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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함께/온난화& 환경

백두산천지 온도상승 밑바닥이 뜨거워 진다 온천 온도 2~6℃

한아름정원 2010. 8. 12. 00:25

'온천 온도 2~6℃ 상승, 천지 밑바닥이 뜨거워 진다'

대폭발설 나오는 백두산 가보니 

7월 23일 오전, 백두산 천지의 중국 쪽 봉우리 천문봉(天文峰). 시계 10여m. 비구름 섞인 강풍이 몸을 흔든다. 천지를 볼 수 없다. 여기저기 터지는 실망의 한숨. 천지 비바람에 얼굴이 튼 중국 상인이 올망졸망한 기념품을 팔고 있다. 물건을 고르며 백두산에 화산 활동이 있는지 묻는다. “지하수의 수온이 올랐다”고 한다. “지진은 없지만 온천수가 2도 올랐다”고 했다. 중국 지질국을 통해 나온 2006년까지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백두산엔 소규모 지진이 급증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요즘 지진은 없다”는 이 상인의 말이 2006년 이후 백두산 지하에 마그마 활동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거꾸로 지하수 온도 변화는 백두산 마그마의 동향을 더 분명히 알려 준다. 온천수 온도가 2도 올랐다는 건 그의 얘기만이 아니었다. 다 그렇게 수군거리는 듯했다. 천지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면 대개 “우리 차 가이드가 그러는데 온천수 온도가 올랐다네요”라고 한다. 온천물에 계란을 삶아 파는 중국 상인도 “좀 올랐다”고 한다. 천문봉에서 내려와 장백폭포로 가는 길에 유황내 짙은 온천수가 가늘게 솟는다. 손을 대니 뜨겁다. 한국인 관광객이 “온천수가 83도에서 84도로 올랐다더라”라고 한다. 기자가 참가한 남북물류포럼 조ㆍ중 국경 시찰단의 가이드도 천지에 오르며 “지하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 관광객을 이끌고 한 해 30번 정도, 15년 동안 천지를 올랐다는 한 조선족 가이드의 말은 더 구체적이었다.

-얼마나 온도가 올랐답니까.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중국 정부는 온천수 온도가 섭씨 82도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84도가 평균이고 88도까지 오르는 때도 있대요.”

1.백두산 비룡폭포. 중국은 장백폭포라 부른다. 높이 68m. 천지 물이 북쪽 트인 곳으로 완만하게 약 1.2㎞를 흘러나오다 떨어지는 곳이다. 2.천지는 ‘못 본 사람이 천지’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 보기가 쉽지 않다. 7월 23일 오전, 산은 안개구름에 잠겼다. 실망하고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개더니 모습을 드러냈다. 3. 천지는 시장통 같다. 50여 인승 셔틀 버스로 중간까지 올라와서 지프나 승합차로 갈아타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백두산=안성규 기자
-누가 그래요.
“가이드나 상인들은 백두산 변화에 민감해요. 그래서 천지 바로 밑에 있는 장백산천지화산감측점(관측소) 사람들한테 자주 물어봐요. 다 거기서 나오는 얘기예요.” 이 관측소는 백두산 온천에서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면 나온다. 백두산 화산 활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측한다.

-언제 폭발한답니까.
“금방 안 한대요. 한 50년은 폭발할 가능성이 없대요.”
중국 측은 백두산에 민감하고 예민한 비밀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백두산 화산 활동을 관측하는 중국의 지질 관련 기관은 지린(吉林), 백두산의 입구 격인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시, 백두산 천지 아래에 있다. 옌지(延吉)에서 주정부관계자에게 “백두산 관측소 방문을 주선해 달라”고 하자 곤란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주변 취재에 나서 들은 얘기가 ‘수온 상승’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그 의미를 국내 화산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이화여대 김규한 과학교육과 교수는 “온천수 온도가 높아진 것은 마그마 활동이 활발해진 근거”라고 했다. “전엔 76도 정도로 알았는데 88도까지 올라갔단 얘기는 지하 마그마 활동이 과거보다 격렬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윤수 박사도 “온도 상승은 마그마 활동이 활발해진 데 따르는 현상”이라고 했다. 연세대 홍태경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마그마 활동이 활발해졌음을 의미하며 (폭발) 징후도 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백두산 온천수 온도는 왜 올라가고 이것이 최근 나도는 백두산 폭발설과 관계 있을까.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2002년 6월 28일 중국 왕청(望城)현 지진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날 지하 566㎞에선 리히터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후 소규모 화산성 지진 발생 빈도가 급증했고 규모도 평균 1 이하에서 3~4로 증가했다.

