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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인회생제도와 도덕적 해이 (김태룡/농민전국사회부장)

한아름정원 2008. 11. 20. 14:23

  김태룡 전국사회부장

얼마 전 흑산도에 다녀왔다. 전체 인구라야 3,000명 남짓,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단지 주민 수에도 못 미치는 이 작은 섬엔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달포 전 흑산농협이 사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였다. 지역 내 유통과 금융을 맡았던 농협이 문을 닫자 당장 배추·과일·소주 등 생필품값이 치솟아 지역경제가 사실상 마비됐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지난해 경제사업에서 5억원의 흑자를 냈다는 흑산농협이 문을 닫은 이유가 가관이었다. 농협에서 돈을 빌린 후 제때 갚지 않는 일이 크게 늘면서 전체 대출액 가운데 연체비율이 지난해 40%에 달했고, 올해는 절반을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경영부실이 초래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돈을 제대로 갚지 않은 이의 상당수가 실제론 빚을 갚을 만한 돈을 가졌거나 재력이 있다는 것이고 농협 관계자가 흥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들이 채무 도피 수단으로 찾아낸 것이 정부가 도입한 개인회생제도였다.

2004년 9월 시행돼 2년을 맞은 개인회생제도를 지금 살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회생제도는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 개인파산을 구제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갑작스런 경영위기를 맞아 길바닥에 나앉고, 평생 빚더미에 눌려 고통받게 된 선의의 채무자를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제도는 선정(善政)의 대열에 낄 만하다. 그러나 돈 떼먹고 다리 뻗고 자겠다는 심보를 가진 이가 이 제도를 악용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충분한 채무 변제능력이 있음에도 개인회생을 신청, 금융기관으로부터 빚을 탕감받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신용이 밑천인 금융거래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채무자 본인의 통장을 해지해 빈털터리로 가장한 채 재산을 친인척 명의로 빼돌리기도 하고, 자신의 소득원을 의도적으로 축소해 경제적 무능력을 거짓 증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법무사 등 법깨나 안다는 이들이 일처리를 해주겠다며 개인회생 신청을 부추기고 수수료나 챙기는 형국이니, 이 나라 경제정의가 합법적으로 훼손되는 촌극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흑산도의 현실에서 보듯 이런 ‘도덕적 해이’ 현상이 소규모 농촌지역에 확산될 경우 지역 금융시장과 지역경제에 주는 타격은 단순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비윤리적 행위가 정부의 신용구제제도를 악용하거나 제도의 빈 틈을 타고 이뤄진다는 것이다. ‘빚지고는 못산다’는 전통적 신용 가치관이 허언이 되는 상황이다. 돈있는 사람이 농·수협 등 금융기관의 빚을 탕감받고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떵떵거리며 산다면 정상적인 금융 거래자들은 허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현행 제도는 멀쩡한 사람까지 도덕불감증에 빠지게 만드는 측면이 있음을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개인회생제를 시행하는 선진국에서는 빚을 탕감해줄 때 채권자, 즉 금융기관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국가가 제도를 통해 개인 금융거래에 개입했으면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을 차단하고, 제도 시행으로 인한 금융기관 손실을 지원하는 등 개선책을 만드는 노력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금융기관의 피해도 결국은 다수의 정직하고 성실한 이들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출처 : 농경연구네트워크 GS&J 인스티튜트
글쓴이 : GSnJ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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