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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혜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자랑스런 한국인 함께 홍보해요^^

한아름정원 2011. 2. 12. 21:20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내 인생은 아직 ‘개봉박두’

역경을 딛고 선 25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어머니 덕분에 음대에 입학할 때까지 별도의 개인 레슨을 받지 않았다. 13세 때 마인츠 음대에 최연소로 입학하면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총연방 청소년 음악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며 세계 3대 바이올린의 하나인 ‘과르네리’를 부상으로 받았다. 또한, ‘라인란드팔츠주 음악을 이끌어갈 주역’ 뽑히면서 실력이 검증된 신예로 떠올랐다. R. 에네스쿠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등 각종 국제대회를 석권하며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 이면에는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

어머니는 독일에서 홀로 박 씨를 키웠다.

그는 어머니가 다른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자연스레 바이올린을 익혔다. 바이올린은 어머니의 관심을 끄는 도구인 동시에, 항상 이방인인데다가 넉넉지 않았던 박 씨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교육이었던 셈이다.

 

KBS 신년음악회 협연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이뤄서일까. 때론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목표가 욕심이 된 순간 찾아온 우울증은 그의 곁에서 5년여를 맴돌았고, 마음의 병이 깊어지자 몸도 쇠약해졌다. 담당의사는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때 한국에서 낸 앨범‘Holy Lord’다.

과르네리를 계속 쓰려면 매년 오디션을 통해 계약을 연장해야 한다.

건강 문제로 바이올린 연주가 어려워지자 마지막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놀랍게도 앨범을 통해 음악 사역의 길이 열렸다.

평소 출석하던 전주 영락교회 양기인 목사가 혼자 듣기 아깝다며 아는 교회를 소개해줬고, 그곳에서 맺은 인연이 각종 기독교 행사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와 한동대학교 홍보대사로도 임명됐다.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박 씨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셨다”“연주를 통해 하나님을 전할 수 있어 기쁘고, 무엇보다도 연주 때마다 스스로 더 은혜 받는다”고 말했다.

 

‘존경받는 한국인 대상’ 특별대상 수상

 

마음을 움직이는 분은 오직 예수

박지혜는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라고 당당히 고백한다. 음악가로서 좌절할 때나 쓰러지고 싶을 때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는데 언제나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다고 돌이켰다.

 

그는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앞서 “목마르지 않았으면 연습을 게을리했을 것이고, 과르네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연주에 사람들이 감동받는 것도 하나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예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삶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적도 주를 증명했다. 우울증으로 독일 정부에서 제시한 장학금을 수차례 연기했지만, 오히려 금액이 늘어나서 돌아왔다. 보통 장학금을 미루면 무효 처리되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1집 앨범 ‘Holy Lord’ 재킷 사진

 

건강문제로 악기를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일 정부는 박 씨가 언젠가 다시 일어날 것을 확신하고 응원하겠다며 조건 없이 계약을 연장해줬다.

그는 아직도 ‘천재’ 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자신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며 손사래 친다.

다만 ‘세계를 내 집 삼아 연주하고 소외된 곳을 찾아 주의 선한 영향력을 드리우겠다’ 는 막연한 꿈은 있다.

 

박지혜는 자신을 아직 ‘개봉박두’라고 표현했다.

아직 규정되지 않은, 천재라는 호칭조차 당연히 주님의 공으로 돌리는 그에게선 아침이슬을 머금은 꽃봉오리처럼 맑은 향기가 났다.

아직 피지 않은 그가 만개해 주님의 향기를 퍼뜨리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