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보러 왔슈?
이것 봐유. 사진을 얼마나 찍었으면 감나무가 다 죽었슈.”
손수정 기자의 뚜벅뚜벅 마을여행(2)
충남 부여 반교마을-파고 또 파도 나오는 돌…담이 되고 길이 됐네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집을 짓고
밭 가장자리도 무릎까지 돌담이
세월은 별걸 다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렇게 그리워진 것들 중 하나가 담이 아닐까.
밖에서도 까치발만 들면 마당 안 수돗가며 마루 위 요강까지 훤히 보이던 옛날 시골집 담장.
“우리나라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여기가 돌이 제일 많은 동네일 거예유. 파도 파도 나와유.”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마을 맨 위쪽에 사는 이영수 어르신(77) 집에도 마을 안 여느 집처럼 돌담이 둘러져 있다.
이 마을 옛 담장은 2006년 12월4일 등록문화재 제280호로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청장이던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이 돌담에 반해서 주민들과 뜻을 모아 옛날 방식대로 복원했단다.
“저짝 청장님 집에 가 봤어유? 요새는 바쁘신지 안 보이네유.”
이영수 어르신에게 유 교수는 아직도 ‘청장님’이다. 유 교수는 반교마을을 제2의 고향으로 정하곤 여기에 ‘휴휴당(休休堂)’이란 작은 집을 지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에는 이 집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마을 청년회원이 된 사연도 담았다. 그러니 한쪽 어깨에는 카메라를, 다른 쪽 겨드랑이엔 그 책을 끼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주인 없는 휴휴당을 흘끗 살피곤 마을을 찬찬히 둘러본다. 멀리로는 사방이 산이요, 가까이론 눈길 닿는 데마다 돌이다. 몇몇 집의 돌담은 한눈에도 꽤 오래돼 보인다. 이런 담은 대개 큼직한 막돌을 차곡차곡 쌓은 다음 흙이나 주먹돌로 틈새를 메웠다. 돌 크기가 작거나 사이에 시멘트를 채운 것, 흙담이나 벽돌담에 돌을 붙여 꾸민 것들은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경사지에 자리한 집 몇채는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지어졌고, 군데군데 밭 가장자리에도 무릎쯤 오는 돌담이 둘러져 있다. 판판한 포장길도 옆에서 보니 돌 축대 위에 시멘트 붓고 아스팔트 발라 만든 것이다. 파도 파도 나오는 돌을 이 좁은 산촌에서 어디다 옮길 수도 없고, 그래서 밭 옆에 모아 놓고 집 앞에 쌓아 둔 것이 오늘날 담이 되고 길이 됐다.
그렇다고 마을에서 보이는 게 돌담이 다가 아니다. 집집이 쟁여 놓은 땔나무에선 겨울을 맞는 채비가, 담장 옆에 세워진 눈삽에선 겨울과 싸운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돌담 보러 왔슈? 이것 봐유. 사진을 얼마나 찍었으면 감나무가 다 죽었슈.”
마을 한복판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가 농을 건넨다. 할머니는 막 점심 잡숫고 마을회관 가는 길. 군에서 선생님이 와서 마을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단다. 할머니를 회관까지 배웅하고 돌아서니 그 길에서 또 다른 할머니가 늦을세라 허위허위 오고 있다. 저렇게 배우고 싶은 걸 여태 어떻게들 참으셨을까. 외산면에서 가장 큰 마을, 그래서 10여년 전까진 학교(외산초등학교 반교분교)도 있던 마을인데 말이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줄어 80호쯤 돼유. 그래도 여기가 아직 우리 면에서 제일 크고 살기도 좋아유. 우리가 빠지면 면민체육대회도 못해유.”
마을 초입으로 내려가다 만난 주민 김홍태씨(63)의 이야기다. 김씨 아저씨네 돌담은 할아버지 때 쌓은 것. 하지만 몇해 전 마을 돌담보존회에서 옛 담장을 복원할 땐 아저씨도 힘을 보탰단다.
“지가 제주도 가서 들어 봤는데유, 거기 돌은 구멍이 숭숭 난 게 영 개벼워. 아이고, 여기 돌은 영글어서 무거워유.”
등록문화재나 지정문화재가 된 옛 담장이 전국에 18곳. 머잖아 봄이 오고 꽃이 피면 옛 담장을 품은 이들 마을에 먼지 폴폴 나도록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그때, 말 없이 서 있는 담장만 찍고 가지들 마시고, 반가운 마음에 골목을 서성이는 김씨 아저씨 같은 이들에게 꼭 인사를 건네시길. 김씨 아저씨가 사람 좋게 웃으며 한 말이 있다.
“대접할 게 없어서 미안해 그렇지, 사람들 오면 좋아유. 암유.”
농민신문 sio2s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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