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카와 디카의 세상구경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NH금융정보/농신보(농림수산업자)

흙과 항아리

한아름정원 2012. 10. 27. 00:30

흙과 항아리

 

 

 

 

1. 하찮은 것에서 귀한 것으로 거듭난

옹기가 재평가되고 있다 비록 흔하고 쉬 깨지지만 귀하고 깨지지 않는 그릇보다 더 좋다는게 입증됐다 각종 환경 물질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옹기만큼 좋은 그릇이 없다. 투박하면서도 왠지 정겨운 옹기가 사람을 살리는 먹을거리가 화두인이 시대에 정말 귀한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친환경 시대에 옹기가 뜬다

포토뉴스
옹기는 반영구적인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그릇의 등장으로 1960년대 말부터 점점 쇠퇴하여 거의 사라졌다. 큰항아 리를 빼고는 옹기의 생김새를 빼닮은 플라스틱이 빠르게 자리를 대신했다. 정부는 옹기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1989 년 옹기인간문화재를 지정한 데 이어 1990년 옹기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옹기를 살린 것은 깨지지 않을 뿐더러 빠르게 대량 생산됐던 플라스틱 그릇이 실용성에서나 위생 면에서 옹기만 못한 데다 옹기 의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흔히 옹기를 숨쉬는 그릇이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옹기 자체가 스스로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소통하게 할 뿐이다.

옹기 그릇에 담긴 게 숨을 쉰다. 옹기는 안에 담긴 것이 숨을 쉴 때 공기를 소통케 할 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꽉 막히 면 문제가 생기듯이 안과 밖을 소통시켜주지 못하는 그릇은 그 내용물을 부패시킨다. 하지만 옹기는 다른 용기들과 달리 안과 밖의 세계를 서로 통하게 하기 때문에 부패가 아닌, 새롭게 살리는‘발효’를 돕는다.

옹기가 재평가되고 있다. 비록 흔하고 쉬 깨지지만 귀하고 깨지지 않는 그릇보다 더 좋다는 게 입증됐다. 각종 환 경 물질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옹기만큼 좋은 그릇이 없다. 투박하면서도 왠지 정겨운 옹기가 사람을 살리는 먹을 거리가 화두인 이 시대에 정말 귀한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친환경 시대에 옹기가 뜬다

포토뉴스
옹기는 반영구적인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그릇의 등장으로 1960년대 말부터 점점 쇠퇴하여 거의 사라졌다. 큰항아 리를 빼고는 옹기의 생김새를 빼닮은 플라스틱이 빠르게 자리를 대신했다. 정부는 옹기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1989 년 옹기인간문화재를 지정한 데 이어 1990년 옹기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옹기를 살린 것은 깨지지 않을 뿐더러 빠르게 대량 생산됐던 플라스틱 그릇이 실용성에서나 위생 면에서 옹기만 못한 데다 옹기 의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흔히 옹기를 숨쉬는 그릇이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옹기 자체가 스스로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소통하게 할 뿐이다.

옹기 그릇에 담긴 게 숨을 쉰다. 옹기는 안에 담긴 것이 숨을 쉴 때 공기를 소통케 할 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꽉 막히 면 문제가 생기듯이 안과 밖을 소통시켜주지 못하는 그릇은 그 내용물을 부패시킨다. 하지만 옹기는 다른 용기들과 달리 안과 밖의 세계를 서로 통하게 하기 때문에 부패가 아닌, 새롭게 살리는‘발효’를 돕는다.

옹기가 재평가되고 있다. 비록 흔하고 쉬 깨지지만 귀하고 깨지지 않는 그릇보다 더 좋다는 게 입증됐다. 각종 환 경 물질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옹기만큼 좋은 그릇이 없다. 투박하면서도 왠지 정겨운 옹기가 사람을 살리는 먹을 거리가 화두인 이 시대에 정말 귀한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친환경 시대에 옹기가 뜬다

포토뉴스
옹기는 반영구적인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그릇의 등장으로 1960년대 말부터 점점 쇠퇴하여 거의 사라졌다. 큰항아 리를 빼고는 옹기의 생김새를 빼닮은 플라스틱이 빠르게 자리를 대신했다. 정부는 옹기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1989 년 옹기인간문화재를 지정한 데 이어 1990년 옹기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옹기를 살린 것은 깨지지 않을 뿐더러 빠르게 대량 생산됐던 플라스틱 그릇이 실용성에서나 위생 면에서 옹기만 못한 데다 옹기 의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흔히 옹기를 숨쉬는 그릇이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옹기 자체가 스스로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소통하게 할 뿐이다.

