짓말쟁이들이다. 그들이 정말 사도직을 계승하였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도들은 “사도의 표적과 이적”을 행하기 때문이다(고후 12:12, 막 16:15-18). 어떤 사람이 자칭 사도라고 하거나 “사도직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면 여러분은 당장 그의 허풍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사도에게 부여된 “표적과 이적”을 행하지 않는다면 사도직을 믿는 자가 아니며 사도행전으로 돌아간 신앙인도 아니고,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주신 믿음을 위해 싸우는 자”가 아니다. 그는 거짓말쟁이다(계 2:2).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사도적 믿음”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늘 사도행전 2장을 근거로 삼는다면 그는 종교 사기꾼임을 알라. 어떤 사람이 “안수를 받고” 사도직을 계승하여 사도적 권위가 있음을 입증하고자 마가복음 16장을 근거로 삼는다면 그 역시 종교 사기꾼이다. 그들은 켐벨 추종자들이거나 여호와의 증인들, 몰몬 교도들, 또는 로마 카톨릭 교도들이지 사도들이 아니며 그들에게는 사도적 권위 같은 것은 없다. 그들은 사도들의 맥을 계승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유일한 권위는 그들의 교단 산하 기관들을 유지하는 돈, 주식, 사채, 담보, 이자 및 정치 운동 등이다. 이것이 그들의 힘이다. 그들은 아돌프 히틀러와 후르시초프가 지녔던 동일한 힘을 지녔으며 그들의 영적인 힘은 전적으로 죽어 있다. 그들은 무지한 사람들에게 지옥간다는 공포로 협박하여 교회 출석이나 “성사” 등을 강요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통제할 뿐이다. 이들은 사도들이 아니다. 거짓말쟁이들이다. 에베소 교회는 이 점을 알았기에 그들을 철저히 시험하여 내쫓았다.


초기 교회에 가해지는 첫 번째 비판은 그들이 정통이 아니라거나 교회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다. 에베소 교회는 총열처럼 그렇게 곧았다(여러분은 신학적으로 총열처럼 곧을 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총열처럼 그렇게 공허할 수 있다.). 에베소 교회는 강한 정통성을 지니고 일하는 교회였으며 성별되어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의식적이며 형식적으로 되어 가고 그 처음 사랑이 떠나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회개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매우 좋은 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니콜라파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다(니콜라파는 계시록 2:15에도 나온다.). “Nicolaitane”이란 낱말은 헬라어인데 Nicolaitanes에서 “니카오”(Nikao)는 지배한다는 뜻이다. “라오스”[Laos (Laity, 평신도)]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목회자”와 “평신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감리교 “평신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 감리교인은 그 말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말은 계시록에서 나온 것이다. “Layman”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지만 성경에는 이런 구분이 없다. 그래서 “Nicolaitanes”의 교리는 보통 사람들을 어떻게 지배할까 하는 교리이다! 니콜라파의 교리는 목회자가 특별한 지위인 제사장 신분이 되어 평범한 보통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하도록 꾸며진 교리이다. 물론 이것은 성경을 왜곡시키는 이단 교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름 부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존중하시지 않는데 “목회자”와 “평신도”의 유일한 차이라면, 보통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도자로서 공식적인 전임 직분을 갖지 않거나 그 직분을 위해 구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전하고 구령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는 “지배 계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신다. 신약에서 감독이나 장로, 집사가 갖는 유일한 힘은 영적인 힘이다. “니콜라파”는 영적으로 다스린다는 뜻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지배한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들을 정복해서 그들 위에 앉아 “지배하려”(벧전 5:1-4)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그들을 인도하고 안내하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감독이나 집사, 장로, 목회자로서의 여러분의 힘은 영적인 힘이어야만 한다. “니콜라파의 교리”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 계층이 다른 그리스도인들 계층을 지배하려는 교리이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교리이다.


이 에베소 기간에(A.D. 33년에서 A.D. 200년까지) 우리는 열한 명의 사도와 열두 번째 사도인 맛디아 그리고 열세 번째의 특별한 사도로서 이방인 전담사역을 위해 구별된 바울(갈 2장, 엡 3장)을 본다. 같은 기간에 이레내우스(Irenaeus, A.D. 180)와 터툴리안(Tertullian, A.D. 150)이 이 기간 끝무렵에 등장한다. 이레내우스와 터툴리안의 저서에서 다가오는 배교 조짐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A.D. 500년 이전에 성경에 대한 충실성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다. 이들 둘다 자칭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레내우스는 열두 개 혹은 그 이상 되는 이단들의 근원이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그가 “허마의 목자”(Pastor of Hermas)라고 부른 글이 정경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레내우스와 터툴리안은 그들의 글에서 물침례가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암시하였다(이들의 글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들의 인위적인 전통을 증명하려고 할 때 그 근거로 사용한다. 그들은 초기 교부들이 침례에 의한 중생을 믿었으며 그렇게 행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쓴다.).


터툴리안은 그가 죽기 전 당시에 형성되고 있었던 라틴 환경을 떠나서 초기 시대의 전천년주의자들로 알려진 “몬타니스트”(Montanist)가 되었다. “몬타니스트”, “칠리아스트”(Chiliast), “전천년주의자”(Pre-Millennialist)들은 거의 같은 뜻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 땅을 통치하시리라는 계획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만일 터툴리안이 카톨릭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였더라면 아마 초기 “교황” 가운데 하나로 끝났을 것이지만 그는 이 무리를 떠나 “급진적인” 전천년 “광신자”가 되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그의 글을 많이 인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따금 그의 글을 인용하며 이레내우스의 글도 사용한다.


여러분은 그들이 그들의 전통인 미신들을 입증하기 위해 “교부들”을 언급할 때 클레멘트(Clement), 이그나티우스(Ignatius), 이레내우스(Irenaeus), 파피아스(Papias), 시프리안(Cyprian), 터툴리안(Tertullian) 등을 언급함을 들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어떤 이단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특정한 교부를 들먹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사로운 해석”을 입증하려할 때 바울 서신 대신 “교부들”을 의지한다. 교황들이 그들의 이단 교리를 납득시키기 위해 항상 쓰는 방법은 일단 마태복음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율법 아래 있는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쓴 것이다. 그 다음은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등장하기 전의 앞부분으로 가서 시몬 베드로가 이스라엘에게 설교하는 부분을 인용하고 그 다음에 바울 서신 대신에 “교부들”에게 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그들은 그들의 교회가 유일하게 참된 교회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이렇게 교황들은 18세기 동안 성령을 모독하였으며 성경을 500구절 이상 부인하였다.


로마 감독들은 교부들이 등장하는 에베소 기간 중에 “사도직 계승”을 입증할 만한 일단의 사람들을 소집한다. 이들은 계시록 2:2에 언급된 거짓말쟁이들로 사도직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즉 리누스(Linus), 지금은 성 리누스(St. Linus)로 부른다. 클레투스(Cletus), 지금은 성 클레투스(St. Cletus)이다. 클레멘트(Clement), 에바리스투스(Evaristus), 알렉산더(Alexander), 식스투스 1세(Sixtus І), 텔레스포루스(Telesphorus), 히기누스(Hyginus) 그리고 교황 피오 1세(Pope Pius І)인데 이들 모두 카톨릭 교회가 “성인들로 추대하였다.” 카톨릭 교회는 신약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성인들(saints)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이 범속하지 않은 거룩한 정치 조직인 것을 입증하려고 그들 내부의 미신적인 우상숭배자들을 “성인으로 추대하기”를 좋아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인”(saint)으로 바울 서신서들에 언급되어 있으며 단지 한두 사람을 특별히 나타내기 위해서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사도직 계승”을 주장했던 이들은 모두 “교황들”로 추대되었다고 콜럼버스의 기사단(the Knights of Columbus : 1882년 코네티컷의 뉴 헤이번에 설립한 로마 카톨릭 신자들의 공제 및 자선 단체 회원간의 사교 및 지적 교제를 장려하며 회원들과 수혜자들을 돕고 카톨릭 이익을 보호하며 촉진하고, 모든 인종과 신조를 가진 시민들간의 우호 정신을 도모한다.) 간행 책자에 나와 있다(<교황들의 소사>, 11권 p.41). 이들 초기의 “성인들”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고 사도직 계승은 성 베드로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들은 거짓말쟁이들이거나 더 그럴듯하게는 교황 정부의 정치인들로서 로마 카톨릭 바티칸제국이, 마치 알 카포네(Al Capone)가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과 같아지려는 것처럼, 이러한 엉터리 명단에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의 선한 이름에 먹칠을 하였다.


이 첫 교회 기간에 거짓 교리의 씨앗들은 “교부들”에게서 나타난다. 심지어 이그나티우스(Ignatius)와 파피아스(Papias)는 그들의 글에서 침례에 의한 중생과 교회의 정치적 성직자 계급 제도인 니콜라파 조직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것이 후에 어거스틴(Augustine), 암브로스(Ambrose), 제롬(Jerome) 그리고 로마 카톨릭 교황들의 시대에 비로소 언급되지만 이미 초기에, 즉 계시록 2:1-7에서 타락의 씨앗들이 심겨진 것이다. 그 씨앗들이 심겨진 것은 첫째로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외면하고 교회를 그분보다 우선시 했기 때문이며, 또 거룩한 성경 대신 성직자와 평신도 계급을 최종권위에 두었기 때문이다.


A.D. 30년부터 A.D. 200년까지 이 첫 교회 기간에 성경을 믿었고 성경대로 살았던 몇몇 참된 교부들이 있었다. 폴리캅(Polycarp)이 그중 한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투기장에서 화형당하였다. 그는 사도 요한과 동시대 인물이다. 그는 그의 교리에 굳건하였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폴리캅을 그렇게 많이 인용하지 않는다.


2◎ 스머나 교회시대


교회사의 두 번째 시기는 스머나 교회시기로 “스머나”“몰약”을 뜻한다.

몰약은 쓴맛이기에 죽음을 가리킨다. 이 교회는 박해당하는 교회이다. A.D. 200년에서 A.D. 325년까지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열 번의 박해가 일어난다. 이 열 번의 공식적인 박해는 수천의 성도들을 죽이지만 그들을 더 많이 죽일수록 성도들은 더 많이 증가하여 집토끼들처럼 배가되었다. 여러분은 <팍스의 순교사, Fox's Book of Martyrs>에서 이 기간에 벌어진 여러 박해의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A.D. 200년에서 A.D. 325년까지 로마제국은 지상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살하고자 필사적인 교전을 수행하지만 그들은 증가하기만 한다. 콘스탄틴이 A.D. 313년경 로마를 통치할 때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오히려 그리스도인들로 세상과 제휴토록 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기간이 계시록 2:8-11에 그대로 나와 있다.


에베소 교회 기간의 중요 문제는 교회 지도자 중 어떤 자들이 “사도직 계승”을 주장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지배자”인 니콜라파는 미혹케 하는 어떤 교리를 주장하는데 그들의 주장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유대인(롬 2장)이기 때문에 육적으로도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유대인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을 받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들과는 완전히 끝났다고 한다. 이것이 무천년과 후천년 신학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교적인 추론은 “전 니케아(Ante-Nicene)와 후 니케아(Post-Nicene) 교부들”에 의해 이 기간과 그 후에 가르쳐진다. 그들은 시프리안(Cyprian, A.D. 200), 제롬(Jorome, A.D. 325), 오리겐(Origen, A.D. 182), 클레멘트(Clement, A.D. 200), 디디머스(Didymus, A.D. 313),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A.D. 297), 예루살렘의 시릴(Cyril, A.D. 380)이다.


여기서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가 나오는데, 이 교리는 하나님은 유대인과 영원히 관계를 끊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을 대신하고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영적인 나라는 저당, 주식, 사채, 담보, 배상, 이자, 정치 운동, 교구 부속 학교들, 면세 혜택 등으로 구성되어서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더우기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모든 약속은 영적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완전히 단절하셨기에 유대인을 박해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방인 로마 “카톨릭”은 이제 “승리자”이며 유대인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들이 그 도시를 함락시키려고 십자군들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가장 저질의 가증스럽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들은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나 유대인이 아니며 성령께서는 이것을 신성모독(BLASPHEMY)이라 부르신다(계 2:9). 성경 말씀에 따르면 지상에서 가장 가증스런 종교 집단은 자기들이 유대인들인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주장하는 무리이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단절하지 않았다(살전 2장, 롬 9,11장). 자신을 “스스로 지혜 있다”거나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을 대신한다고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영적인 유대인일 수는 있으나 문자 그대로의 유대인은 아니며, 지상에 실제적이고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아직 그들의 땅에 오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


스머나 기간에 후천년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A.D. 354년 어거스틴은 로마 “카톨릭” 북아프리카 주교로서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을 썼는데 거기서 그는 후천년주의를 온전히 발전시켰다. 그는 더 나아가 로마 교회가 예루살렘을 대신한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이 교리로부터 불경스럽고 반성경적인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이 그릇된 기독교 신앙이 북아프리카의 라틴 교회(그들의 관심은 당면한 여러 사회 문제라고 설명한다!)에서 유래한 것을 안다.


계시록 2:9에서 교회는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가 부요하다고 하신다! 이 교회는 구령하며 순교당하는 교회이다.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의 먹이가 되고 말뚝에 묶여 타르 칠을 당한 채 불태워지는 교회이다. 방울뱀이 든 자루에 넣어져서 강에 던져지는 교회이다. 이 교회의 세부적인 설명은 <팍스의 순교사>에 나와 있으며, 그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독서이다.


스머나 기간은 현재 우리 교회 시대(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섬기는 데 댓가가 따른다네.”를 노래한다. 예수님을 섬기려면 마땅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이 세상의 금전으로 항상 지불되는 것은 아니다. 침례인 요한은 목베임으로써 예수님을 섬긴 댓가를 지불했고, 스테판은 돌에 맞아 죽었으며,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을 받았고, 바울은 목베임 당했으며, 야고보는 투옥되었다가 목베임 당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의 기독교 신앙은 20세기 헐리우드 각색 영화이다(딤후 3:12).