이윤수 박사가 제공한 미국 지질조사서 자료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1973~2001년 규모 6 이상의 지진은 9회였다(6 이상 6회, 7 이상 3회). 연평균 0.32회다. 그러나 2002~2010년 규모 6 이상은 5회(6 이상 4회, 7 이상 1회)로 연 평균 0.55회다. 확실히 빈도가 늘었다. 이 박사는 “94년 규모 7.3 지진, 99년 7.1 지진 이후 3년 만에 또 규모 7.3 지진이 잇달아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세 지진에서 터져 나온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2000배. 이 박사는 “2002년 왕청현 지진 뒤 한 달에 많게는 250번씩 지진이 나자 당시 중국 학자들은 백두산이 곧 터질지도 모른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40㎞ 지각판에 마그마 방 빽빽
마그마의 이동을 놓고 보면 그런 걱정은 근거가 있다. 중국 지질학자 지안셰 레이, 다펭 자오가 2005년 한 국제저널에 발표한 자료는 백두산 밑에 뜨거운 물질이 꽉 차 있음을 보여줬다. 지진파를 이용한 단층 분석 기법을 사용한 자료에 따르면 백두산을 중심으로 반경 200~300㎞, 깊이 400㎞ 지하가 주변보다 뜨거운 상태다. 중국이 2002~2003년 마그마의 움직임을 시물레이션해 본 결과에도 해발 기준 지하 2㎞까지의 마그마의 응집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1998년 실험과 연결해 보면 더 의미가 두드러진다. 부산대 윤성효 교수에 따르면 중국 지질연구소는 98년에도 인공 지진파(P파)로 백두산 지하 마그마 상태를 연구했다. 그 결과를 종합한 ‘백두산 화산재해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백두산 지하엔 4개의 마그마 방이 있다. 가장 큰 마그마 방은 10㎞, 나머지는 20㎞, 27㎞, 32㎞ 지점이었다. 이윤수 박사는 "백두산 밑 40㎞ 지각이 네 개의 마그마 방의 열권에 점령돼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2004년 이후 자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일본 도호쿠 대학 다니구치 교수는 본지에 e-메일을 보내와 상황이 좀 더 악화됐음을 설명했다. “일본 방재과학기술 연구소와 함께 2004~2005년 1년 동안 백두산에 축적된 마그마의 양을 위성 분석해봤다. 백두산 산정에서 5㎞, 해발 2㎞ 지하에 0.001㎦의 마그마가 축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 정도는 화산폭발지수 1에 해당된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력의 1%다. 그는 “2004년 이전 축적된 것까지 고려하면 실제 총량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환경위성(ENVISAT)의 화상을 분석한 결과 1년 사이 백두산 높이가 2㎝ 융기한 사실도 파악됐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98년 이후 2003년, 2004년, 2005년 사이 백두산 마그마가 더 광범위하게 분포하게 됐고 지표로도 상승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마그마 활동 늘어 헬륨·수소 분출
온천수의 화학성분에도 급격한 변화가 왔다. 2009년 이화여대 김규한 교수와 도쿄대 나가오 교수는 공동으로 백두산 온천 가스의 헬륨과 아르곤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했다. 그러자 헬륨이 맨틀의 마그마에서 올라왔고 농도도 진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윤성효 교수는 “중국 측 조사는 2001~2003년 사이 헬륨과 수소가 각각 10배 이상 늘었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뭔가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소 증가도 지각 내부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문제는 활성화된 마그마가 폭발할 것인가, 그렇다면 언제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의 의견은 나뉜다. 경상대 손영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몇 년 사이 백두산에서 지진과 마그마 활동이 증가했지만 이를 놓고 분출 여부와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김규한 교수도 “백두산 대폭발이 1500년, 1300년 간격으로 일어났음을 고려하면 AD 945~960년에 폭발한 백두산의 대폭발이 다시 임박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소규모 화산 분출을 예상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이윤수 박사도 “시점을 꼬집을 수는 없다”고 했다.

