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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호 숭례문

한아름정원 2014. 1. 20. 00:19

국 보 1 호


  숭례문(崇禮門 국보 1호)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양 도성의 정문이다. 남대문(南大門)이라는 명칭은 방위를 표시하는 보통 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한양 도성의 정문을 뜻할 정도로 고유명사 처럼 굳어 버렸으나 원래는 숭례문(崇禮門)이라고 불러야 옳다.

 

남대문은 1396년(태조 5)에 축조되어, 1447년(세종 29)에는 개수공사를 하였으며, 1961년에서 1962년 사이 군사정부 시절 목재와 석재 등이 썩고 부서져 무녀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문루와 홍예를 헐고 중수하였다.

 

 

홍예문 위에는 벽돌을 쌓아 여장을 돌리고 양쪽 끝에 조그마한 협문을 달아서 성곽으로 통하는 길을 내어 계단을 통해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성벽 위에는 길이 있어 협문을 통해서 주위를 정찰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다포양식의 건물로 창건 연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실한 목조 건축물의 수법을 보이고 있는 한국 건축사상 중요한 건물중 하나가 된다.

 

지금 남대문 양 옆으로 도로가 있는대 이도로는 정부 종합청사, 서울역, 남대문시장, 중림동방면 등 다섯개의 길로 나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길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성곽이 남산에서 내려와 힐튼호텔 앞을 지나 남대문에 연결되었고, 서소문으로부터 상공회의소 앞을 지나 성벽이 남대문에 연결되어 인마의 통행은 남대문을 통해서 안 할 수 있었다.

 

남대문 주위의 성벽은 일본이 을사조약 후 시가지 학대 사업과 일본 형태지의 조선 방문을 위해 파괴해 버렸다.

 

숭례문 편액의 필자에 관해서는 양녕대군 또는 안평대군이 썻다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다른문의 편액이 가로 쓰임인데 숭례문이 세로로 쓰여 있는 것은 광화문 앞의 해태상과 마찬가지로 숭례문의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여 경북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산에 대하여 화기를 누르기 위함이라는 설과,

숭례문을 지나 당시 좌측에 남지(南地)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이는 남대문이 정남향을 하고 있고 이위화(離爲火)라해서 화기를 띠고 있으므로 그것을 누르기 위해 문 밖에 연못을 파고 문명을 숭례문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부서진 석재와 썩은 목재만 새것으로 갈고 다른 것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옛 모습으로 완전히 복원 되었다. 이때 해체수리를 하면서 발견된 상량운에서 1479년 (성종10)에도 대대적인 중수공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숭례문은 화강암으로 쌓은 기단위에 건립되었는데 견고하고 아름다우며, 현존하는 우리 나라 성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단청은 적(赤),녹(綠)의 두 색을 많이 사용했고, 2층누각 아래에는 화강암으로 석축한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철가블 씌운 문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