다음 교회사 기간(퍼가모 교회 시대; A.D. 325-500)은 교회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이 때와 같은 시기를 찾으려면 1952년으로 올라와서 교황 죠니(Papa Johnny)의 “바티칸 공의회”를 봐야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급속도로 빠르게 파멸되어서 종국에 가서는 사도 바울이 전파했던 신약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교회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 기간에 일어난 일은 뒤따르는 교회사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퍼가모 기간에 교부들, 변증자들과 글을 쓰는 이들은 모두 그들의 생애를 믿음을 전파하는 대신 믿음을 옹호하면서 보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들의 전 생애를 믿음을 성장시키고 전파하는 대신 믿음에 관해 논쟁하면서 보냈다. 이 기간(스머나 교회 시대)에 믿음을 성장시키고 전파한 순교자들은 죽임을 당했는데 이들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실제적이고 진정한 사역자들이었다. 이들이 로마제국에 그렇게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이 기간의 끝 무렵(A.D. 300년이나 A.D. 325년경) 콘스탄틴(Constantine)이 로마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동부와 서부 제국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인들을 합병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로마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주어 그들을 로마제국의 일원으로 만들어야함을 즉각 알아차렸다. 스머나 기간(A.D. 200-325)은 교회사에서 가장 위험한 기간이다. 왜냐하면 이 기간에 순교하는 교회는 순교당하기에 지쳤고 모든 실제적인 이유 때문에 로마 교회가 되기를 갈망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스머나 교회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교리를 가르치는 수십 개의 이단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는 “유대주의자들”(Judaizers)로서 그리스도인은 유대인이고, 행위로 구원받으며, 구약은 영적이고, 구원은 믿음과 행위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유세비우스(Eusebius, A.D. 264-340)는 이 어리석은 교리와 더불어 그리스도인은 이것이나 저것을 해서는 안된다고 행위를 강조하여 제대로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 버릴 것이라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전하였다. 희랍의 “영지주의자들”(Gnostics)이 이 기간에 나타났는데 그들은 첫 “과학자들”로 보통 사람들보다 우월한 지식을 주장한다.


타티안(Tatian, A.D. 160)은 개종한 학식있는 헬라어 학자로서 이 무리를 공박하는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바실리데스(Basilides, A.D. 138)는 자칭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실제는 범신론자였다. 발렌티누스(Valentinus, A.D. 160)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집트 철학자로서 이 기간에 글을 썼다. 수많은 분파와 조직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고 반박했으며 이단 교리를 가르쳤고, 이들을 대항하는 글을 썼던 다수의 교부들에 의해 논박당했다. 이들의 “문답”은 복음을 전파하는 대신 글을 써서 논쟁하는 것으로 점차 발전되었다. 사람들의 개인적인 글이 성경과 동등한 권위가 있는 것처럼 “클레멘트 서신서”(Epistles of Clement), “허마의 목자”(Shepherd of Hermas), “바나바 서신”(Epistle of Barnabas) 등등이 성경에 고착되기 시작한 것이 이 기간이다. 이런 글은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고 로마 주교들은 이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가 있다고 여긴다. 퍼가모 기간에는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쓰여지고, 이 로마 카톨릭의 두 북아프리카 사본은 RSV, ASV, 모펫(Moffat), 웨이마우쓰(Weymouth), 굳스피드(Goodspeed), 센테니얼(Centennial), 앰플리파이드(Amplified) 등등에 기준자료로 사용된다. 스머나와 퍼가모 두 기간에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들과 헬라어 번역자들은 그들의 사이비 기독교를 만들어낸다. 이 기간에 기독교 신앙(이단들과 헬라 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은 점차 철학적으로 되어가며 느슨해지다가 마침내 로마 교회에 타협한다.


교회를 이런 배교로 인도하는 자들은 이레내우스(Irenaeus),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Eusebius, 콘스탄틴 황제를 우상화한 캐사리아 주교) 등이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과 내통해서 교회를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의 수중에 들어가게 했다. 콘스탄틴 황제의 합병은 나중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되는데, 물론 이 교회는 기독교적이거나 성경적이지 않고 그 모습이나 형태도 전혀 신약에 충실하지 못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A.D. 200)는 스머나 기간에 살았으며,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형성해서 성경을 개정하고 바꾸기 시작했고, ASV와 RSV 같은 현대의 대 실패작들에 사용된 헬라어 사본들을 썼다.


“헤시키안”(Hesychian) 계열 헬라어 원문(모든 새 성서들에 사용된)은 웨스트코트와 홀트(Westcott & Hort) 원문으로 불리는데 스머나 기간에 생겨났다. 오리겐은 A.D. 185년에 태어나서 이 기간에 활동한다. 오리겐은 자칭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성경을 과학적, 비평적으로 연구하여 난도질했는데 성경을 고치고 바꾸어서 개정했다. 이렇게 하는 동안 만인 구원론, 침례에 의한 중생, 혼의 수면,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을 알고 계신가를 가르쳤다. 오리겐은 “비유적인” 성경해석을 믿었다. 그는 어린아이가 죽으면 구원받기 위해 침례받아야 한다고 믿었다(물론 카톨릭은 이것을 수용했다.). 오리겐의 성경해석법은 안티옥을 제외한 교회 전지역에서 채택되었다. 안티옥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린 지역이다(행 11장). 오리겐의 해석법은 “영적인” 해석으로 발전되어 마침내 성경을 무력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 로마의 주교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최종권위가 되어 버렸다.


스머나 - 퍼가모 기간에 글을 쓴 자들은 오리겐(가장 나쁜 영향을 끼쳤다.)이 A.D. 185-254년까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A.D. 200년에, 디디머스가 A.D. 313- 398년까지, 시프리안이 A.D. 200-258년까지, 제롬이 A.D. 345-429년까지 활동했으며, 어거스틴이 바로 뒤에 등장한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 교부들”(Alexandrian Fathers)이고 “후기 니케아 교부들”(Post Nicene Fathers)이며, 어거스틴은 “서방계열”(Western)의 창시자였다. 안티옥은 성경적인 노선을 유지했고 이그나티우스(A.D. 107), 루시안(A.D. 312)과 크리소스톰(A.D. 345)이 활동했다. 카톨릭이 인용하는 자들은 유세비우스, 제롬, 이레내우스, 파피아스, 시프리안, 어거스틴과 클레멘트이다(오리겐은 <킹제임스성경>을 변개시킨 RSV, RV, ASV 같은 많은 개정본의 근원이다. 이 개정본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이것들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리겐이 3세기에 만든 성서에 근거한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않은 헬라어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콘스탄틴은 스머나 기간 끝 무렵에 교회와 화친했는데 이 기간의 다음 세 가지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1. 이단들의 태동과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압도적인 반발이 철학자, 학자들, 그리고 로마제국에 의해 일어났다.

2. 엄청난 그리스도인의 순교 행렬이 있었다. 즉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로마제국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3. 교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일을 수행하기 위해 권위있는 성경 대신 권위있는 교회를 세우는데 주력했다. 이들은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치 않았다. 이들이 원본 헬라어 성경을 개정하고 바꿔서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자신들의 성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들은 퍼가모 기간에 일어난 일들의 뿌리요 근원인데 이 기간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시작되었고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기점이 된다.


교황들이 얼마나 많은 사도직 계승자들이 A.D. 325년 이전에 있었다고 주장하든지 간에 성 리누스(St. Linus)에서 A.D. 311년 성 멜키아데스(St. Melchiades)까지 소위 “교황들”의 모든 명단이 날조되고 표절되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고 남아 있다. 이 기간에 유일하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이 죽인 거듭난 성경대로 믿는 순교자들이었다.

로마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황제를 숭배하며,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성경을 반박했던 박해자들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머나는 “몰약”으로 상징되는 교회 기간으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화형당하며, 고문당하고, 살해되는 기간이다. “교부들”은 교회를 로마제국처럼 강력하게 만들려고 세상 학문, 세상 철학과 경쟁하면서 논증법, 소책자, 논문들을 쓰고 있었다. 퍼가모 기간에 콘스탄틴이 어떻게 이 강력한 교회를 이교도 로마제국과 혼인시켜서 두 개를 같은 멍에에 매어 오늘날 “카톨릭”이라 불리는 거대한 로마의 반기독교적 교회로 발전시켰는지 볼 것이다.


3◎ 퍼가모 교회시대


우리는 이제 퍼가모 교회(A.D. 325-500년)에 왔다. 퍼가모 기간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등장으로 특징지워지며 뒤이어 암흑시대가 따라 온다(여러분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권세를 잡는 곳은 어디에서나 도덕적, 사회적, 지적, 종교적인 분열이 있음을 볼 것이다. “암흑시대”는 올바른 명명이다. 이 시대는 500년에 교황 그레고리와 더불어 시작해서 1520년 마틴 루터에 이르러서도 사실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이지, 로마 카톨릭이 여러분에게 믿도록 하는 것처럼 프로테스탄트의 편견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지상에서 가장 고집스럽고 독단적이며 편협하고 미신적인 종교 조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반카톨릭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퍼가모”“숱한 결혼”을 뜻하며, 이 교회는 세상에 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계시록 2장 12-17절의 내용은 A.D. 325년에 세상과 결혼한 교회를 향한 것이다. 이 교회는 사탄이 거하는 곳에 산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흥미있는 사실은 퇴색한 바빌론의 신비적인 제사장직인데, 이 제사장직은 님롯, 세미라미스, 탐무스의 종교로서 십자가의 표적을 지니고 12월 25일(크리스마스)에 호랑가시나무, 겨우살이, 굵은 장작, 종들, 묵주, 부활절 토끼, 양초 등으로 장식한 탐무스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가르침으로 B.C. 133년 바빌론에서 퍼가모로 옮겨졌다. 이 신비적인 바빌론 종교는 요한이 계시록을 쓰던 때에 퍼가모에 나타났는데, 본문은 이 퇴색한 바빌론 제사장직이 A.D. 313년에 로마 교회 내부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콘스탄틴이 기독교 교회를 세상과 통합하여 (여러분이 오늘날 바티칸에서 보듯이) 교회와 국가를 하나로 만들었을 때 구약에 나타난 신비의 바빌론 종교를 취했던 것이다. 이 종교에 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다면 “아버지”라 불리고 검은 제의를 입은 신부들의 종교가 B.C. 1800년만큼이나 오래되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저속한 쇼가 기독교와 전혀 무관한 것과 같다.


이 무리는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에 살고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권위적으로 거침없이 말한다. 퍼가모 그리스도인들은 초기에 로마제국 치하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로마교황 치하에 있게 되었다(바티칸은 로마제국이 그 동안 학살한 많은 그리스도인보다 열 배나 더 많은 수를 죽였던 것이다.). 이 교회 기간에 세상과 결혼한 로마 교회에 의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순교가 시작된다.


이 교회에 대한 주된 하나님의 책망은 “발라암의 교리”(계 2:14)를 붙드는 사실이다. “발라암의 교리”가 무엇인지 알기 원한다면 민수기 22,23,24,25장을 살펴보라. 간단히 말해서 “발라암의 교리”는 발라암 스스로가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할 수 없었던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나님께서는 발라암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고 만일 발라암이 그들을 저주하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발라암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자손을 죽일 만한 상황에 빠뜨릴 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모압왕 발락에게 모압인들과 유대인들을 결혼하도록 가르쳐 그들을 결혼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죽이게 했다. 이것이 민수기 25:1-8에 나타나는 “발라암의 교리”이다.


발라암의 교리는 정치적 운동이 아닌 종교적 교리로서 다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1.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도록 가르쳤다(계 2:14).

2.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음행하도록 가르쳤다(계 2:14).

3. 성직자가 평신도를 지배한다(계 2:15).


발라암의 경배는 발락에게 가르친 것인데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부도덕함이 경배의식의 일부였음을 주목하라. 이 바빌론 신비종교는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경배에 부도덕을 혼합한다. 이것은 다음의 논리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하나님이다.

2. 하나님은 생명이시고 생명은 하나님이다.

3. 인간은 창조자로서 육적인 삶을 창조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신인데 삶이며 경배하는 것은 최고의 행위이며, 삶을 경외하는 것은 지고한 경배 행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적인 창조 행위는 최고의 경배이다! 이 말이 억지처럼 들린다면 해리 에머슨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 스탠리 존스(E. Stanley Jones), 크로닌(A.J. Cronin), 로이드 더글라스(Lloyd C. Douglas) 그리고 인터프리터스 바이블(Interpreter's Bible)에 나타난 NCCC(전미기독교교회협의회)의 글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라.


퍼가모 교회는 세상과 결혼했으며 음행과 우상숭배가 예배의 일부로 행해졌으며 또한 성직자가 평신도를 지배했다.


퍼가모 기간은 A.D. 325년 로마 “카톨릭” 교회의 등장으로 특징지워진다. 콘스탄틴은 로마 황제로서 그의 밑에 주교들을 거느리고 교회의 머리가 되었고 교회가 너무도 재빨리 “녹아 버려서” 아무 남은 것이 없을 정도다. 우선 콘스탄틴은 주교들에게 돈을 주어 바실리카 회당들을 “교회”로 바꾸게 하고 금과 은으로 장식한 세마포를 입혔으며 나무 설교단 뒤에 서 있는 대신 대리석 보좌에 앉게 했다! 이 교회와 국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허락되었고 자유와 권리를 부여받았다. 타락한 교부들, 즉 어거스틴(가장 어리석었던 자), 제롬, 클레멘트, 그리고 당시의 세속적인 나머지 그리스도인들 - 주님과 교제가 분명히 멀어진 - 은 박해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큰 건물에서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고 예배를 드리고 더 이상 사자들에게 던져지지 않게 됨),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가 시작되어 지상에 “천국이 임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모든 주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후천년주의임은 물론이다! 실제 오늘날 미국에는 말할 수 없이 우둔하고 게으르며 아무짝에 쓸모없는 철학박사, 문학석사, 신학박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든 교회가 바티칸 공의회와 합치는 것이 “주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4세기, 5세기 때와 마찬가지로 20세기에도 똑같이 멍청하다.