윤성효 교수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자료상으로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쪽이다. 그는 “2009년 5월 25일 발생한 백두산 주변의 규모 4.7 지진과 2010년 2월 18일 있은 두만강 하류 중국ㆍ러시아 국경 부근의 규모 6.9의 지진이 백두산 마그마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흥미 있는 대목은 북한 핵실험의 영향이다. 2006년 10월 18일, 북한의 1차 핵실험 9일 뒤 러시아의 테라 위성은 천지에서 뜨거운 가스와 열기가 분출하는 현상을 잡아냈다. 핵실험이 140㎞ 떨어진 백두산의 마그마를 자극했고 그 영향으로 가스와 열기가 분출됐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 조선족 천지 가이드는 “북한 핵실험 당시 수백㎞ 떨어진 옌지(延吉)에서 천장의 전등이 흔들렸다는 말들이 나올 만큼 영향을 받았다”며 “장백산 천지연구소에는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면 백두산 마그마가 또 자극받을까 걱정’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백두산 폭발 가능성에 대한 현지의 걱정은 산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 멀리 떨어진 옌지에선 태평이다. 백두산 입구의 얼다오바이허에선 엇갈린다. 여기서 10년을 살았다는 조선족 김씨(70세)는 “2015년에 터진다면 5년 남았는데 아무도 이사 가지 않는다. 정부의 이주 계획도 없고 시에선 오히려 건설이 한창”이라고 했다. “터진다면 그러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백두산으로 향하는 얼다오바이허시 길 양쪽으론 호텔 같은 대형 건물 신축현장이 많았다. 그러나 문씨라고 밝힌 60 중반대의 조선족은 “또 터진다. 지진이 많다. 외지인들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백두산 정상. 그곳에선 점점 더 짙어져 가는 폭발의 걱정이 운무에 섞여 천지에 비로 내린다. 

백두산 천지=안성규 기자, 서울=김경희 인턴기자 | 제178호 | 20100808 입력

 


 
발해 멸망, 백두산 폭발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 열어놔
 
 
[뉴스엔 백지현 기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발해, 알고보니 백두산 폭발 때문이다?
7월 25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멸망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나라 발해가 순식간에 소멸된 이유에 관한 각종 추측과 주장에 대해 파헤쳤다.

일본, 중국과 교류하는 등 고도의 문명국으로 성장한 발해의 멸망에 대해 그 어떤 문헌에서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대체 발해인들의 터전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동안 발해의 멸망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제기돼 왔다. 훈민정음 연구가이자 미국의 한 교수는 발해의 기록이 사라진 것은 나라에 흉사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흉사란 '흉악한 일'로 이 교수는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이 거란에 항복을 청할 때 사람들이 모두 속옷 차림이었다는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소복을 입어야 할만큼 흉악한 일이 발생해 그로 인해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

일각에서는 이심(민심이 멀어지다) 때문에 발해가 멸망했다고 주장했다. 발해의 민심이 멀어진 뒤로 거란이 싸우지 않고 이김으로써 발해가 멸망했다는 것. 이심의 원인으로는 발해의 민족구성을 꼬집었다. 소수의 고구려계가 다수의 말갈인을 지배하면서 갈등이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일부 학자들은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 폭발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본 북부지방을 탐사하던 한 학자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산재를 발견해 백두산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두산 폭발의 위력은 2010년 4월 일어난 아이슬란드 화산폭발 피해의 천배로 예측됐다. 10세기 일어난 백두산 폭발로 발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설. 이 설을 주장한 학자들은 백두산 화산재의 피해로 냉각현상이 일어나 농사를 더이상 할 수 없어 발해인들이 망명길에 올랐다고 추측했다.

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발해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학자들은 "단지 기록과 문헌이 없다고 해서 역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뉴스엔] 2010년 07월 25일(일) 오후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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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초토화시킨 백두산 화산 폭발의 미스터리

 
 
2000년 이래 최대 폭발사건…
증거 찾았지만 기록엔 없어ㆍ한반도 북단·만주지역 파괴
“지금도 엄청난 마그마 있다”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소원주 | 사이언스북스

서기 900년대의 어느날 백두산 천지의 분화구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산 폭발이 시작된다. 마치 샴페인 뚜껑이 따진듯 마그마와 가스로 이뤄진 거대한 기둥이 순식간에 대류권을 뚫고 성층권까지 치솟는다. 하늘 높이 치솟은 화산재 기둥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땅을 향해 붕괴되기 시작한다. 붕괴된 파편들은 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마치 화로에서 연기가 흘러넘치듯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화산 폭발로 분출된 파편들이 고온의 가스와 함께 화산의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화쇄류’가 시작된 것이다.

