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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스크랩] 세계 명문가 10곳에서 배우는 자녀교육

한아름정원 2008. 11. 27. 10:27

세계 명문가 10곳에서 배우는 자녀교육

 

 

케네디의 할아버지 패트릭 조지프는 일등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들이 사는 좁은 지역에서 일등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아일랜드계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아들 조지프 패트릭(케네디 대통령 아버지)만큼은 명문대에 들어가 당당하게 영국계 명문가의 자제들과 공부하게 하고 싶었다. 아일랜드 사람끼리만 경쟁해서는 큰 인물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하버드 대학에 입학 시키겠다는 목표을 세웠다. 옛 속담에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난을 딛고 4대, 110년 만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배출한 케네디 가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문의 교육관을 바탕으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일등을 하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세상의 법칙을 일깨우는 동시에, 명문가에 진학해 최고의 인맥 네트워크를 쌓게 했다. 목표는 크게 정하되 서둘지 말고 단계적으로 실현하도록 이끌었으며, 처음에는 서툴러도 열심히 반복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케네디 가문은 케네디 어머니의 식탁 교육으로도 유명한데, 식사 시간을 지키게 하면서 시간과 약속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고, 밥을 먹으면서 자녀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이끌어 생각과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끔 가르치고 훈련했다.

 

 

5대에 걸쳐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부자 가문이 있다.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150여 년을 이어오고 있는 스웨덴의 세계적인 명문가 발렌베리 가문이다.

스웨덴의 발렐베리 그룹은 삼성이나 현대그룹처럼 스웨덴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통한다. 발렌베리 그룹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것은 무엇보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놓으며 양심적인 경영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렌베리 가가 처음부터 존경받는 기업, 존경 받는 부자 였던 것은 아니다. 은행을 만들고 큰돈을 벌면서 사회에 끊임없이 도움을 줌으로써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어 5대 150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발렌베리는 최근까지도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3년 여름,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발렌베리 그룹을 방문하면서부터 국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발렌베리 가가 5대째 기업을 이어 오면서 사회적으로 무한한 존경을 받으며 기업을 경영해 오던 터라, 상속과 후계 문제로 속앓이를 하던 이건희 회장이 한수 배우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명문가는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할때, 부자는 그 사회에서 존경 받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모는 아이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 견문을 넓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아 떠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이가 세상을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빌게이츠 가는 시애틀의 이름난 은행가와 변호사 집안이지만, 부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리세스 오블리제', 즉 부자의 의무를 다한 가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들 빌 게이츠 역시 세계 최고의 갑부이지만 다른 부자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돈 많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심을 키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 결국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냈다.

큰돈을 물려주면 결코 창의적인 아이가 되지 못한다고 여긴 빌 게이츠의 부모는 스스로 자식의 역할모델이 되어 자립심을 키워주었다.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공상과학소설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고, 신문을 보며 세상 보는 안목과 관심 분야를 넓혔다. 또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결국 세계 최고의 갑부이자 컴퓨터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리대금업을 시작으로 은행을 만들고 유럽 5개국에 지점을 세웠다. 특히 다섯 아들을 지점장으로 보내 번성하기 시작했고 나폴레옹 전쟁과 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로스차일드 가는 현재에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홍차, 와인, 백화점, 영화, 의학, 국제금융 등 전 분야에 걸쳐 다국적 조직을 갖고 있다.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로스차이들 가문은 약 200년 전에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들려준 '다섯개의 화살'의 교훈에서 시작되었다. 그 교훈이 후손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금융제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죽음을 앞두고 다섯 아들 앞에 두고 유언 대신 평소 들려 주었던 '다섯 개의 화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려 주었다. 그 일화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카스피 해 동부 일대에서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던 유목 민족 스키타이의 왕이 임종 직전 다섯 왕자에게 말했던 것이다. 스키타이의 왕은 자기가 죽고 난 후에 다섯 형제가 권력 투쟁을 벌여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로스차일드 역시 유대인으로 온갖 설움을 겪으면서 모은 재산을 아들들이 서로 차지하려다 구름처럼 뿔뿔이 흩어져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로스차일드는 아들들이 비참하게 살지 않고 세상에서 당당하게 대접받으며 살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다섯 아들은 다섯 개의 화살이 되어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다섯 개의 화살이 되었지만 다섯 개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뭉쳐 마침내 로스차일드라는 한 묶음의 화살이 된 것이다.

 

 

흔히 공자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공자의 평전을 쓴 임어당도 공자를 세련된 귀족으로 이해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공자는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이미 이십대가 되기 전에 학문의 이치를 모두 깨우쳤다. 가정 형편이 좋은 귀족의 자제들이 훌륭한 스승을 두고 해도 어려운 공부를, 공자는 혼자 힘으로 배우고 깨우친 것이다.