옹기 그릇에 담긴 게 숨을 쉰다. 옹기는 안에 담긴 것이 숨을 쉴 때 공기를 소통케 할 뿐이다. 사람 사는 일도 꽉 막히 면 문제가 생기듯이 안과 밖을 소통시켜주지 못하는 그릇은 그 내용물을 부패시킨다. 하지만 옹기는 다른 용기들과 달리 안과 밖의 세계를 서로 통하게 하기 때문에 부패가 아닌, 새롭게 살리는‘발효’를 돕는다.

옹기가 재평가되고 있다. 비록 흔하고 쉬 깨지지만 귀하고 깨지지 않는 그릇보다 더 좋다는 게 입증됐다. 각종 환 경 물질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옹기만큼 좋은 그릇이 없다. 투박하면서도 왠지 정겨운 옹기가 사람을 살리는 먹을 거리가 화두인 이 시대에 정말 귀한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2. 토속신앙에 다양하게 쓰인 옹기

예부터 한 해의 풍년을 베푼 천신 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토속신앙이 우리 풍속에 전해온다. 토속적 신앙 의례에는 성주단지, 정화수를 담은 동이, 귀신병, 제기, 물박 등 으레 옹기 그릇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풍 어를 위해 용왕에게 제사를 올릴 때 흙으로 소나 말을 만들어 바치 기도 했고, 제를 지낼 때 나무나 질 로 된 숭어를 제사상에 올렸다. 이 렇듯 토속 신앙과 옹기의 관계는 한 몸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글과 사진 김재완 (서천식물예술원 부설 한국옹기문화연구소장)

포토뉴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한 해의 곡식을 거둬들인 뒤 풍년에 감 사하는 의식을 여러 형태로 치렀다. 천신에게 감사하고, 조상에게도 감사하는 제례의식이 다양하였음을 우리 풍속에서 엿볼 수 있다. 한 해 농사의 풍년에 감사 하고 다음해까지도 풍년을 기원하며, 가정의 안일무사와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 성주신城城城을 봉안하는 목적이었 다.

시기는 10월 상달이었다. 시기를 10월로 정한 이유는? 곡식을 독에 넣어 신체城城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때는 지난해 넣어 모셨 던 곡식(벼)을 독에서 퍼내고 햇곡식을 넣어 대개는 상량목 아래나 대청의 뒤주 위에 놓았다.
포토뉴스
필자가 수집한 성주독은 아주 큰 항아리로 산골 지방(충남 청 양)의 곡간에 모셔졌던 것인데,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 가정에서는 햇곡식이 나오면 성주독을 비우고 햇곡식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큰 독에 채운 후, 그 집의 부녀자 중 가장 어른(할머니)이 젯상을 차려 놓은 다음 올 해의 풍년에 감사하 고 내년의 풍년을 기원했으며, 아울러 가족쟀 건강과 안녕을 기 원하였다. 이 댁의 성주독은 그 크기가 남달랐고 특별히 옹기장 이에게 주문하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크기도 크기지만 몸체 와 뚜껑의 조화, 초화문의 활달하고 대담함은 그 가정의 번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포토뉴스
살펴보면 조선 시대에도 유교적인 제사법이 전일적으로 관 철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제 사정은 전혀 달랐다. 21세기인 지금도 토속적인 조상숭배가 일부 지역이나 가정에서 이어지 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토속적인 의례의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토속적 신앙의례에는 으레 옹기 그릇이 등장 하기 마련이다. 성주단지를 비롯하여, 맑은 물을 길어 장독대에 있는 동이에 가득 채운 후 짚을 깔아 그 위에 올려놓고 우리 할 머니들은 북두칠성에 치성을 드렸다.

또한 무당들의 귀신병이나 제기 등이 모두 옹기로 사용되었다. 토속 신 앙과 옹기의 관계는 한 몸통으 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해안 지방에서도 용왕제나 풍어제를 지낼 때 큰 정수 동이 (항아리)를 사용하였는데, 그 옹기도 옹기장의 특별 제작품인 듯하다.