A.D. 325년에 발생한 모든 일은 교회가 거의 천 년 동안 그 증거를 상실하고 성경을 잃어 버린 것이었다. 수도승, 교황, 사제, 주교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고 순교자들의 교회는 로마 교회로 바뀌었다. 이 후천년과 무천년 환경에서 이교도와 그리스도인이 연합되었고 콘스탄틴은 교회와 더불어 그의 제국을 굳건히 하였다. 태양신을 경배하는 날(12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로 제정되었다. 태양의 날, 즉 “태양신”의 날은 한 주간의 첫째 날이고 그리스도인들이 만나는 날이었기에 거룩하고 신성하게 여겨졌으며 제국 전역에서 특별한 날로 지키도록 구분되었다. 이 못된 장난과 더불어 결혼 반지, 가장행렬, 부활절 토끼들, 양초, 귀걸이, 분장, 놀이들, 소인극, 겨우살이, 동정녀 마리아 숭배, 침례에 의한 중생의 가르침, 연옥에 있는 혼들, 행위에 의한 구원 그리고 이 외에도 로마 교회가 15세기 동안 관대히 여겼고 장려했던 모든 불경건하고 타락한 더럽고 썩어빠진 가증한 일들이 있다.


이 교회는 정통이라고 주장하며 사도신경을 믿는다고 고백한 주교들에 의해 A.D. 325년에 시작되었다. 사도신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사도신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유대인들이 쓴 유대인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는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의 열쇠는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유대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강림이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A.D. 325년에 사도신경이 조성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교회도 그 위에 설 기반이 없었고, 모든 것은 그들이 정통을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정통 신앙의 승리가 아니라 종교 재난이었다.


이 기간에 활동한 자들은 라틴 “교부들”이거나 “후 니케아” 교부들인데 이들이 교황들의 기초가 되었다. 그들 중에 북아프리카의 어거스틴(A.D. 354-430), 디디머스(A.D. 323-398), 아타나시우스(A.D. 297-373), 예루살렘의 시릴(A.D. 380-444) 등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된 정통 신앙을 드러내지만 대개는 변질되었다. 이 기간에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이 있었던 반면에 동정녀 마리아는 숭배되었다. 그리스도의 위격과 본성에 대해 논쟁하는 동안 “카톨릭”은 사람들의 구원의 수단으로 침례를 주었다. 이것은 성경으로 판단하건대 교회사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가장 비극적인 한 부분이다.


이 퍼가모 기간에 로마 교회는 자기들이 성경과 동일한 권위임을 스스로 내세운다. 정통을 주장하면서 로마 교회는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에 몰래 묻어둔 가장 터무니없고 천치 같은 이교의 미신적이고 섬뜩한 것들을 교리로 가르치고 있다(이따위 종교적인 어리석음은 마가복음 7:1-14에 언급되어 있다).


교회사의 이 기간에는 클레멘트(Clement), 암브로스(Ambrose), 바실(Basil), 두 그레고리(two Gregorys, 어느 정도 정직한 신앙을 전파했다.), 테오빌로(Theophilus)가 있었다. 그리고 A.D. 325년에 니케아 종교회의, A.D.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 A.D. 431년에 에베소 종교회의 그리고 A.D. 451년에 칼세도니 종교회의가 열렸다.


퍼가모 기간에 외경이 영감있는 문헌으로 로마 카톨릭 성경에 포함된다! 이것은 포고(Pogo)나 릴 아브네(Li'l Abner)보다 더 영감이 없는 것이다. 이 기간에 어거스틴이 글을 쓰고 제롬(A.D. 340-420)이 라틴어역 성경인 벌게이트(Vulgate)를 만든다. 교황 이노센트, 교황 레오, 교황 그레고리 그리고 모두 비슷하게 미혹된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할로윈 복장을 입은 유령 같은 모습으로 묵주들을 딸깍거리며 불밝힌 초를 들고 거룩한 척 돌아다니지만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나 오랄 로버츠(Oral Roberts)만큼도 거룩하지 않다. 이들은 교회를 인수하여 소위 “거룩한 로마제국”의 머리인 “교황”으로 대변되는 철갑 파시스트 교회 체제를 이룩한다.


교황은 두 개의 왕관을 쓰기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세 개가 된다. 한 개는 영적이며 도덕적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의 왕관이며, 다른 왕관은 지상에 세워지는 눈에 보이는 실제적이고 문자 그대로의 왕국인 “천국”의 왕관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같다고 가르쳐 왔다. 오늘날 모든 남침례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쳐지고 있다. 천국(the 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같다고 하는 이 가르침은 남침례 신학교 뿐만 아니라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의 모든 신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이 두 나라는 영어 낱말조차 같지 않다. 여러분이 범신론자나 실용주의자가 아닌 이상 하나님이 하늘이 아닌 것을 알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퍼가모 기간이 끝나는 A.D. 500년에 이르고 있다. 이 모든 더럽고 썩어 빠진 배교한 거짓 교리의 한복판에서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들이 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황금 입”(The Golden Mouth)으로 불리는 희랍설교자로 A.D. 407년까지 살았다(그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세비우스가 인정한 것과 전혀 다른 성경으로 설교하고 가르쳤다. 유세비우스와 콘스탄틴은 “바티칸 사본”을 성서로 사용했다. 이것은 헤시키안 이집트 계열 원문으로 양피지에 기록되었다. 이 바티칸 사본은 외경을 담고 있으며 미국의 로마 교회 공인 성서로서 흔히 RSV, ASV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성서는 바티칸 사본에서 나온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이 사본을 사용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를 통해 라틴 교회로 올라가는 대신 그는 안티옥으로 해서 희랍 교회로 올라갔다. 신약이 라틴어가 아닌 헬라어로 쓰였기 때문에 크리소스톰은 올바른 성경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다른 성경이었기에 로마 주교들이 싫어했는데 이 성경은 나중에 <표준원문, Textus Receptus>이라 불린 “시리아 계열 비잔틴 원문”이었다. 크리소스톰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구령(soul winning)했고, 지옥불과 저주와 중생을 전파했다. 그는 불법을 행했다고하여 투옥되었고 감옥에서 풀려날 것을 기도했다. 그는 추방되어 남은 생애를 흑해에서 보냈는데 거기서 헬라어 <표준원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러시아가 <킹제임스성경, 1611>이 만들어지기 거의 천 년 전에 권위있는 역본을 가졌음을 뜻한다! 즉 <킹제임스성경, 1611>과 같은 원문이었다.


이 암흑 기간에 진리를 전파했던 안티옥의 요한(A.D. 441)이 있었다. 또한 “패트릭”으로만 알려진 훌륭한 성도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St. Patrick, A.D. 389)이 있었다(그는 카톨릭이 자신을 “성인”으로 부른 것을 알았더라면 교황을 포함해서 그들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 차버렸을 것이다!). 패트릭은 “성 패트릭의 날”과 “녹색 제복”과 상관없었다. 성 패트릭은 저주, 중생, 전천년주의를 전파했다. 아일랜드의 숲에 들어가서 북을 치면 원주민들이 모였는데 북 위에 올라가서 그들을 향해 “여러분은 거듭나야 합니다.”라고 외치면서 그들에게 라틴 <표준원문>에서 요한복음 1:12을 전파했으며, “바티칸 사본”이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에는 콜럼바(Columba), 알반(Alban), 쿠스버트(Cuthbert), 피난(Finan)이 있었다. 프랑스에는 라벤나의 피터(Peter)와 엘지우스(Elgius)가 있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는 안스가르(Ansgar), 림버트(Rimbert), 니따르(Nithard), 윌리브로드(Wilibrord), 엑버트(Egbert), 바우버트(Baubert), 하르팍(Haarfagr), 트릭베슨(Trygveson)이 있었다. 이들은 여러분에게 <킹제임스성경, 1611>으로 알려진 라틴 <표준원문>을 전파했던 위대한 전도자들이었다. <킹제임스성경>은 헬라어 <표준원문>의 영역(English translation)인데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성경들도 똑같은 것으로서 교황들이 태워 없애려 했던 표준원문 사본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복음을 전했고 수백 명을 그리스도께 인도했다. 수도승인 살비안(Salvian)은 복음을 전했으며 카톨릭 교회에 저항했다. 아다(Adda), 르뷘(Lebuin), 체드(Cedd), 쿠스버트(Cuthbert)와 아단(Adan)도 복음을 전했다. 이 초기 선교사들을 로마 교회는 미워했으며 이 선교사들도 로마 교회를 미워했다. 그들은 언제나 싸웠다. 그들은 싸우고 싸우고 싸웠으며 서로 저주했다. 교황들은 그들이 싫었고 그들도 교황들이 싫었다. 그들이 죽었을 때 교황들은 그들을 성인으로 추앙하였다(그리스도께서 이런 행위에 대해 마태복음 23:29-33에 언급하셨다). 암흑시대의 전반부인 퍼가모 기간에는 복음을 전파했던 위대한 전도자들이 있었다.


4◎ 두아티라 교회시대


“두아티라”“고통의 향기”라는 뜻이다. 이 교회 기간에 카톨릭 교회의 종교적 파시즘 아래서 그리스도의 몸이 이전 시대의 박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극심한 박해를 당한다. A.D. 300년 전까지 로마제국의 박해들은 A.D. 500년에서 1500년 종교개혁까지 로마의 교황 치하에서 자행된 박해들에 비하면 진정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기간 역시 <팍스의 순교사>에 상세하게 다루어졌다(이 책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미국 공립학교의 어떤 교사도 <팍스의 순교사>를 역사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암흑시대에 참된 그리스도의 몸에 자행한 잔혹한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들이 무조건 금지한 것이다.


두아티라 기간은 우리를 A.D. 500년에서 곧장 암흑시대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데려가 A.D. 1000년에서 1200년까지 일어난 십자군 원정까지 인도한다. 이 기간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가 있었으며 고트족, 훈족, 골족, 샤를마뉴, 반달족, 클로비스, 피핀 대제, 서고트족이 활동했다. 샤를마뉴(A.D. 742-814)가 권력을 잡고 신성 로마제국을 굳건히 한다. “교황들”은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왕들을 통제하고자 싸웠고 왕들은 교황들로부터 정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과 싸운다. 이 기간에 마리아가 신격화되고 침례에 의한 중생이 절대 진리로 가르쳐진다. 첫 3세기에 시작된 모든 썩어빠진 변절이 이 시대의 참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위에 던져졌다(A.D. 500-1000). 참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 카타리(Catharists), 도미니끄(Dominicans), 프란시스(Franciscans)파 - 은 로마 교회 체제에서 빠져 나왔으며 교황과 그 추종자들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


계시록 2장 19,20절은 교회가 처음 행위를 떠난 원인을 보여 준다. 이 여인은 지역교회에서 역사적으로는 “이세벨”이라 불린다. 진실한 성경 학도라면 이 여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열왕기에 나오는 “이세벨”을 말하는데 그녀는 여선지자였고, 종교 지도자였으며, 바알의 시녀인 “하늘의 여왕”과 더불어 바빌론 종교의 예배 대상인 바알을 숭배하였다.


이 두아티라 교회의 여인은 이세벨처럼 잘못된 것을 가르쳤는데, 우리는 구약에 나타난 그녀의 교리를 예표를 통해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아주 간략히 관련 구절들을 보여줄텐데 여러분 생애에서 눈이 떠지는 충격이 될 것이다. 주목하라.


창세기 49:17, 단 지파는 뱀으로 불린다.


신명기 33:22, 단은 사자의 새끼라고 불린다. 단 지파는 사자와 뱀과 같다. 여러분이 성경을 안다면 이것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알 것이다. 사탄은 창세기 3장에서 뱀으로, 베드로전서 5장에서는 사자로 불린다.


재판관기 18장, 단 지파는 자기 지파를 위해 한 젊은이를 제사장으로 둔다.


재판관기 18:19, 이 제사장은 “아버지”(father)라 불린다.


재판관기 18:20, 이 “아버지”는 우상들을 예배도구로 사용한다.


재판관기 18:28, 단 지파는 페니키아 해변의 시돈과 투로에 정착한다.


재판관기 18:30,31, 그들(단)은 거의 천 년 동안 완전히 배교한다. 페니키아인들이 살았던 시돈으로 올라오면 단 지파가 예배도구로 우상들을 사용하는 “아버지”라는 제사장들과 함께 이교도와 혼합되는 것을 발견한다. 시돈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창세기 10:19을 보면 함족(카나안인)이 이 지역에 정착해서 바알을 숭배한다.


열왕기상 16:29-33, 아합이 왕위를 계승하고 시돈왕의 딸과 결혼하여 바알과 페니키아 신을 섬긴다. 여기에 이세벨이 등장한다.


열왕기상 18:26, 단 지파가 관련된 페니키아의 바알 숭배를 좀 더 설명하면 그들은 아침 10시(혹은 11시)에서 12시 정오까지 숭배한다.


열왕기상 18:24,25, 그들은 태양 불을 숭배했으며 태양신을 그의 날인 “일요일”(Sunday)에 숭배했다.


열왕기상 18:28, “아버지”라 불린 이 검은 제의의 제사장들은 몸을 절단하고 그들의 죄를 지불하기 위해 고해성사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거나 일부를 절단한다.


열왕기하 10:22, 이 검은 제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알 제사장들은 단 지파이며 아합과 이세벨을 위해 페니키아의 바알을 숭배하는데 제의인 긴 옷을 입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제의 때문에 제의 보조인을 두게 된다.


예레미야 10:1-5, 태양신인 바알(그의 생일은 12월 25일)을 숭배하는 이들은 나무꾼이 숲에 가서 잘라온 호랑가시 나무가지들로 예배당을 장식한다.


예레미야 44:17,18,19,25, 그들은 “하늘의 여왕”(교황들도 그렇게 부르는데 이상하지 않은가!)이라 부르는 여신에게 케잌을 바치는데 이것은 페니키아 바알 숭배가 무엇인지 그 정체를 명확히 확인하게 해 준다.


