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말고 할 일이 엄청 많습니다 빨리 내려오세요!”
‘와인소믈리에’ 출신 마을사무장, 횡성군 공근면 김명웅씨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 폼 잡지말고 마을 사람들 속으로 먼저 들어가세요"
|
▲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
“난 몰라, 없어. 그냥 썼다고 해~, 분명히 썼다니깐.”
“그러니까요. 분명히 썼어도 영수증이 없으면 안된다니까요.”
김명웅(42)씨를 만나러 간 날 횡성군 공근면 영농조합법인 사무실 뒤편은 시끌벅적했다. 마을 노인 몇 명과 김명웅씨가 옥신각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회계는 10원 한 장을 써도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셈이 흐리다 보니 만날 ‘영수증 챙겨 와라, 없다’ 하면서 싸우는 게 일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리의 마을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영농조합의 사업체인 ‘금나루 무지개 사람들’의 살림도 꾸리고 있다. ‘금나루 무지개 사람들’은 강원도 횡성군이 추진하는 공근금계권역 농촌종합개발사업에 따라 만든 마을사업의 브랜드이다. 현재 누룽지 공장, 한우공동축사, 폐교를 활용한 농촌체험을 운영하고 있고 김치절임가공공장, 친환경 방앗간도 가동을 준비 중이다. 마을 사업 최우수지구로 선정돼 다른 마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공근리의 대표 일꾼이 바로 김명웅 사무장이다.
“농사짓고는 못 살겠다”
6년 전, 귀농을 할 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공근리는 물론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김씨의 고향은 부산이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신라호텔을 거쳐 부산 롯데호텔에서 와인 소믈리에로 근무했다. 직장 생활이 힘들어서 귀농을 결심했느냐고? 천만에, 직장생활은 즐거웠다. 능력도 인정받았고 동료들에 비해 진급도 빨랐다. 서른여섯 살 때 벌써 롯데호텔 지배인까지 올랐다.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는 김씨에게 ‘귀농’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부인 배은화(40)씨였다. 역시 호텔리어 출신으로, 두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였던 부인 배씨는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자’는 생태 육아에 관심이 많았다. 배씨는 남편에게 “귀농을 고민해 보자”고 진지하게 제안했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이 큰 이유가 됐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답답한 아파트보다는 훨씬 좋을 것이었다. 그 후로 부부는 주말이면 귀농할 곳을 찾아 전라도, 충청도를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3년 동안 전국을 돌고 난 후 부부는 결론을 내렸다. “농사짓고는 못 살겠다.”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사는 사람들도 힘들어 보였다. 하물며 호미와 낫도 구별하지 못했던 부부가 농사짓고 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농사는 포기했지만 귀농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한 달에 100만원만 벌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사짓지 않고 농촌에서 월 100만원 벌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마을사무장’이라는 일이 있었다. 마을사무장은 체험마을 등 농촌지역개발사업을 벌이는 마을에 2006년부터 정부가 인력을 지원해주면서 생긴 일자리다. 노인뿐인 농촌마을에 젊은 일꾼을 수혈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월급은 평균 120만원 정도이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강원도 화천 동천리에서 마을사무장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부산 집을 정리한 후 아픈 어머니까지 모시고 온 가족이 오지마을인 동천리로 들어갔다. 마을의 빈집을 수리해서 공짜로 사는 조건이었다. 춥고 불편했지만 노인들뿐인 마을에서 김씨 가족은 대환영을 받았다. 문제는 큰딸이 학교에 들어가면서였다. 포장도 되지 않은 시골길을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야 했다. 매일 멀미에 시달리는 딸을 보다 못해 학교가 가까운 옆마을 풍산리로 옮겼다. 1년6개월여 농촌에서 살아보니 농사도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호미 하나 달랑 들고 밭농사에 도전했다. 3만3000여㎡ (1만여평)의 땅을 빌리고 트랙터도 빌려 배추를 심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2만여포기가 넘는 배추를 갈아엎었다. 판로가 없었다. 유통구조도 문제였다. 정작 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가격결정을 할 때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진짜 행복을 찾았다
“농사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지은 것을 좋은 값에 팔아주는 일을 하자.”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내린 결론이었다. 다시 사무장으로 공근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 호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텃밭도 안 가꾼다. 마을일을 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고생한다”면서 온갖 농작물을 퍼다 준다. 김장도 해본 적이 없다.