또 놀라운 것은 젊은이들 못지 않은 공자의 열정과 도전정신이다. 공자는 35세 때 망명길에 올랐을 때도, 55세 때는 관직을 버리고 13년동안이나 여행을 다녔다. 이는 혈기 왕성한 청년의 열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선택이리라. 교통이 자유로운 요즘에도 1년씩 해외 여행을 하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의 삶을 보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학업에 힘쓰고 자신을 갈고 닦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은 모두 비슷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공부하는 습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공자는 누구보다도 '헝그리 정신'이 강했다 그는 가난 때문에 늘 배움에 굶주렸다. 그래서 만일 공부하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누구에게나 질문을 했다. [논어]에서 "자신보다 못난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말은 바로 공자 자신의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으며 전세계 여성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된 사람이 마리 퀴리다. 그녀는 여성의 대학 입학을 금지하는 제도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할 뻔했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조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와서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처럼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시대 상황이였기에 마리 퀴리의 삶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평등부부'의 열정이 2대에 걸쳐 노벨상 부부 공동 수상에 이어 4대째 내리 과학자를 배출해 냈다.

퀴리 가는 2대에 걸쳐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과학자 집안이다. 특히 2대에 걸쳐 부부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는 진 기록을 남겨 학문의 명가를 이루고 있다. 이는 후세 사람들에게 다른 어떤 명문가나 귀족 가문 못지않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 국가에서 노벨상 수상자 한 명을 배출하기도 힘든데, 한 가문에서 모두 세 번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진화론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에 이어 손자인 찰스가 본격적으로 진화론을 연구하고 완성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당시 기독교의 창조론을 뒤엎는 획기적인 가설이었다.

찰스 아버지는 평생 아들이 진화론을 규명할 수 있도록 연구 뒷받침하는 등 인생의 스승으로서 멘토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리고 찰스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했으며, 찰스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쓴 자서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지금도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지만 150년 전에는 자칫 진화론을 주장했다가 가문이 치명적인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찰스는 당시 기독교와 관련한 민감한 내용은 삭제하고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그의 손녀가 온전한 자서전을 펴내 할아버지의 연구 업적을 완성시킨 것이다.

 

 

타고르는 인도 전통 명문가의 후손이다. 인도는 신분을 구분하는 카스트 제도가 엄격했고, 지금도 헌법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브라만 계급에 속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존경받지 못한다.

타고르 집안은 대대로 정치가의 예술가를 배출한 명문가였지만 막대한 재물을 바탕으로 문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후원자로 더 높은 명성을 얻었다.

타고르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네 살이 되던 해에 그만두고 만다. 학교 교육을 그만둔 타고르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타고르의 아버지는 당시 캘커타의 문화예술인들을 집으로 초청해 거의 매일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철학, 과학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응접실 한쪽에서는 인도의 전통음악이 연주되었다. 타고르 가의 응접실은 어린 타고르에게는 '살아 있는 학교'그 자체였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타고르는 시집 『기탄잘리』를 펴내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소설, 단편, 희곡, 평론, 전기,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했다. 뮤지컬을 비롯해 2,000여 곡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그중 600여 곡은 오늘날에도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애창하고 있다.

 

어린 시절 타고르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아버지와 떠난 히말라야 여행이었다. 무려 4개월 동안 아버지와 함께한 이 여행을 통해 타고르는 한층 성숙한 소년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먼저 아들에게 대자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의 신비와 무한한 상상력을 맛보게 했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톨스코이는 열아홉 살부터 시작해 평생 실천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일기 쓰기'였다. 평범한 일기 쓰기가 어쩌면 톨스토이를 세계적인 대문호로 만든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일기 쓰기를 본받아 가족 모두가 일기를 썼다. 톨스토이 자신에게는 일기가 작품의 원천이 되었고, 아내와 자녀들에게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일기를 통해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이해를 넓혀간 것이다.

톨스토이의 일기를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내면과 사투를 벌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일기는 대문호로서 인격을 완성하게 한 참회록이자 고백록이나 다름없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 대문호의 자리에 오른 톨수토이의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치열한 자기 반성의 기록이었다.

 

 

러셀 가는 "일류 아버지가 일류 아들을 만든다"는 교훈을 몸소 보여준다. 그 바탕은 대대로 이어져오는 전통, 즉 가풍에 있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원칙은 사람을 자긍심 있는 인간으로 만든다. 그것은 자만심과는 다르다.

러셀의 가계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500년 명문가와 같다. 영국 웨일스의 전통 명문가인 러셀 가문은 헨리 8세 때 외교관을 지낸 존러셀이 백작에 임명되면서 귀족 가문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어 그의 증손자에 이르러 공작에 임명되었다. 백작에서 공작이 되었다는 것은 귀족 가문의 서열이 더 높아 졌음을 의미한다.

러셀은 할머니의 엄격한 청교도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는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어를 구사했고 셰익스피어 등 문학작품에도 정통해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손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장교사에게만 공부하게 했다. 러셀은 그 자신이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못하고 혼자 자란 경험때문에 '비콘힐 학교'를 세웠다.

 

- 『세계 명문가 자녀 교육』도서 中에서.... -

출처 : 정홍자
글쓴이 : 미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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