함의 자손에서 유래하고 “아버지”라 불리는 검은 제의의 제사장들과 더불어 단 지파가 관련된 북아프리카의 페니키아 바알 숭배는 일요일 오전 10시나 11시부터 12시 정오까지 숭배하며 크리스마스를 지킨다. 이들이 최초의 적그리스도 숭배자들이며 사탄의 무리이다. 이것은 암흑시대의 미신이나 프로테스탄트의 편견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것, 즉 성경 구절을 비교하여 얻어진 것이지 어떤 사람이 아무렇게나 사사로이 해석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기만 하면 된다. 계시록 2장 19,20절 본문은 이세벨 그 여인이다.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발라암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주목하라(14절과 20절을 비교하면 같은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회개할 기회는 A.D. 325-500년이었다. 그녀의 주위에 어슬렁거렸던 자들도 그녀가 당한 것과 같은 환란(이 환란은 A.D. 500에서 1000년까지의 교회 시대에 적용한다면 “사망”은 유럽에 일어났던 “흑사병”이다)에 빠지는 것을 주목하라. 여러분은 이 무리에서 나와 있으라고 경고받는다! (계 18:1-8).


현재의 “카톨릭” 교회가 본래 북아프리카 함족의 페니키아 바알 숭배자들의 20세기 재현임을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 많은 “카톨릭 신자”도 이 사실을 모르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마땅한 것 외에는 어떤 짐도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네 번째 교회 시대에서 우리는 A.D. 500년에서 1000년까지 살펴 보았다. 이 기간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때이다. 그 이유는 이 기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카톨릭” 신학자들만이 옳고, 성경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설교자들은 시엔나의 버나디노(Bernadino), 로잔느의 헨리(Henry), 탄첼름(Tanchelm), 로이따르(Leuthard), 브레스키아의 로베르뜨(Robert), 쎄그니의 브루노(Bruno), 삭소니의 루돌프(Rudolph), 빈센트 페레(Vincent Ferrer) 그리고 네스토리안들(the Nestorians)이다. 빌라노바의 아놀드(Arnold)는 플로리스의 죠아킨 (Joachin), 루마니아의 버솔드(Berthold, 1210) 그리고 탄첼름과 로이따르도 훌륭한 설교자였고 레이몬드 룰(Raymond Lull, 1235)도 위대한 선교사였다.


이 기간에 한결같이 두드러졌던 한 가지 사실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를 사용한 교황들은 아무도 구령하지 않았고 어떤 영적인 성장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수도승들이 수도원에 보존해 놓았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전파하고 아프리카와 인디아에서 선교사역하며 구령했던 사람들은 동방 희랍 정교회의 헬라어 <표준원문>이나 같은 원문인 <구 라틴 성경>을 사용했다. 이것은 비잔틴 원문으로 <킹제임스성경, 1611>의 원문이기도 하다.


5◎ 사데 교회시대


우리는 이제 교회사 가운데서 “사데 교회 시대”(A.D. 1000-1500년)에 이르렀다.

“사데”“붉은 자들”이란 뜻이다. 이 기간의 성도들이 “붉은 자들”이라 불린 것은 아무 이유없이 된 것이 아니다. 이 시대가 순교와 유혈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사데 기간은 로마 카톨릭 신부들과 교황들의 장려속에서 수천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를 당한다. 이 기간에 스페인에 종교 재판소가 등장하며, 교황이 비무장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였던 무장 카톨릭 신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위그노의 대학살(the massacre of the Huguenots)과 성 바돌로매 날의 대학살(the St. Bartholomew Day Massacre)이 있었다.


이 일들이 수백 년 전의 사건이기에 멀게 느껴진다해도 같은 사건들이 다시 일어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것은 역사에서 결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로마가 권력을 잡고 있었지 결코 러시아가 아니었다.


“붉은 자들”이란 뜻의 사데 기간은 암흑시대의 한가운데인 A.D. 1000년경부터 시작하는데 십자군 원정과 살라딘, 징기스칸의 침략이 있었고 이 기간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이 있었다(1337-1450).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단테, 복카치오, 발작과 오마르 카얌의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십자군 원정으로 아시아 문화와 문명이 유럽으로 쇄도했고, 힌두와 모슬렘의 철학과 학식이 스페인과 그리스에 유입되었다.


무엇보다 이 기간에 헬라어 <표준원문>(<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사용했던) 사본들이 증가한다. 이 사본들은 희랍 정교회들에서 발견되어 헝가리, 보헤미아, 불가리아를 거쳐서 마틴 루터의 독일까지 전달된다. 지금부터 천 년 전에 하나님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라틴 성경(제롬의 벌게이트)을 어떤 유형의 부흥에도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다. 부흥의 맥은 어거스틴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그리고 이탈리아의 라틴 교회를 거쳐 스페인의 종교 재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영적 타락과 성경 변개의 맥일 뿐이다.


부흥의 맥은 사도 바울이 안티옥(사도행전 11장에서 제자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곳)에서 개척하여 세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거쳐서 희랍 교회로 이어진다. 희랍 교회가 배교하자 부흥의 맥은 헝가리, 보헤미아,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등지로 올라가서 마틴 루터(1468년의 구텐베르그 성경)가 살던 독일로 전해지며, 거기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로 건너가 빅토리아 여왕 통치 기간에 땅 끝까지 전해진다. 이것이 성령이 인도하신 <표준원문>의 전수 경로이다. (하나님께서는 RSV와 ASV의 경로는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이 성경은 종교적 혼란과 정치 분쟁 및 유혈과 강압적인 정치 외에는 결코 사용되지 않을 로마 카톨릭의 북아프리카 계통이다). 사데 기간에는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사람, 즉 위클리프(Wycliffe), 존 후스(John Huss), 그리고 사보나롤라(Savonarola)가 있다.


사데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계 3:1). 살아 있다는 평판은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다. 교인 수는 증가하지만 교인들은 성장하지 않는다! 이 교회는 “정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 살아 남은 소수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믿음의 정통과 “사도신경” 및 동정녀 탄생 등을 믿는다는 명분은 있지만 “차갑게 죽어버린 돌맹이”였다. A.D. 1000년경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영적으로 죽었고 그 이후로 시체가 되어버렸다.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전혀 살아 있지 않다(교황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부당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했으며 죽음은 없다. 참된 교회는 죽어버린 교회 조직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교회 출석을 하도록 협박하지도 않으며, 태어나기 전에 정략 결혼을 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교회 회원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살아 있는 몸이며, 계시록 3:1의 사데의 상황은 죽은 무리를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많은 종교 기관에도 해당된다. 감리교는 명성을 갖고 있다. 그 명성은 높고 세련되고 오래된 것이지만 실은 죽은 명성이다. 감리교를 요한 웨슬리가 설립했기에 감리교도들은 그 설립자인 그를 존경하고 그가 영국 사회 혁명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요한 웨슬리가 오늘날 다시 와서 평범한 한 제일 감리교회를 방문한다면 세 번째 재떨이를 지나기 전에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이다. 유기체는 단순한 조직이 되어 버렸다(1850-1890년 대에는 어떤 사람이 자기는 감리교 신자라고 말하면 은행에서는 그가 감리교인이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었다. 돈을 대출받으려는 사람이 은행에서 해야 했던 일이란 자신이 감리교회 성도라고 말하는 것뿐이고 은행은 그가 대출받고자 하는 액수를 대부해 주었다. 여러분이 세상의 어느 은행에 가서 소속 교회를 대고 돈을 빌려 보라. 그들은 마을 밖에까지 들릴 만큼 웃을 것이다. 감리교인은 더 이상 세상에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한다).


계시록 3장의 이 교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마치 몇 개의 세포만으로 숨을 쉬는 죽어가는 허파와 같다. 참된 생명은 산 송장이 되어가는 교회에서 믿음을 지키는 소수의 성령충만한 사람들이다. A.D. 1000년에서 1500년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몇개의 빛이 있었을 뿐 교회 조직으로서는 죽었다. 카타리(Catharists), 위그노(Huguenots), 왈덴스(Waldensians)와 알비겐스(Albigensians)는 매장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한다.


계시록 3:4은 이 기간에 진리를 전파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계시록 3:4에서는 이들의 의로운 행실이 흰 옷으로 나온다(계 3:18; 16:15, 시 45편). “흰 옷”은 수고한 행위이다. 이 옷은 성도들 자신의 의이며(계 19장)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에 행한 선한 행위로 이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것이다(고후 5:1-10). 교회사에서 이 사람들은 “재침례교도”(Anabaptists), “왈덴스”, “알비겐스”, “롤라드”(Lollards), “폴리시안”(Paulicians) 등으로 불리웠으며 자연히 산 송장이었던 로마 교회에 의해 이단들로 낙인찍힌다.


이 기간은 피의 박해 기간이다. 이 기간의 위대한 설교자들로는 밀리츠(Militz), 왈덴스를 만든 피터 왈도(Peter Waldo), 콘라드(Conradt), 존 타울러(John Tauler), 자노의 맛디아(Mattias), 틴데일(Tyndale), 위클리프(Wycliff), 후스(Huss), 사보나롤라(Savonarola), 존 콜렛(John Colet), 윌리암 루브릭(William Rubrick), 페루지아의 앤드류(Andrew), 빈센트 페레(Vincent Ferrer), 조지 칸디나스(George Candinas), 로버트 주니어스(Robert Junius), 데이비드 지비아스 (David Givias) 등이 있다. 이들은 독일,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에서 설교했다. 이들은 거룩한 로마제국의 위장을 불편하고 언짢은 소화불량으로 가득 채워서 A.D. 1200년경에는 두 교황이 서로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꽤 재미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살펴 보았지만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나 침례, 교인 수의 증가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 나타나는 한 인물이다(계 13장).


앞서도 말했고 다시 말하지만 이 유대인의 성경을 올바로 이해해야 비로소 올바른 위치에 있는 유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을 제 위치에 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메시야를 보내어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리라는 약속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즉 이스라엘에 세워질 지상의 실제적이고 문자 그대로의 눈에 보이는 다윗의 보좌에 앉으실 메시야의 왕국 건설과 관련된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적그리스도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사데 기간(A.D. 1200년)에 서로를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던 두 바보 교황이 있다. 이 바보들 중 누구도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라진 후에 비로소 나타난다는 성경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만일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적그리스도였다면 둘 다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강력하고 확실하며 “권위있는” 거룩하고 “정확무오한 지도력을 갖춘” 교황의 실상이다! 이 기간에 우리는 유럽 전역에서 계시록을 설교하고 로마 교회의 정체를 폭로하는 거리 설교자들을 본다. 여러분 마음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고 이것이 독선적이고 편파적인 진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무엇을 설교했는지 알아보자.


(생애에서 단 한 번이라도 사물에 대한 독단과 편파적인 관점을 배제하여 보라. 잠시 동안 라이프와 룩,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TV에서 지난 10년 동안 배운 것을 잊어 버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 성령님께서 친히 이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 주시고 알아야할 것들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주시도록 맡기라. 주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피살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 수천 명이 TV 앞에 둘러앉아 종교 행위들을 열심히 보았다. 검은 제의를 입은 로마 교회 신부들이 성조기에 물 붓는 것을 실제로 보았으면서도 세뇌되어 단 한 마디의 항의조차 없었다.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검은 제의를 입은 신부들이(이탈리아의 교황을 그들의 최고 통치자로 인식) 미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도처에서 성조기에 물 붓는 것을 알고 있는가? 군대에서 “미국 병사들”은 국기가 땅에 닿는 것을 절대 금하도록 교육받는데 그 위에 물 붓는 것은 내버려둔다. 누군가 그것을 “성수”(聖水)라고 했다. 이것은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세뇌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성수”같은 성스러운 것에 대해 들어 본 사람이 누구인가? 이런 것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시대는 구약 시대로서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표적과 이적과 기적에서이다. “성수” 같은 것은 없으며 20세기의 성경대로 믿는 프로테스탄트들은 보다 나은 감각을 가져야 한다. “성수”, “거룩한 마리아”, “거룩한 십자가” 등 이런 모든 말은 거룩한 허튼소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 “거룩한 것들”은 성령과 하나님의 성전인 믿는 자들과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 자신이시다! 거룩한 '접촉 부위'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분은 탁자, 라디오, 담요, 침례장, 성소 등으로 인하여 바보가 되지 않으신다.


계시록 17장으로 올라가면 A.D. 1200-1400년에 설쳐댔던 “이단들”의 정체를 볼 수 있다. 계시록 17:1,2에 말하기를 [또 일곱 호리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와 대화하며 말하기를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큰 창녀의 심판을 네게 보여 주리라. 땅의 왕들도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도다.”라고 하고] 이 구절들이 이세벨에 관해 계시록 2장에 나오는 구절들과 얼마나 유사한지 주목하라. 그녀는 여선지자로서 교회에 거짓 교리를 가르쳤다(계 2:20). 계시록 17장의 이 여자가 이세벨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계시록 17:18에서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이라.”고 하더라.]고 한다.


<킹제임스성경, 1611>이 스스로 해석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다른 모든 새 “성서들”이 구절들을 바꿈으로써 올바른 해석을 막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킹제임스성경>이 성경이 뜻하는 것을 그 뜻대로 그 쓰인 곳에 말한 그대로 기록한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이 여자가 누구인지 짐작할 필요도 없으며 “해석”할 필요도 없다. [네가 본 그 여자는... 큰 도성이라.] 여러분은 낱말을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읽은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경에서 느끼는 문제는 성경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성경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 “도성”이라고 하는 여자가 있는데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이다. 이런 도성을 알고 있는가?


[지혜 있는 생각이 여기 있으니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계 17:9).


“일곱 산”위에 세워진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에 대해 알고 있는가? 이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며 일곱 산 위에 세워진 사람들을 다스리는 도성을 아는가 모르는가의 문제이다. 자, 그 도성을 아는가 모르는가?


[또 내가 보니,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더라.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의아해 하며 놀랐노라](계 17:6).


“큰 도성”으로서 “땅의 왕들”을 다스리며 “일곱 산”에 세워졌고 “예수의 순교자들”이 죽임을 당한 그런 도성을 아는가?


계시록 17:4 [또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그 잔은 가증스런 것들과 그녀가 행한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더라.]