김씨는 이제 이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 됐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던 마을에서 4년 만에 완벽하게 정착을 했다. 김씨는 “귀농인들이 가장 빨리 마을사람들과 동화되는 길이 마을사무장이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김씨 가족은 ‘도시 살림’보다 더 풍족하게 살고 있다. 김씨의 월급은 마을사업 기획, 회계까지 맡고 있어 일반적인 사무장들보다는 많다. 게다가 ‘일 잘하는 사무장’으로 소문이 나면서 이곳저곳에서 농촌교육 강의 요청이 많아 월평균 300만원은 들어온다. 생활비는 도시의 3분의 1도 들지 않는다. 채소며 쌀이며 동네 사람들이 서로 주지, 아이들 학원 안 보내니 사교육비 안 들지, 의료보험·국민연금도 50% 감면이다.
귀농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가 아이들 교육이지만 그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김씨는 말한다. “문화생활 못 누린다고요? 시설이 잘 돼있어 매주 영화도 보고 농촌학생 지원이 많아 도시 아이들보다 현장학습도 많이 다닙니다. 방과후학습 활동도 활발합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과 낚시하고 물놀이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부부 사이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부산에 살 땐 자주 싸웠는데 사이좋은 엄마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이 우선 정서적으로 안정됐어요. 실컷 뛰어놀지, 아빠랑 놀 수 있지,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합니다. 아토피도 없어졌어요. 32평 아파트에서 얼굴 마주치는 시간도 없이 살다가 좁은 공간에서 살 부대끼면서 살다 보니 정도 두터워집니다.”
농촌 비전 위해 또 다른 투자
귀농해서 좋은 점이 뭐냐고 질문했더니 김씨의 말이 끊이질 않았다. 김씨처럼 귀농에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김씨는 “3년을 고비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김씨가 생각하는 귀농의 실패 원인은 뭘까. “잔디밭 깔고 바비큐 파티하는 환상부터 버려야 합니다. 근사한 집 짓는다고 퇴직금 쏟아붓고 어설픈 농사 짓는다고 돈 까먹다 빈털터리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집 팔아 도시로 돌아가려 하지만 농촌에서 비싼 집을 누가 사겠습니까. 절대 집에 투자하면 안 됩니다. 시골에 빈집이 널렸어요. 3년은 살아보고 정착했을 때 집을 사도 늦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 통해서 사면 값도 싸잖아요.” 김씨의 부산 32평 아파트를 판 돈은 펀드 등을 통해 잘 굴러가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귀농에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마을 이장,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몇 사람이 같이 전원마을 만들고 살겠다는 생각은 잘못됐습니다. 따로 공동체가 되다 보니 농촌 속의 ‘섬’이 됩니다. 할 일이 없어요. 도시에서 CEO를 했든, 대기업을 다녔든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농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김씨는 농업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농사의 흐름을 알려면 국내 정세며 외국의 경제흐름을 알아야 한다. 김씨는 강원대 농촌자원경제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영어공부도 하고 싶어 내년에 온 가족이 1년 일정으로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공화국으로 떠난다. 돌아와서는 다시 이곳 일을 할 계획이다. 김씨가 이렇듯 또 다른 투자를 하는 것은 “농촌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란다. 김씨는 자신있게 말했다. “농촌, 비전 있습니다. 귀농인들이 농사 말고도 할 일이 엄청 많습니다. 농촌 지원사업도 쏟아집니다. 컴퓨터도 모르는 노인들만 남은 농촌에서 농업을 설계하고, 도시와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사람이 바로 귀농인들입니다.”
출처 : 양평전원생활
글쓴이 : 전원지기 원글보기
메모 :
'식물 자료 > 귀농 전원주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 가면 ~~ (0) | 2014.04.29 |
---|---|
농사 달력 (0) | 2014.01.08 |
전원주택 집짓기 와 구입시 건축시 주의할점 (0) | 2013.11.18 |
귀농생활 HD특집 다큐멘터리 잡초는 없다 (0) | 2013.11.15 |
[스크랩] 우리집 집짓기완료 도움이될까해서 사진올림니다. (0) | 201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