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겨울의 중심으로 드는 때이기에 이 시기의 농촌은 모두 겨울나기에 집중한다. 예쁘게 깎아 말린 곶감은 서리를 맞히고 항아리에 넣어 보관해야 단맛이 깊어진다. 또 미처 뽑지 못한 배추나 무·당근 등을 마저 뽑아야 한다. 내년의 풍성한 수확을 염두에 둔다면 과일나무에 거름주기도 게을리할 수 없고, 양파나 마늘밭에도 자주 눈길을 주고 걸음을 해야 한다. 물이 어는 계절이니 짐승 우리에도 날마다 새 물을 넣어 줘야 하고, 닭이나 오리에게도 푸성귀를 줘 탈 없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즈음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메주 쑤기다. 잘 익어 탐스러운 노란 콩들을 모아 벌레 먹은 것이나 잡티를 일일이 골라내어 만드는 메주는 한해 반찬의 밑천이 되기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잘 씻은 콩을 삶아 뭉그러질 때까지 절구로 찧는다. 그 다음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다듬으면 메주가 된다. 메주는 짝수로 만들면 불길하다 하여 홀수로 만드는 것이 상례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메주가 뜨면 짚을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 매달 때 짚을 사용하는 것은 짚에 효소가 있어 푸른곰팡이의 번식을 돕기 때문이다. 행여 위생과 효율을 생각하고 나일론끈을 사용했다가는 한해 장맛을 버리기 십상이다. 메주를 띄울 때도 곰팡이가 잘 번식하도록 이불을 덮어 주는데, 이때도 역시 면과 같은 천연섬유로 된 이불이어야 한다. 합성섬유로 만든 이불은 역시 곰팡이의 번식에 좋지 못하다. 자연은 그렇게 서로 어우러지면서 완성해 간다.
메주콩은 ‘살이 찌지 않는 치즈’로 불릴 정도로 영양이 뛰어나고 효능도 다양하다. 양질의 단백질과 천연의 항산화물질을 비롯해 비타민류와 칼슘·칼륨·철 등의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또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여 주고 지방 합성을 억제해 비만 예방에도 좋다. 게다가 장운동을 활성화해 변비도 예방하며 어렸을 때부터 메주콩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비록 못생긴 것을 메주에 비유해 천대시하지만, 사실은 만능식품이자 웰빙식품이니 고맙기 짝이 없는 것이 바로 메주다.
메주를 소금물에 숙성시키면 건더기는 된장, 즙액은 간장이 된다. 된장·간장은 음식 조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밑재료들이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속담도 적지 않다. ‘한 고을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 일은 장맛으로 안다’는 말도 있고 ‘며느리가 잘 들어오면 장맛도 좋아진다’고도 했다. ‘흥하는 집은 장맛도 달다’고까지 하였으니 아녀자들에게 장 담그는 일은 겨울나기의 중요한 행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상철<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