모양도 아름답고 뚜껑에 꽃그림의 음 각이나 손띠 장식도 보통 옹기와 다르 다. 몸통에 물 수城자를 크게 쓴 것으로 보 아 틀림없이 제례용으로 주문 제작하였 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왕에게 제사를 올릴 적에는 큰 짐승을 바치고 풍어를 비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일 부 지방에서는 처녀도 바쳤다고 전해진다) 조달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흙으로 소나 말을 만들어 바다 속 용왕에게 바친 듯하 다. 필자가 수입한 옹기로 만든 소는 바다 속에서 몇 년이나 있 다 나왔는지 궁금하다.
포토뉴스
제례의식이 있을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향불을 피웠던 향로와 각종 악기였으며, 음식으로는 첫째가 떡이었다. 떡은 주로 시루 놶이었고 시루떡은 시루에 쪄서 통째로 제사상에 놓는 경우가 많고, 가래떡은 떡살로 예쁜 무늬를 찍어서 사용했다. 필자가 수집한 떡살은 북한 지방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꽃무늬의 정교 함과 제작 솜씨가 뛰어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제를 지낼 때 철이 맞지 않아서 음식을 갖추지 못하면 나무나 질로 된 숭어를 제사상에 올렸다. 여기 소개되는 질로 빚은 송 어는 비늘도 선명하고, 채색까지 정성스럽게 한 것으로 보아 얼 마나 제사에 정성을 쏟고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이 간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는 제사 용품을 놋그릇으로 많이 사용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는 나무 제기나 옹기 제기를 사 용하였다. 특히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하여 가정의 놋그릇들을 강제로 약탈해가는 바람에 옹기 제 기나 나무 제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제기를 아무렇게나 만들어 쓰지는 않았다. 향로를 보더라도 놋쇠 향로 못지않게 모양새를 내어 제작하였다.

또한 천신이나 풍어제, 용왕제 등에서 장구나 물박 등의 옹기 로 된 악기들이 쓰였다. 추수 감사에 보답하기 위한 천신에 대 한 제례 의식이나 용왕제 등에서 악기를 연훁하며 놀이 형태로 도 진행되었기 때문에 춤과 음악과 술이 어우러졌는지도 모르 겠다. 이처럼 옹기는 토속 신앙에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3. 술독과 소줏고리

술을 발효시킬 용기로 옹기가 수천 년 전부터 쓰여왔다. 술밥을 찔 때 주로 시루를 사용했는데, 떡시루보 다 큰 술밥시루를 따로 두고 사용했다.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소줏고리는 긴 주둥이가 설치되어 있어 소 주가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했고, 귀때동이를 긴 주둥이 밑에 놓고 증류주를 받아서 병에 따라 넣었다.

포토뉴스
옹기의 과학적인 면은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보여준다. 옹기가 숨쉬는 항아리라는 점은 이미 선진국의 학자들이 극찬한 바 있다.

식품에 산소를 공급하여 발효를 돕는 일을 옹기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유리 그릇 이나 자기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이다.

우리의 음식 중 가장 중요한 장醬과 김치는 옹 기가 아니면 제대로 발효가 되지 않는다.