“땅의 왕들”을 다스리고, “일곱 산”에 세워졌으며, 그 색깔은 “자주색과 주홍색”이고, 상징은 잔이며,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를 흘리는 그런 “큰 도성”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성령님께서 이 책을 쓰셨고, 이 도성을 공개하고, 그녀의 이름을 밝혔고 정체를 확인했기 때문에, 로마 교회가 이 구절들을 부인하고자 했던 유일한 방법은 이 책이 A.D. 70년 이전에 기록된 것이며 그 여자는 로마제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계시록 17장은 거리 설교자들이 유럽의 “신성 로마제국”에서 증거하였던 내용이다. A.D. 1500년경 거룩한 로마제국은 이런 언짢은 소화불량에 걸렸기 때문에 약 처방이 필요했다. 1252년에 교황들은 서로 적그리스도라고 불렀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이들은 “교리”를 열 네 번이나 바꾸었으며 지금은 5년마다 바꾸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멍청한 프로테스탄트에게 카톨릭은 교리가 항상 일관되어서 “한결같은 가르침”을 유지하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은 “항상 분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솝 우화 이후로 가장 황당무계한 이야기일 뿐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지난 300년 동안 정치적 신조를 5년마다 바꾸어 왔고, 교회의 교리는 지난 600년 동안에 적어도 50년마다 한 번씩 바꾸어 왔다. 그들이 일관해 온 유일한 것은 모든 구성원이 교회가 각자에게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카톨릭 교회가 그 구성원들을 복종시키거나 쫓아낼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상이라면 콜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의 “카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의 연재물 내용이 정직하지 않은 것이다!


사데 기간에 우리는 몇몇 위대한 선구적인 종교개혁 설교자들을 본다. 위대한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4), 위대한 존 후스(John Huss, 1369), 위대한 존 타울러(John Tauler), 북이탈리아의 위대한 사보나롤라(Savonarola, 1452) 그리고 이 기간이 끝날 무렵의 성경 번역자인 틴데일(Tyndale)이 있다.


선구적인 루터식 개혁자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들 중 하나는 피터 왈도(Peter Waldo, 1176)로서 그는 프랑스 리용의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는 성경과 성경적인 사상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성경의 여러 부분을 자국어, 즉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로 번역했다. 그는 또한 평신도들이 거리에서 설교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가 실수가 없다는 것을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 때문에 카톨릭 교도들은 그의 추종자들을 더욱 적대시하였으며, 마침내 그들은 “카톨릭”에 의해 고문당하고 살해당하고 총살되고 수장되며 교수형에 처해지고 칼에 찔리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죽임을 당했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4-1384)는 성경적인 개혁자로서 성경의 가르침들로 로마 교회의 관습들을 개혁했다. 그는 이단으로 낙인찍혔다(현대의 관습도 정확히 똑같다. 어떤 사람이라도 로마 교회를 성경으로 조명하려 한다면 그는 “공산주의자”나 “이단”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개혁자들을 낙인찍는 방법이다. “개혁인가 반역인가”라는 콜럼버스 기사단에서 펴낸 소책자들에 의하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갔던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이 하나님께서 로마 교회에 주신 권위에 반항하는 반동자임을 입증하려고 애쓴다). 위클리프는 옥스포드에서 교육받았고 그의 교육 덕분에 영국 상류 계급의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그는 교황의 무오설에 반대했다. 그는 무형 교회를 강조하였으며, 규칙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야 할 목회자들의 책임을 주장했다. 그는 훌륭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고 “롤라드”(Lollards)라는 수십 명의 설교자들을 훈련시켰다.


존 후스(John Huss, 1369-1415)는 프라하 대학의 철학 교수였다(후스가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견해도 위클리프와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보헤미아 부근에서 설교했다(이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흥의 맥은 발칸 제국을 거쳐 독일에서 영국으로 이어진 것이지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간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통성이 이탈리아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봉건적이고 낡아빠졌으며 미신적인 이교도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신앙에 있어서 성경적이거나 성경에 근접한 어떤 태도도 결코 취해본 적이 없다. 이탈리아나 로마는 성경상의 어떤 정확한 진술들을 믿는다는 것 외에는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을 닮은 데라곤 전혀 없다. 물론 사탄도 성경의 일부 정확한 진술은 믿는다!).


15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 중 한 사람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였다. 그는 카톨릭 수도승이었으나 거리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설교하였으며 그곳에서 개혁 운동을 지도했다. 그는 전천년주의를 설교했으며, 교황의 권위를 포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공격하였다. 결국 그는 순교당했다. 교황은 먼저 그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하기를 “그대에게 붉은 모자(a red hat)를 수여하겠노라.”고 했는데 그것은 추기경으로 추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나는 피의 붉은 모자(a red hat of blood)를 취하겠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순교를 각오한 죽음의 모자를 의미했다. 그는 이 모자를 썼다. 그들은 그를 말뚝에 결박하여 화형시켰다. 화형시키기 전에 “카톨릭”사제가 “너를 교회 회원들(지상에 있는 자들)과 교회 승리자들(하늘에 있는 자들)로부터 떼어놓겠다.”라고 말했다. 사보나롤라는 “네가 나를 교회 회원들(지상에 있는)로부터 떼어놓을 수는 있어도 교회 승리자들(하늘에 있는)로부터는 떼어 놓지 못할 걸세. 그것은 네 권한 밖이거든.”하고 받아 넘겼다.


종교개혁 전야에(A.D. 1500) “거룩한” 로마제국은 끓어 넘치려는 달구어진 주전자와 같았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적, 종교적으로 폭발하려는 시기였다. 카톨릭 교회는 썩을 대로 썩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그 폭발에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사람은 한 독일 광부의 아들인 마틴 루터였다. 그는 헨리 8세를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미움받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틴 루터는 독일을 교황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미움을 받는다. 헨리 8세가 미움받는 이유는 그가 영국을 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 두 사람 때문에 세상을 광범위하게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상실했다. 독일과 영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는 것은 미국과 호주, 캐나다의 상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깨진 지배권의 상실로 말미암아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영국과 독일을 카톨릭 교회로 복귀시키기 위하여 지난 500년을 소비했다. 결과적으로 아돌프 히틀러와 조셉 괴벨이 둘다 로마 카톨릭 신자임을 알았다고 해서 놀랄 것이 없다! 이 기간(1500년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다(1492). 이 때는 르네상스의 전성기이기도 하며 고전 시대의 문학 및 사고방식들을 재발견 하는 시기이다(이것은 또한 인간 생활의 세속화를 초래한다). 고대 자료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들이 이 시대에 복구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물론 성경도 포함된다. 나라 전역에 인쇄되었던 성경은 희랍 비잔틴 동방 교회의 <표준원문>이었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더 이상 성경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라틴 벌게이트는 수도승들이 거두어서 수도원들에 보관하였으며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했다. <표준원문>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거리 설교자들이 전했다.


6◎ 필라델피아 교회시대


“필라델피아”“형제의 사랑”을 뜻하는 두 헬라어 낱말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1500년에서 1900년까지의 교회 기간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이 시기는 (교회에 관한 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간인데 그 이유는 이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회개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던 길을 가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세상이 그 시대까지 이어온 이래로 산업혁명과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주요 진보적인 발전을 가져 온다.


필라델피아 교회의 운동은 매우 강력하고 일관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이 시대는 진화론을 사실로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빅토리아 여왕 치하의 대영제국하에서 <킹제임스성경>이 땅끝까지 전파된 결과일 뿐이다. 다윈과 다른 영국인들은 생각하기를 종교개혁이 가져다준 문명의 열매들과 더불어 (<킹제임스성경>에 이 때는 “열린 문”과 “열린 성경”의 교회 시대이기에 모든 것이 향상된다고 예언되어 있다.) 이 복음주의적인 개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동물에서부터 고등하게 진화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신성하게 승화해 가는 자기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믿을 만큼 멍청했고, 유세비우스와 콘스탄틴이 로마 교회와 연관을 가지고(계 2:12) A.D. 325년에 꾸며낸 낡은 후천년주의 이론이 다시 대두된다! 이 교회는 캐리(Carey), 져드슨(Judson), 고포드(Goforth), 테일러(Taylor) 같은 많은 선교사를 내보냈고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천국이 확장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물론 남침례교 총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오늘날도 여전히 이렇게 믿는다!).


이 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이다(계 3:8) 다음 기간의 라오디케아 교회는 닫힌 문(계 3:20)을 가진 교회이다. 이렇게 필라델피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을 펴낸다. “나의 말을 지켰고”(8절). 이 말은 일곱 교회 중에서 필라델피아 교회에만 언급되었다. 영어로 된 <킹제임스성경, 1611>을 만든 1500-1900년까지의 필라델피아 종교개혁 교회 기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 유일한 교회이다. RV(1884), ASV(1901), 그리고 1904년 영국 해외 선교 협회가 AV대신 RV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과 더불어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을 거부한 닫힌 문의 교회로 들어간다.


A.D. 200-325년 사이 스머나 기간에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들의 무리를 보았다(계 2:9). 스머나에 있었던 이런 자들은 자기들이 진실한 유대인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실제의 유대인들과 완전히 단절하였다고 주장했으며,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참 계승자라 하였고 후천년 교리를 가르쳤다. 이 “작자들”이 종교개혁 기간인 계시록 3:9에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 이들은 실제로는 로마인들이면서 유대인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껏해야 이스라엘을 도둑질했으면서 자기들이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도들의 활동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온 후천년주의 강도들과 같은 도당이다.


1500-1900년 기간에 바티칸은 “지하”로 들어가서 1930년 이후에 다시 등장한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계시록 3:9과 계시록 17:1-9에서 말씀하신 가증한 어미와 똑같아진다. 이 로마 교회는 “지옥의 문”과 동맹 관계에 있다. 이 기간에(1500-1900) 프로테스탄트의 성경적 기독교 신앙은 급속하고 완전하게 퍼져나가서 1900년경에는 순간적으로 교황들이 모두 끝장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교황들은 다른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개정위원회라는 밀폐된 문으로 들어가 <표준원문>을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로마 카톨릭 원문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1884년 이후에 나온 모든 성경은 기본적으로 로마 카톨릭 성경이다! 로마 교회는 1980년경에 다시 조종석에 앉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 로마가 권력을 잡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도 로마가 권력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교회 기간은 1500-1900년 사이의 역사 기간에 나타난 교회를 대표하는데 이때는 프로테스탄트의 성경적 기독교 신앙이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그뒤에 전적인 배교로 돌아서서 로마 카톨릭으로 향한다(다음의 라오디케아 교회 기간은 그 시작부터 로마 교회의 지독한 술수에 말려들어서 1950년경에는 교회가 A.D. 325년의 퍼가모 교회 시대 상황과 같아지게 된다).


필라델피아 교회 기간은 교회사에서 단연 가장 흥미로운 시대이다. 이것은 열린 문을 가진 교회 기간이다. 이 시대는 모든 위대한 구령자들, 모든 위대한 복음 전도자들, 모든 위대한 선교사들로 빛났던 시대이다. 결론적으로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부흥의 하나님이심을 입증하기 원할 때 항상 언급되는 교회사 부분이다. 바로 이 교회는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 (그 동안 들어왔던 설교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 중 하나는 현대의 복음주의자가 자신은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면서 강단에서 위대한 부흥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킹제임스성경>과 같은 원문을 사용했다. 뒤이어 이 번역성경들을 사용한 유럽과 미국의 모든 성경은 <표준원문>이고 헬라어 비잔틴 원문이며 시리아 계열 원문이지 북아프리카 라틴 교회 원문이 아니다.) 이 기간은 1500년에 시작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에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이 때쯤 르네상스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또 발보아, 마젤란, 코르테즈, 헨리 허드슨 등의 위대한 탐험가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화가 램브란트도 이 시대의 인물이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도 등장한다. 나폴레옹 전쟁이 있었다.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 곧 바하(1750), 브람스(1897), 베토벤(1827), 바그너(1893) 등의 음악이 탄생한다. 이 기간에 미술, 과학, 음악, 산업, 여행, 탐험에서 모든 엄청난 변혁들이 일어난다. 이 기간은 “열린 성경”의 날들이었다. 마틴 루터 성경과 <킹제임스성경>이 전세계 도처에 있었기 때문에 4백 년 동안 이 세상에 축복이 쏟아질 수 있었다. “카톨릭” 교회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 기간에 남북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 그리고 1812년 전쟁이 있었다. 이 기간에 모든 위대한 발명과 모든 위대한 발견이 있었다. 또한 이 기간에 무신론, 공산주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학문의 여파가 유사 이래로 매우 압도적으로 몰아친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쯔, 데카르트, 헤겔, 루소, 아스트룩(Astruc), 칸트, 에왈드(Ewald), 델리취(Delitzsch), 벨하우젠(Wellhausen), 세믈러(Semmler), 노이만(Neuman), 슐라이마허(Schleirmacher), 예수회(the Jesuits), 레싱(Lessing), 트레겔러스(Tregelles), 티셴돌프(Tishendorf), 프로이드, 헉슬리, 바우어(Bauer), 맑스, 다윈, 스트라우스(Strauss), 제임스(James) 그리고 이들 모두를 거느린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 다윈은 자기 꼬리를 잘라버림으로써 하나님을 등진 원숭이가 되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섹스 신경증 환자로서 꿈들에 관한 책들을 쓴다.