700~800도에 달하는 거대 화쇄류는 최대 시속 150㎞의 속도로 질주한다. 강풍이 나무를 한쪽 방향으로 쓰러뜨리고 그 위로 뜨거운 퇴적물이 두껍게 쌓인다. 화쇄류는 동식물 생태계를 절멸시켜 100㎞ 이상 먼 곳까지 단숨에 생명체가 없는 화산재의 백색사막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편 거대 화쇄류 상공에 머물던 화산재 구름은 때마침 불던 강한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확산된다. 초속 120m(시속 400㎞)의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는 화산재 구름은 3~4시간 뒤 동해를 넘어 일본 열도 북부에 도달한다.

백두산 천지(왼쪽)와 2006년 폭발한 필리핀 메이욘 화산(원안).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세기 후반 주로 일본의 화산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 땅속 지층을 탐사하면서 재현한 백두산 대폭발의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상 최고,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데 백두산 대폭발은 인류의 역사 시기, 다시 말해 지난 2000년 이래 최대의 폭발이었다. 화산 폭발시 분화구에서 대기 중에 분출되는 파편들을 통틀어 ‘테프라’라고 하는데 10세기 백두산 폭발에서 분출된 테프라의 부피는 100㎦로 추정된다. 100㎦는 0.002㎦ 부피의 잠실 주경기장 5만개를 합친 크기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남한 땅 전체를 1m 두께로 뒤덮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동북아 어느 지역의 기록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백두산에서 1000여년 전 그토록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매우 드문 이유다.

백두산이 영원히 잠자는 산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마그마를 땅속에 품고 있는 화산이라는 사실을 비롯해 백두산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상당 부분 깨트리고 바로잡아준다.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을 쓴 소원주 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54)은 부산대와 한국교원대에서 지구과학·지질학 등을 공부했다. 그는 1989~1991년 일본 히로사키(弘前) 대학 유학 시절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 분포한 백두산 화산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위 그림의 점들은 10세기 백두산 대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발굴된 곳이며 숫자는 화산재 단층의 두께다. | 사이언스북스 제공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은 그 규모가 놀랍기도 하거니와 앞서 말했듯 고문헌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기에 미스터리한 사건이기도 하다. 정확한 폭발 시기에 대해선 지질학자, 화산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발해가 멸망하던 시기(926년)와 엇비슷한 것으로 추정됐다. 거란의 침략으로 일순간 망해버린 것으로 기록된 발해 멸망 사건의 배후에 혹시 백두산 대폭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폼페이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일순간에 땅속으로 묻히며 멸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일본 화산학계의 권위자로서 일본에서 발견된 독특한 화산재 단층을 분석, ‘백두산-도마코마이 화산재’라고 이름붙인 마치다 히로시는 이런 가설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각국 역사학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에 관한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다의 가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어진 후속 연구에서 백두산 대폭발이 발해 멸망연도인 926년보다 수십년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들이 나왔다.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 발해 멸망과 연관이 있든 없는 의문은 남는다. 한반도 북단과 만주 등지를 일순간에 초토화시켜버린 대사건에 대한 기록이 왜 없느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백두산 대폭발을 멀리서라도 목격했던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한민족뿐 아니라 백두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상했던 민족의 사가들이 백두산의 대폭발을 흉사(兇事)로 여겨 차마 언급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당시 백두산 일대의 정세가 혼란스러워 꼼꼼한 역사 서술이 이뤄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록이 있는데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 땅이 기록해둔 1000여년 전 역사를 왜 인간이 기록하지 않았는가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이 책은 화산학에 관한 국내 저자 최초의 개론서가 아닐까 싶다. 화산과는 무관한 지역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국내 독자들에겐 화산학 용어들이 생소하긴 하지만 발해의 역사와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을 연관시켜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서술방식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부여한다.

이 책은 백두산 대폭발에 관한 종합판이지만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했다. 대한민국 애국가에 등장하고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오르고 있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우리 역사의 사라진 고리들을 파괴적인 방식으로 숨겨놓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지은이가 상상하는 것처럼 백두산 일대의 땅 속 화산재 더미에 묻혀있을지도 모를 발해의 고대도시들을 발굴하고 지금껏 아무도 노래하지 않았던 역사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찾아내는 것은 동북아 국가의 과학계와 인문학계가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협력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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