마틴 루터, 스토치(Storch), 스투브너(Stubner), 문쩨(Munzer), 스타우피츠(Staupitz), 멜랑크톤(Melancthon), 허브마이어(Hubmaier), 피터 뵐러(Peter Boehler), 스페너(Spener), 진젠돌프(Zinzendorf)는 카톨릭과 단절하고(1500-1600) 하나님을 위해 국토를 뿌리째 흔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죽고 사라지자 마자”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성경을 공박하는 인문주의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말살하는 데 헌신했던 로첸부쉬(Rauschenbusch), 스트라우스, 아스트룩, 벨하우젠, 라이프니쯔 등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마틴 루터는 독일 광부의 아들로 1483년에 태어났다. 그는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랐으며 광부였다. 소년 시절에 그는 거리에서 성가를 불렀고 후에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에르푸르트(Erfurt) 대학에 법률을 공부하러 갔다가 그곳의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루터가 로마에 갔을 때 그는 거기서 난잡한 일들을 본다. 1512년에 그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스타우피츠를 이어 신학 교수가 되며 1546년까지 이 자리에 있게 된다. 그는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여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그(Wittenberg) 교회 문에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못박는다. 이 반박문을 인쇄한 사본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심지어는 루터 자신이 반박문 사본을 로마에 보내기에 이른다. 뒤이어서 그는 보름스(Worms) 의회(1512)의 신부들, 교황들, 주교들로 구성된 범죄단 앞에서 힐문 당하고 여기서 그는 성경을 거부하는 전 로마 카톨릭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를 하는 것은 안전한 것도 정직한 것도 아니기에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시여 저를 도우소서, 여기 제가 서 있나이다!”라고 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루터는 지도력을 갈망하는 세대에게 인기있는 역동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찬송하고 작곡도 할 수 있었으며, 위대한 설교자였고 독일어와 라틴어로 설교할 수 있었다. 마틴 루터의 성경 번역은 <킹제임스성경>이 영어에 미친 영향처럼 독일어에 기념비적인 공헌을 하였다). 마틴 루터는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 대신에 “지옥의 전하”, “사악한 지옥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마틴 루터의 추종자들이 그의 뒤를 이었는데 루터보다 좀 더 급진적이었던 쯔빙글리같은 사람들의 주도로 “농민 전쟁”이 일어났다. 호프만, 뮌쩌와 다른 급진주의자들이 나가서 수도원들을 불태우고 소수의 신부들과 수도승들을 죽였으며, 몇몇 수녀들을 붙잡아 그들의 옷을 찢고 양초들을 태우며 묵주들을 깨뜨렸다(마틴 루터는 이런 모든 행위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율리히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지역에서 종교개혁의 일부를 담당했다. 그는 베른(Bern), 비엔나(Vienna), 바젤(Basel)에서 공부했다. 쯔빙글리는 “거듭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교황과 관계를 끊고 결혼했으며 독신을 반대하는 설교를 공공연히 했다. 점차적으로 그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승리를 거두었고 존 칼빈이 1509-1564년까지 그의 개혁을 계승하게 된다.


존 칼빈은 흔히 “프로테스탄트의 교황”이라 불린다. 그는 죽어버린 정통주의 신학자였으며 매우 엉성한 신학 개념을 소유했다. 그는 로마 카톨릭처럼 무천년주의자였다. 그러나 때때로 칼빈은 어떤 믿음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근본주의적이었다.


대륙에서의 종교개혁과 더불어 영국 교회는 “행실을 고치기 위해” 움직였다. 이 움직임은 몇몇 위대한 설교자들을 낳았다. 종교개혁은 존 낙스(John Knox)의 사역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먼저 일어났다. 파렐(Farel)은 위대한 설교자였다. 버나디노(Bernadino)는 개종한 로마 카톨릭 신자로서 복음을 전파했다. 메노 시몬즈(Menno Simons)는 메논파 교도(the Mennonites)를 창시했으며 위대한 설교자였다. 스토치, 스투브너, 뮌쩌는 위대한 독일 설교자들이었다. 스타우피츠, 그레벨(Grebel), 허브마이어의 설교도 강력했다. 독일인 피터 뵐러는 요한 웨슬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독일인 진젠돌프는 프러시아의 할레(Halle)에 고아원을 세웠고 모라비안 교도들을 돌보았는데 이들은 인디아, 중국, 일본 등지의 세계 도처에 나가 복음을 전했다. 독일인 프랑케(Franke)는 복음을 전했고 경건파 교도(Pietists)와 모라비안 교도들의 선교 사업을 도왔다.


요한 웨슬리가 구원받았을 때 영국은 사회적인 격변을 맞고 있었다.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리가 그 안에 뛰어들어 복음을 전함으로써 영국은 진정되었다. 요한 웨슬리는 하루에 두 시간에서 네 시간까지 기도하곤 했다(그는 나이 칠십에도 한번 설교하면 세 시간 동안 설교했다). 그와 휫필드는 야외에서 설교했으며 중생과 회개를 설교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교도이며, 불경건하고, 반그리스도적이며, 낡아빠졌고, 쓸모없다고 설교했다. 웨슬리는 심지어 성공회도 비난했는데 그 이유는 성공회가 너무 형식적이었고 카톨릭 교회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인 성공회 신부에게 “나의 교구는 세상이라네.” 하면서 야외에서 설교했다. 조지 휫필드도 같은 일을 하였다. 이 두 사람은 박해당하고 저격당할 위험에 처하고 협박받았다. 두 사람 모두 원숙한 노년까지 살아서 죽는 날까지 설교했다.


조지 휫필드는 세 시간이나 길게 여러 번 설교하였고 때로는 목청이 터질 때까지 설교했다(웨슬리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설교했을 때는 카톨릭 교도들이 거기서 그에게 돌을 던지고, 그가 기대 서있었던 10피트 높이의 동정녀 마리아 상에서 그를 밀어뜨리다가 카톨릭 교도가 대신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으며, 어떤 자는 웨슬리에게 던진 돌에 입을 맞았고, 또 웨슬리의 입을 막으려 했던 사람의 손이 찢어지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한번은 조지 휫필드에게 2피트 뒤에 서 있는 한 사내가 총을 겨누면서 “입닥치지 않으면 머리통을 날려 버릴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휫필드는 계속 설교했고 그는 10분 정도 주변에서 서성거리더니 총을 그의 코에다 대고 그 다음에는 귀에다 대고 눈에 댔다가 위장을 겨냥하고는 말하기를, “이 망할 자식, 머리통을 날려주마!”라고 했다. 마침내 이 사내가 휫필드 뒤 10피트 정도에 멈춰서서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이 폭발해서 도리어 그의 손이 날라갔고 휫필드는 셔츠 뒷부분이 찢어지는 정도의 사건이 있었다.


휫필드가 미국에 왔을 때는 조지아주에서 설교했다. “구식 종교”는 캐롤라이나 주를 휩쓸었으며 보스톤에도 그의 영향력이 크게 미쳤다. 휫필드가 보스톤 공원에 갔을 때 보스톤 대학의 스티져(Stidger) 교수가 그를 만나자 “당신을 여기서 보는 것이 유감이오, 휫필드 형제!”라고 말했다. 휫필드는 “나도 그렇소, 마귀씨!”라고 대꾸하고서 설교하기 시작했다(웨슬리와 휫필드는 그들의 생애중에 대략 2백만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다).


1500-1900년은 “열린 문”으로 대표되는 위대한 기간이었는데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는 아메리카에 와서 인디안들에게 선교하는 침례교 선교사가 되었다. 로져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당연한 듯 아메리카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애쓰는 것을 알았기에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가르쳤다. [교황이 마침내 미국에 당도했을 때 그는 워싱톤에서 20마일 떨어진 메릴랜드 주 발티모어로 이동했다. 미국에서 첫 번째 주교 관할지역은 메릴랜드(Maryland) 주 발티모어였다. 즉 이 “검은 신전”은 메리(Mary)랜드에 있었다.]


1700년경에는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설교했다. 토마스 웹(Thomas Webb)과 윌리암 스트로브릿지(William Strawbridge)는 위대한 감리교 설교자들이었다. 얼마 뒤인 1800년경에 다비(Darby)가 등장한다. 필립 엠브리(Phillip Embry)는 위대한 감리교 설교자였다. 문홀(Munhall)과 컬페퍼(Culpepper)가 1800년경에 나타난다. 이 시기에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가 인디아에 갔고,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가 인디안들에게 갔으며, 저드슨(Judson)이 버마로 향했고,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중국 내지 선교(China Inland Missions)를 했으며, 그 외에 스터드(C.T. Studd), 리빙스톤(Livingstone), 고든(Gordon) 등의 위대한 선교사들이 있었다. 중국, 일본, 인디아에서의 이 모든 위대한 선교사들의 활동이 1800-1900년 사이에 일어난다.


이 기간에 위대한 강단 설교자들이 있다. 탈마지(Talmage), 박스터(Baxter), 페이슨(Payson), 컬페퍼(Culpepper), 순회 복음 전도자인 제이콥 넵(Jacob Knapp), 감리교 순회 전도자인 피터 카트라잇(Peter Cartwright)은 사람들을 압도해서 꼼짝 못하게 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한다고 고백하도록 설교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이빨을 몽땅 부셔 버릴 기세로 설교했다! 제임스 맥그리디(James Mcgready)는 테네시 변경의 설교자였고, 로렌조 다우(Lorenzo Dow)는 세미놀 인디안 혼혈인데 알라바마와 조지아에서 설교했다. 이 외에도 쉘돈 잭슨(Sheldon Jackson), 빌리 브레이(Billy Bray), 챨스 구트리(Charles Guthrie) 그리고 웨일즈 출신의 위대한 감리교 선교사들이 있었다.


이 기간은 챨스 피니(Charles Finney)의 위대한 부흥과 스펄젼(C.H. Spurgeon),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의 부흥이 있었다. 무디는 수백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그는 말이 빨라서 그의 설교를 기록하는 데에는 두 명의 속기사가 필요했다. 한번은 무디가 설교를 마쳤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내가 세어 봤는데 당신은 설교에서 여든 네 번의 문법적인 실수를 했더군요.”하고 말했다. 무디는 자기 혀를 내밀어 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 혀를 보시오.” 그 사람은 “보고 있소.”라고 대답했다. 무디는 “나는 이 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있오. 당신의 혀는 무엇을 위해 사용합니까?”라고 말했다.


무디는 무디 성경 연구원을 설립했으며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통주의 입장을 지키고 있고 지상의 어떤 다른 기관보다도 더 오래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보존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디의 설교는 토레이(R.A. Torrey)가 계승한다. 토레이는 위대한 복음주의자이고 적극적인 신학자로서 프랭클린 델리취(Franklin Delitzsch) 밑에서 공부했다(토레이는 델리취에게서 그의 성경 비평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고, 가끔 RV와 ASV를 사용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했고 전천년주의를 믿는 정통주의자였으며, 지옥 불과 저주 그리고 중생을 설교했다).


이 기간에 선교 연합 소속의 조셉 파커(Joseph Parker)와 심슨(Simpson)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던 위대한 설교자들이었고 위대한 인물들이었다. 1900년에 가까이 와서 샘 존스(Sam Jones)가 있었는데 그는 감리교의 순회 설교자로 알라바마에서 태어났다(그는 카터스빌과 조지아를 순회하였으며 그의 일 년 설교 수입은 80불이었다). 샘 존스는 주정뱅이 법률가였는데 부친 임종시에 구원을 받았다. 그는 순회 감리교 설교자로 알라바마, 조지아, 테네시, 캘리포니아, 텍사스, 남북 캐롤라이나, 미시시피, 아칸사스 등 온 지역을 다니며 설교했다. 그는 후에 위대한 복음주의자가 되어 진정 훌륭한 인물로 남는다. 샘 존스는 대단한 기지가 있었으며 수천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했다.


이 기간에 우리는 위대한 조지 뮬러(Gerge Muller)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영국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워서 4백만 달러 이상의 기도를 응답받았다. 할데인(Haldane) 형제들은 구원받아 바다의 불경건한 해적선들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다. 데이빗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은 아프리카에서 죽었는데 그의 심장은 도려내어져 아프리카에서 태워졌다(그는 침상에서 이교도들을 위해 무릎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죽었다). 이 외에도 스터드(C.T. Studd), 고든(Gordon), 크로닌(A.J. Cronin)과 서부 해안가를 오르내리며 순회하였던 위대한 장로교 설교자 얼(Earle)이 있다.


필라델피아 기간에 테일러(Taylor), 모건(Morgan), 고포드(Goforth), 저드슨(Judson), 피스크(Fiske), 부스 장군(General Booth), 블리스 선장(Captain Bliss), 화니 크로스비(Fannie Crosby, 위대한 찬송작가), 위대한 여선교사 하버걸(Havergal), 페이슨(Payson), 성결에 관한 책들을 쓴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순회 감리교 설교자인 백스터 맥클렌돈(Baxter McClendon, 열대 폭풍우같은 아일랜드인), 위대한 감리교 설교자이며 훌륭한 인물이었던 모리슨(H.C. Morrison), 그리고 빌리 선데이(Billy Sunday)의 사역에 필적하는 윌버 채프만(Wilbur Chapman)이 있다. 또한 <스코필드 관주성경>을 편집한 게벌라인(Gaebelein), 페팅길(Pettingill), 스코필드(C.I. Scofield)도 있다. 1900년에 이르면서 우리는 “여러분 거듭나야 합니다!”라고 설교했던 감리 교회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게 된다(감리 교회가 1910-1920년경에 현대화되기 전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글자 그대로 수천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구원받았다).


필라델피아 기간에 또 한 사람 빌리 선데이(Billy Sunday)가 있는데 그는 구원받은 야구 선수였다(그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지금도 가장 빠른 주자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빌리 선데이는 맨발로 뛰었다). 그는 시카고의 멜 트로터 구제 선교회 밖에서 그의 두 “친구”가 비웃는 동안 구원받았다. 빌리 선데이는 백만 명 이상의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다. 그가 죽기 전에 행한 마지막 설교에서는 열여덟 명의 성인 남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려고 통로로 걸어 나왔다. 빌리 선데이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호머 로드히버는 그를 20년 간 알고 지냈는데 그는 “빌리 선데이가 강단에서나 강단 아래서 하찮은 농담 한 번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그가 설교한 대로 살았다.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청렴한 사람 중 하나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열정적인 복음주의자였으며 위대한 인물이었고 글자 그대로 수천 내지는 수백만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이 기간에 빌리 그래함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모르드캐 햄(Mordecai Ham)이 태어났다. 모르드캐 햄은 캔터키와 알칸사스에서 성장했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위대한 구령자였다. 그는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카톨릭은 그를 협박하였고 살인 청부업자들이 그의 아들을 유괴하겠다고 위협하곤 했는데, 한번은 그들이 모르드캐를 거리에서 차로 깔아 뭉개어 범퍼에 매달고서 상당한 거리를 끌고 갔다. 또 한번은 어떤 사내가 모르드캐가 묵고 있던 호텔 밖에 있다가 그 앞에 다가와 4.5구경 권총을 그의 가슴에 대고 차에 태워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갔다. 햄은 “5초의 여유를 줄테니 총을 거두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총을 거두고 그를 내리게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에 빌리 그래함이 구원을 받았다.


이 기간 즈음에 알라바마의 도단 근처 브라논 야외 음악당이 있는 조그만 도시에서 밥 존스 시니어(Bob Jones Sr.)가 태어난다. 또 프랭크 노리스(J. Frank Norris)도 텍사스에서 성장하여 후에 루이스빌 신학교에 다닌다.


이것이 1500-1900년 기간에 있었던 참된 교회의 위대한 전성기이다. 이 시기에 다윈, 헉슬리, 맑스, 버트란트 러셀, 로첸부쉬, 베이컨, 브루너, 리츨 등과 모든 구원받지 않은 인문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성경 거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고 뒤집어 엎으려 했던 반면에, 복음은 초원을 태우는 불처럼 아메리카, 캐나다, 미합중국, 아시아로 번져 나갔고 사람들은 수천 명씩 구원을 받게 되었다. 성경이 가는 곳마다 교육의 규범이 세워졌다. 성경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부와 건강을 축복하셨다.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힘은 그렇게 위대했다. 구원받지 않은 교육자들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실제로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이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여 이렇게 고등한 존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더 큰 오해는 없을 것이다! 타락한 학자들이 은밀하게 오랫동안 꾸준한 작업을 하여 기독교의 기반을 망치로 두들겼다.


제칠일 안식교는 1833년에 시작되었으며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RV가 1885년에 번역되어 <킹제임스성경>을 대신하려고 했다. 메리 베이커 페터슨 에디는 1879년에 “쓸데 없는 것들”을 한 무더기 들고 나와 말할 가치도 없는 시시한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안식교도들이나 자기들이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몰몬교도 같은 영적으로 타락한 무리들도 생겨났다. 이들은 어떤 황금판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쇼맨쉽을 부렸고, 오늘날도 그러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들을 비평하면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비방하고 성경을 부인했으며,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에서 아주 비성경적인 쇼를 여느라 대단한 종교 의식을 마련하여 지옥을 향한 백 년이나 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필라델피아 기간에 카톨릭 교회는 은밀하게 성경 개정 위원들 사이에 침투한다.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그들은 모든 성경대로 믿는 프로테스탄트를 공식적으로 저주했다(트랜트 종교회의에서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외경이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모든 이에게, 물침례 없는 구원을 가르치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사들을 받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저주를 선포하였다!). 카톨릭 교회는 1700년에 지하로 들어가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개정 위원회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RV가 1884-1885년에 나왔을 때 이것은 성경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본에서 나온 별개의 책이었다. RV(1884), ASV(1901) 그리고 RSV(1952)는 A.D. 325년에 변개된 로마 카톨릭 원문의 재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성경들은 유세비우스와 콘스탄틴이 사도 교회들을 파괴하는데 사용했던 원문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 원문은 A.D. 350년에 쓰여진 “바티칸 사본”과 A.D. 331년에 쓰여진 “시내 사본”이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성경들 모두가 기본적으로 취한 원문이다(이것은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채택한 원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연방 종교회의가 이 원문을 1900년에 채택했고, 국가 종교회의가 1940년에, 그리고 바티칸 공의회가 1962년에 같은 원문을 채택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900년은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매우 훌륭했으며 대단히 강력했던 기간의 끝이 된다. 이 기간은 필라델피아 기간으로서 열린 문의 교회 기간이다. 즉 사람들이 구원받았고 복음이 세계에 전해졌으며 문들이 열렸던 것이다. 학자들이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킹제임스성경, 1611>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동안 열려 있었다. 선교의 문들은 교회가 <킹제임스성경>을 거부하고 이것을 웨스트코트와 홀트와 바티칸 원문으로 대체했을 때 닫쳐졌을 뿐이다(이 원문에 대해 여러분이 헬라어 교수를 알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좋으니 필자에게 인용해 보라. 필자는 그와 언제라도 1600개의 모든 사본에 대해 교정, 삽입, 전환 및 억측이 담긴 네슬의 비평장치에 대해 기꺼이 토론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패배나 배교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을 거부할지라도 형제여, 당신은 성경을 가지고 있다(당신이 성경을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성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 휴거 전의 마지막 교회인 1900년대의 라오디케아 기간으로 가자.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교회 시대가 어떻게 훌륭하게 시작되었는가를 (첫 사랑을 잃은 것이 유일한 잘못이기는 하지만) 보았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기간의 끝에 이르러서 라오디케아 기간에 들어갈 때 쯤에는 교회가 미적지근하고 마땅히 되어야할 모습을 상실한 채 세속화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에베소와 스머나 교회는 “열정이 있었고” 퍼가모와 두아티라에서는 “파멸되었고”, 사데와 필라델피아 교회는 다시 “열정이 있었고” 라오디케아에서 다시 “파멸된다.” 역사는 되풀이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이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것은 역사에서 결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계시록에서 배우는 역사는 공립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교회사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에서 행하신 일과 사탄이 역사에 저지른 짓, 그리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실제 역사 속에서 저지른 정치 공작들을 알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뉴스”를 정확하게 해설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일들은 오로지 교회사에만 기록되어 있기에 교회사를 정확히 공부해야 한다.


7◎ 라오디케아 교회시대


“라오디케아”“사람들의 권리 또는 정의”를 뜻한다.

문자 그대로 이 시대(A.D. 1900-?)는 하나님의 권리에 대적하는 인간의 시민적 권리로 특징 지워진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주 예수 그리스도) “권리”란 온데간데 없는 마지막 교회 시대이다. 마지막 교회는 정통을 주장하지만 배교에 빠진다. 이 마지막 교회는 정통 신앙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로마 카톨릭 편에 선다. 이 교회는 카멜레온과 같다. 사냥개와 사냥하다가 토끼와 함께 뛰기도 한다. 동시에 양편에 서서 싸운다. 이것은 썩어 빠진 교회로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덥지도 않으며, 차지도 않다. 이 교회는 배교한 현대주의처럼 죽어 버린 정통의 미적지근한 교회로서 성경으로 더워질 정도로 하나님께 가까운 것 같으나 세상에 의해 차가와질 정도로 멀리 있다(여러분은 열광적인 분위기에 튀겨지지 않는다고 해서 형식주의에 냉동될 필요는 없다. 이 교회는 바로 그 중간 분위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지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계 3:15,16). 이것은 그분께서 라오디케아에 질리셨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교회는 엄청난 물질적인 부로 상징된다. 이 교회는 자신의 교회가 얼마나 많은 차량들, 자산, 은행 보유 금액 등을 가졌으며, 얼마나 헌금이 많이 들어 오며, 선교 헌금은 얼마나 많이 책정하는가를 자랑한다. 이 교회는 “나는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었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교회는 빚 대신에 돈을 짊어진다.


교회 시대의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문 밖에 계신다. 교회는 그분을 밖에 세워두고 문을 닫아 버렸다. 이 교회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에게 들어가 그와 더불어 교제하실 것이다. 지역교회가 문자적인 건물로 언급되는 곳은 성경에서 바로 이곳뿐이다. 성경에서 지역교회가 건물로 언급되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문 밖에 두고 문을 닫아 버려 안에서 문을 열지 않으면 그분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유일한 곳이다.


라오디케아 기간을 마감하기 전에 이 기간 중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정리해 보자. 이 기간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언급된 엄청난 “파멸”의 때이다. 이 기간은 1900년경에 시작한다. 이 기간은 1901년 ASV의 출판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 가증스럽고 부정직한 책은 유명한 학교들이 포함된 미국의 모든 정통주의 신학원의 헬라어 학부들에서 여전히 추천되고 있다. 만일 여러분이 밥 존스 대학, 달라스 신학원, 테네시 템플, 그리고 미국의 유수한 성경 연구원들의 헬라어 학부에 편지를 쓴다면, 이들 학교의 교수진이 <킹제임스성경, 1611> 대신 ASV를 추천하는 것을 볼 것이다. ASV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공인 성경이다. 이 성경은 구약에서 “여호와”라는 낱말을 쓰지만 신약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게 “예수님”과 “여호와”를 구분하고 있다. 이 말이 마치 필자가 싸움을 걸려 한다거나 “악당”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멍청한 독자여, 요한복음 9장을 펼쳐서 ASV 난외주를 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지 창조자가 아니라는 주(注)를 볼 것이다! 이것이 믿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누가복음 2:33을 읽어보라.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 않으면 디모데전서 3장을 펴서 16절에 “하나님”이라는 낱말이 빠진 것을 보라. 그 다음에 디도서를 펴면 2:13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대신에 하나님의 영광을 기다린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충격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그때는 ASV를 성경으로 취하는 독자에게 상관않겠다.


1901년에 나온 ASV는 하나님의 말씀에 서투르고 고지식하며 불경건한 번역이다. 비록 정통주의 신학교들의 헬라어 교수들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할지라도 ASV는 아주 명백히 정확하지 않다. 그들이 ASV가 어떤 다른 번역본보다 “훨씬 원문에 충실하다.”고 말할 때에 그들은 명백히 거짓말하는 것이다. ASV는 성경이 아니다. 이것은 바티칸 사본의 미국 역본이다. 이것은 A.D. 325년에 유세비우스와 콘스탄틴이 사용했고, 1000년경의 암흑시대에 수도승들이 사용했으며,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용했고, 오늘날에는 바티칸 공의회의 공인 성경이 되어 버린(1962)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북아프리카 라틴 원문인 바티칸 사본이다(RSV와 RV도 같은 사본을 원문으로 사용했으며 이 외에 윌리암스, 필립스, 모펫, 웨이마우스, 굳스피드, 확대역본, 펜톤, 고베이, 몽고메리, 버클리, 림즈-듀웨이, 람사와 나머지 가짜 허튼 소리를 담은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배교가 일어나는 라오디케아 기간에도 “생명의 말씀”을 설교했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을 여전히 보게 된다. 그들은 밥 존스 1세(Bob Jones Sr.),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 찰리 풀러(Charlie Fuller), 디한 박사(Dr. DeHaan), 테오도르 엡(Theodore Epp), 펄시 크로포드(Percy Crawford), 잭 윌첸(Jack Wyrtzen), 브라운(R.R. Brown), 해롤드 스미스(J. Harold Smith), 히만 애플만(Hyman Appleman), 존 라이스(John R. Rice),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 그레이(Gray), 스코필드(Scofield), 펨버(Pember), 라킨(Larkin), 사우어(Sauer), 존 피터 레인지(John Peter Range), 매이콘(Macon), 스트롱(Strong), 캐롤(Carrol), 트루엣(Truett), 벌링거(Bullinger) 그리고 이 외에 많은 위대한 믿음의 수호자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학자적인” 경향을 거의 띄지 않는다. 여러분은 디한 박사나 테오도르 엡, 챨리 풀러가 지난 10년 간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하는데 시간을 보냈던 것에 주목할 것이다. 그들이 <킹제임스성경>을 고치는 데 시간을 소비했을 때 그들은 그 만큼의 시간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킹제임스성경>을 파괴하는 어떤 사람도 축복하지 않으신다. 너무나 많은 순교자들이 이 원문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죽었다. 우리 시대의 비극 중 하나는 디한 박사(그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찰리 풀러, 테오도르 엡(그리스도인들을 성결케 한) 같은 자들이 그들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네슬 헬라어 신약에 나타난 바티칸 사본인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원문으로 <킹제임스성경>을 고치려고 시도한 것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수치이고 불명예이다. 이 사람들은 위대한 구령자들이었고, <킹제임스성경>으로 설교했으며, 이들의 설교로 수천의 사람들이 구원받았다.


캐나다 토론토의 위대한 선교 지도자인 오스왈드 스미스는 선교사들을 위해 일 년에 30만불 정도를 모금하고 현장에서 “전임으로” 사역하는 수백 명의 진짜 선교사들을 섬긴다.


밥 존스 시니어는 복음을 설교하였고 대학을 설립했다(대공황 때에 파산했다가 테네시 클리블랜드에 다시 재건하였다. 지금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그린빌에 있다). 밥 존스 1세는 지금(1962) 매우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되어 그가 복음을 전했던 날들은 오랜 과거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쓰신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수백 수천의 “복음 전도자들”이 이 학교 출신으로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밥 존스 1세는 그의 생애 동안 <킹제임스성경>으로 설교했다. 그는 감리교인이지만 전천년주의자이다(이 내용이 담긴 “편지”가 캘리포니아의 밥 슐러 교회에 있다).


밥 슐러는 전 시대의 위대한 감리교 신자로서 지금은 은퇴했다. 그는 로스엔젤레스의 트리니티 감리 교회에서 목회했으며 그의 몇몇 아들도 목회하고 있다. 밥 슐러는 전시대의 훌륭한 감리교 설교자로서 그 오랜 “베드로 카트라잇파” 설교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찰리 풀러는 캘리포니아에서 전세계에 방송되는 “흘러간 시대의 부흥시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수년 간 설교했으며 수백 명을 구령했다.


테오도르 엡은 네브라스카 링컨에서 “성경으로 돌아갑시다.”라는 방송을 담당했다.


디한 박사는 미시간의 그랜드래피드에서 방송을 맡았고 좋은 서적을 많이 펴냈다. 디한 박사는 어린애다운 타입의 단순한 선생이지만 매우 유능했다. 그의 많은 책은 믿음의 근본에 대해 훌륭하게 기술하고 있다.


잭 윌첸과 펄시 크로포드는 라오디케아 기간에 뉴욕에서 청년들과 함께 사역하는데 두 사람 다 훌륭한 일꾼이다.


해롤드 스미스는 테네시의 낙스빌에서, 그의 고향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그린빌까지 알려진 위대한 설교자이다. 그는 현재 아칸사스의 포트 스미스에서 설교한다. 그는 의를 수호하기 위한 훌륭한 투사이고 십자군이며 말씀의 위대한 설교자이다. 그는 남침례교인이지만 RSV를 대항해서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한 리(R.G. Lee)처럼 위대한 십자군이다.


히만 애플만은 구원받은 러시아 유태인으로서 훌륭한 복음주의자이며 여전히 많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존 라이스는 <주의 칼, Sword of the Lord> 편집자인데 수백 권의 논문과 소책자를 냈다. 그는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돕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치는 것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 그가 <킹제임스성경>을 설교하며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역을 엄청나게 축복하셨다.


우리는 위대한 프랭크 노리스를 본다(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침을 뱉으려 할 것이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많은 설교자는 심지어는 그가 구원받았다고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친밀함이 경멸을 낳는다.”는 참된 격언에서 유래한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결점이 있으며 갑옷에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프랭크가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십자군이었다. 그의 영향력 덕택에 그가 죽을 때까지 남침례교 총회의 설교자들은 전천년주의 입장을 유지했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는 후천년주의를 강력히 주장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들의 “발이 불 속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 그들의 발자국에 멈추어 서 있도록 하였다(여러분이 오늘날 남침례교회들에서 수백 명의 전천년 설교자들을 보는 것은 프랭크 노리스의 사역 덕분이고, <스코필드 관주성경>의 편찬은 그가 강력히 추천하였던 결과이다). 노리스는 모르드캐 함(Mordecai Ham), 디트로이트의 보샹 빅(Beecham Vick), 오하이오 캔톤의 해롤드 헤니거(Harold Henniger)와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존 롤링스(John Rawlings)의 사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이 많은 설교자들이 “독립 침례교회 친교회”(BBF: Bible Baptist Fellowship)를 만들었다. 이 그룹들은 현재 엄격한 전천년 체계의 성경적 입장에서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하는 최고의 거대한 지역교회 조직이다.


이 조직에 오하이오 캔톤의 해롤드 헤니거와 플로리다의 잭슨빌에 있는 비버스트리트의 침례교회 목사인 핫지스(Hodges), 플로리다 잭슨빌의 밥 잉글(Bob Ingle) 목사, 그리고 멕시코만 연안과 텍사스에 수백 개가 넘는 교회들이 있다.


프랭크 노리스는 지금까지 살았던 혁혁한 두 명의 복음 전도자들과 맞먹는 그런 위대한 영향을 젊은 설교자들에게 끼쳤다. 한 교회에서 분리되었던 독립 침례 신학교와 성서 침례 신학교는 프랭크 노리스의 말기 작품이다. 이 두 학교는 미주리의 스프링필드와 텍사스의 알링톤에 있고 이에 더하여 밥 존스 1세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그린빌에 있는 학교와 리 로버슨의 채타누가에 있는 학교는 오늘날(1962) 신약 기독교 신앙과 정통 복음주의의 못자리판이다. 이 학교들은 현대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카톨릭 등에 의해 맹렬한 미움을 받는다. 이 학교들은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을 계속해서 배출해냄으로써 몇몇 설교자들은 <킹제임스성경, 1611>을 최종권위로서 진실되게 믿고,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여전히 사실로 믿는 크고 훌륭한 교회들을 세웠다. <킹제임스성경>과 전천년주의는 20세기에 있어 배교의 늪으로 가라 앉지 않고 “공 위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여러분이 지역교회로서 <킹제임스성경>과 전천년주의를 믿는다면 배교할 수 없다. 때로는 재난과 문제들이 있을지 모르나 전천년주의를 믿고 <킹제임스성경>을 의지하는 사람치고, “헬라어 원문”이나 “더 우수한 번역본들” 또는 존 칼빈이나 무천년ㆍ후천년주의 등에 바보같이 맴돌면서 참으로 무모한 짓을 했던 경우는 교회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여러분은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가르치면서 <킹제임스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의 기조인 <킹제임스성경>을 지키신다.


여러분은 이 라오디케아 기간을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자랐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가장 큰 두 전쟁이 있었다. 곧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그리고 한국 전쟁도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레닌, 프랑코, 스탈린, 카스트로가 등장했었다. 이 기간은 로마 카톨릭이 재등장하여 문자 그대로 세상을 전복한다. 아프리카의 추기경들을 바티칸에 있게 함으로써 오늘날도 계속되는 콩고 내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갈등을 야기시켰다. 베트남과 라오스에 간섭함으로써 불교의 수도승들이 분신 자살하도록 만들었다. 이 세기에 일어났던 모든 독재자는 로마 카톨릭 신자였다. 러시아의 희랍 정교회 출신들인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은 이 종교에 반항하면서도 카톨릭 교회 동방 지부를 세웠다. 그럴 즈음에 대양 반대 편에서는 훌륭한 로마 카톨릭 신자들로서 바티스트, 트루질로, 카스트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등장했다. 유럽의 두 훌륭한 로마 카톨릭 신자인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세상을 2천 2백만의 생명을 앗아간 대학살의 현장으로 돌변시켰다. 언급된 모든 이름들은 로마 카톨릭 신자였고 세례와 성사를 행하였다. 다시 말해서 아돌프 히틀러, 무솔리니, 요셉 괴벨, 카스트로, 바티스트, 트루질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트로츠키, 레닌, 스탈린, 바로 이 마지막 사람까지 모두 카톨릭이었다. 인간이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것은 역사에서 결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마 교회는 ASV원문으로 미국 정통주의 학파들을 전복하려고 준비하면서 로마 교회를 다루고 있는 성경 내용을 설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투옥하도록 연방 정부를 이용할 태세를 갖추어 놓았다. 그리고 그 동안 로마 교회는 미국의 재무성과 법무부를 조종하여 여러분의 세금으로 그들의 학교나 어리석게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을 지원하여 그들로 자기들을 지지하도록 하고, 공산주의 러시아나 동ㆍ서독에 대해 신경쓰도록 하며 더 잘된 번역 성경들을 만들도록 한다! 이것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이것을 생각하면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 시대에 스펠만 추기경(Cardinal Spelman)과 예일 신학교의 웨이글(Dean Weigle) 학장은 성경을 오용한다. 풀톤 쉰(Fulton Sheen)은 TV의 스타로 등장하고 오랄 로버츠(Oral Roberts)만이 필적할 수 있을 정도의 종교적인 마술 쇼를 연출한다. 넬스 페레(Nels Ferre)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였고 루이스빌 남침례 신학교에 와서 젊은 목회자 후보생들하고 얘기할 때면 사례금이 지불되었다. 맥코넬(McConnel), 하크니스(Harkness), 반 도이젠(Van Deusen), 악스남(Oxnam), 그랜트(Grant), 버트릭(Buttrick), 리프만(Lippman), 차펠(Chappel), 존스(Jones), 슬로안(Sloan), 스톡웰(Stockwell), 카가와(Kagawa)는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형제다.”라고 하며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쳤다. 모든 종교적 인문주의의 쓰레기들을 장려하는 로첸부쉬, 조지 버나드 쇼, 헤밍웨이, 포스딕, 블레이크, 슈타인백, 세인트 루이스의 달벅이 있었고, 이들은 이 세계의 인본주의자들이고, 공산주의자들이며, 사회주의자들이고, 성경을 거부하며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칭 그리스도인인 모든 이단자들이었다. 이 시대는 A.D. 325년 이후 한 세기가 연출해 왔던 것 중에서 최고의 위선적인 행위와 가장 끔찍한 종교적 배교 행위를 연출했다.


그렇지만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음성도 울려 퍼졌다! 뉴욕 갈보리 침례교회 목사였던 할데만(Haldeman), 할데만을 뒤이은 윌리암 워드 아이어(William Ward Ayer),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s), 밥 슐러(Bob Schuler), 오늘날도 여전히 설교하는 위대한 복음주의자 지미 존슨(Jimmie Johnson), 프레드 브라운(Fred Brown), 제시 헨리(Jesse Henley), 플로리다 올란도의 다니엘즈(E.J. Daniels), 코튼 머서(Cotton Mercer), 먼로 파커(Monroe Parker), 휴 파일(Hugh Pyle), (엄청난 주일 학교들을 조직해서 인도하며 훌륭한 여름 캠프를 통해 수백 명의 젊은이를 구령하고 목회의 소명을 심어 준) 디트로이트의 보샹 빅(Beecham Vick) 등이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포트 워스의 호머 리치(Homer Ritchie) 사역과 훌륭한 복음 전도자인 레스터 롤로프(Lester Roloff) 그리고 캔사스 시의 웬델 짐머만(Wendell Zimmerman)을 발견할 것이다. 지금은 사망한 다우슨 트로트만(Dowson Trotman)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네비게이토” 사역을 통하여 배 위에서 수천 명의 군인들과 선원들을 주님께로 인도했고 해롤드 헤니거(Harold Henniger)는 오하이오 캔튼의 훌륭한 정통주의 목회자이다. 이 사람들은 “분리주의자들”, “극단론자들”, “세대주의자들”, “베뢰아인들”로 불렸다. 이들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영어 성경에 충실하였으며,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 교회의 전통과 NCCC(전미 기독교 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 그리고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하여 한 무더기의 학문적 열기 외에는 해결책을 내지 못하는 썩어 빠지고 하찮은 인문주의자들의 사회주의 철학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려는 의욕으로 특징 지워진다.


금세기 초에는 하워드 장군(General Howard)의 사역을 볼 수 있으며, 구세군의 부스(Booth) 대장, 멜 트로터(Mel Trotter), 제리 맥콜리(Jerry McCauley), 어니스트 리빌(Ernest Reavel), 지미 스트라우드(Jimmy Stroud, 테네시 멤피스에서 여전히 사역하는)의 구제 선교 사역을 볼 수 있다. 루터교 정통주의자인 월터 마이어(Walter Maier)의 훌륭한 라디오 사역도 있다. 기독교 선교 연맹(the Christian Missionary Alliance)에서 사역한 피어슨(A.T. Pierson), 심슨(Simpson)과 20세기 초에 위대한 정통 감리교인이었던 캐논(Cannon) 감독과 스트래튼(J.R. Stratton)도 있다. 또 윌버 스미스(Wilbur Smith), 해리 림머(Harry Rimmer) 그리고 스탬(Stam), 벌링거(Bullinger)와 함께 성경에 관한 훌륭한 책들을 썼던 아더 핑크(Arthur W. Pink)의 사역이 있다. 또 조 헨리 핸킨스(Joe Henry Hankins)와 잭 하일스(Jack Hyles)의 사역이 있다.


복음주의자인 머브 로젤(Merv Rosell)이 있다. 로마 카톨릭에서 개종하여 책을 쓰고 설교하는 안토니 자켈로(Anthony Zachello), 몬타노(W.Montano), 카레라(Carrera)가 있다. 로마 교회는 “도끼를 내리쳐서” 폴 블랑샤르(Paul Blanshard), 아브로 맨하탄(Avro Manhattan), 자켈로와 카레라를 될 수 있는 한 신속히 제거하려고 한다! 에디 리버만(Eddie Liebberman)은 개종한 유대인 복음주의자이고, 노엘 스미스(Noel Smith)는 매우 신랄한 논조의 글을 쓰는데 세상 조류를 천년왕국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과 관련하여 아주 잘 분석한 사람이다. 그 외에 기드온(the Gideons), 기독실업인 연합회(the Christian Businessmen's Association), 포켓 성경 연맹(Pocket Testament League), 위클리프 번역회(Wycliffe Translators), 침례교 중부 선교회(Baptist Mid-Missions),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다른 선교 조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라오디케아 기간 중 모든 배교의 중심부에는 전미기독교교회협의회(NCCC), 바티칸 공의회, 정부의 사회주의화, 전미 흑인 향상 협의회(NAACP)의 하찮은 일, 대법원의 반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이며 다윈주의적인 결정들, 그리고 모든 다른 세속적인 어리석은 행위들이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의 말씀을 전한다.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는 현대주의와 자유주의를 계속 공격하여서 그 결과 NCCC에 의해 미움을 받고 있다. 지금은 사망한 반하우스(D.G. Barnhouse)는 수년 간 설교하였고, 지금은 고인이 된 맥긴리(McGinly)는 훌륭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복음 전도자였으며, 보스톤의 오켕가(Ockenga)는 진리를 설교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채타누가의 리 로버슨(Lee Roberson)은 많은 젊은이들이 목회를 하도록 훈련시킨다. 케이스 브룩스(Keith Brooks)와 맥스웰(E.L. Maxwell)은 헌신된 훌륭한 저술가이다. 북부의 달라스 빌링톤(Dallas Billington)은 오하이오 애크론에서 엄청난 사역을 한다.


교회 시대가 마감될 때(1990) (전반적으로) 미적지근한 교회로 특징지워지는데 이것은 “시민의 권리들”, 이 시대의 “사회 계급적인 문제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을 따라가는 언론의 문제들과 연관된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몸을 배교로 향하게 이끌며 끝난다. 필자가 “배교”를 말할 때는 거듭난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복음을 시민의 권리로 바꾼다는 뜻이며, 필자가 방금 말한 그대로 그 양상을 의미할 뿐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돌아서 배교하지만 광야의 침례인 요한처럼 소수의 목소리가 여전히 외치고 있다. [회개하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길을 곧게 하라.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마 3:2,3, 계 1:7).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길을 알며 그 길에 대해서 어떤 망상도 갖고 있지 않다. 누구든지 미래에 대해 기만당할 수 있지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전혀 속지 않는다. 필자는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지금 말하는 것에 대해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자들 가운데 자기가 갖고 있는 성경으로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자들에게는 필자의 말이 자랑하는 듯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듭나고 구원받은 성경 설교자로서 20세기 후반부에 살고 있는 필자는 미래에 관해 아무런 망상도 갖고 있지 않다. 참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덥지도 차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교회에 있다. 그 물질의 축적이나 자랑하는 이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으로 가엾고 불쌍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었으며, 그 교회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A.D. 33년 이후로 교회사에서 가장 비틀거리는 소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설교하도록 부르신 사람으로서 필자는 불로 연단받은 나의 신앙의 어떤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칭찬과 명예와 영광 속에 나타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또 기도하는 것은 그분께서 이 교회에 사라고 권하셨던 흰옷을 살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께서 내 눈에 안약을 바르도록 하셔서 이 마지막 교회가 맹목적으로 로마 교회로 갈 때에, 나의 눈을 떠서 계시록 18장의 그 음흉한 종교 창녀에게 등을 돌리고 “그분의 힘 속에서” 떠오르는 해(말 4:2), 즉 나의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생애의 마지막 시기, 혹은 주님께서 오실 때, 교회사에서 가장 찬란했으며 계속해서 빛날 필라델피아 교회 기간에 신성한 약속으로 내가 받았고, 교황들이 미워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으며, 학자들이 멸시했던 종교개혁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서서 담대하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선포할 시간과 은혜와 능력과 육신의 힘을 주님께서 내게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기도는 없다. 

 

[출처] 일곱교회사|작성자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