옹기는 또한 청정작용을 한다. 백자와 청 자의 유약은 화학약품이 첨가되지만 옹기 의 유약은 나뭇잎 재와 황토물이다. 천연물 이 재료가 된 탄소를 항아리에 코팅함으로써 산소가 공급되기 때문에 옹기가 청정작용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포토뉴스
옹기 형태의 과학성은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의 옹기는 지역마다 그 지역에 필요한 형 태로 발전되어 왔는데, 북부와 중부 지방은 전(항아리의입술)이 넓고 입이 크게 제작되어 햇빛을 많이 받게 하였으며, 따뜻 한 남쪽 지방에서는 옹기의 배가 부 른 대신 입이 좁아 일조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배가 불룩한 옹기일수록 내부 온도가 높고 일교 차가 적어진다. 간장이나 된장을 담 는 항아리가 가장 배가 불룩한 것은 일교차를 적게 하여 발효의 조건을 충족해 주기 위함이다. 곡식을 저장 하는 옹기는 배가 부르지 않고 거의 일자형이다. 같은 용량의 옹기일 경우 불룩할수록 높이가 낮아 져 밑면에 미치는 전 압력이 작아져 안정성이 크다는 것까지 생 각한 우리 조상의 지혜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포토뉴스
인간이 술을 기호식품으로 즐긴 것은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갖 고 있다. 술은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축제와 가정의 관혼상제 에, 그리고 일상에서의 즐거움과 피로를 풀기 위해서는 물론이 고, 슬플 때나 즐거울 때도 인간과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술과 옹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 시킬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옹기가 이 용기의 역할을 수천 년 전부터 담당해 왔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곡식이 필요했고, 그 대표적인 곡식은 쌀이었다. 술을 담그는 순서는 먼저 쌀을 깨끗이 씻고 불려서 술 밥을 찌는데, 용기는 주로 시루였다. 물론 떡시루에 찌기도 하지만 술을 많이 담그는 경우에는 술밥시루가 따로 있게 마련 이다. 술밥시루는 떡시루에 비해 용량도 커야 했다. 밑면보다 윗 면이 넓은 시루가 아니라 많은 양을 찌기 위해서 둥근 항아리 모 양의 시루가 사용되었다.
포토뉴스
우리나라에서 증류주가 생산된 것은 술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증류주의 역사는 4000년 전쯤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고려 말부터 증류주 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려 말 몽 골의 군대가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서 경상도에 주둔했을 당시 그들로부터 증류주(소주) 만드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 증류주는 일반 백 성은 먹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았으나 암암리에 만들어 먹었다. 이때 사용하 던 도구가 소줏고리이다.

일반적으로 소줏고리는 장구통 모양으 로 허리가 잘록하여 둥근 통 2개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통은 밑면이 넓고 어떤 것은 넓은 전(입술)에 6~8개의 구멍 을 뚫어 놓은 것도 있으며, 전이 없는 것도 있다. 위에 붙어 있는 통은 윗면이 오묵하게 막혀 있는데, 오묵한 곳은 냉각수를 부을 수 있도록 했고, 그냥 뚫려 있는 것은 무쇠솥뚜껑을 얹고 냉각수를 부어서 사용하게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위통 밑에는 밖으로 긴 주둥이가 설치되어 있어 술을 증 류할 때 소주가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했고, 귀때동이 라는 용기 를 주둥이 밑에 놓았다. 긴 주둥이 밑에 놓고 증류주를 받아서 병에 따라 넣었던 용기가 귀때동이였다.

일제강점기의 양조장에서 쓰였던 술독의 표면을 보면 술을 담근 날짜와 쌀의 수량 등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일제가 얼마나 우리 민족에게 세금(주세)을 걷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술뚵에 주둥이? 하나만 있는 것은 민간에서 주문 제작하여 사용하던 것이며, 사대부집에서 약 150년 전부터 애용하던 것으 로 전해진다. 주둥이 양쪽에 구멍이 있는 돌출된 귀 모양이 주둥 이를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술독에 술을 가득 채 웠을 때 수압으로 인해 술이 주둥이의 마개를 밀어낼 경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양쪽의 돌출된 구멍에 끈으로 주둥이의 마개를 묶어 술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술독에 주둥이 2개가 달린 것은 막걸리를 걸러 놓고 나면 너무 많은 침전물이 발생하므로 위쪽 주둥 이로 나삿는 술은 쟆매하고, 아래쪽 에 위치한 주둥이는 찌끼를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4. 맛깔스런 장 담그기

예부터 음력 정월은 장을 담그는 달이었다. 겨우내 띄우고 말린 메주를 소금물과 함께 장독에 넣어두 면 한 해 양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을 사서 먹는 것이 보통인 요즈음에도 손맛 살려 직접 장 을 담그는 이들이 있다. 서울시에서 인정한 전통 장 기능보유자인 김복인 씨가 그 중 한 사람. 정월장 준비가 한창인 그에게 맛깔스런 된장과 고추장 담그는 방법을 배워보았다

 
포토뉴스간장과 된장은 따로 담그는 것이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요즘은 보다 맛있는 장 을 얻기 위해 간장과 된장을 따로 담그기도 한 다. 하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예전에는 한 번 장을 담가 간장과 된장을 같이 얻었는데, 이 방법이 보다 편리할 뿐 아니라 조금만 정성을 더하면 맛의 손실 없이 맛있는 장을 만들 수 있다. 김복인 씨는 간장을 가르고 남은 메주 에 삶은 콩이나 메줏가루를 더해 된장을 담근 다. 여기에 콩 삶은 물과 간장, 소금을 적당히 넣으면 보다 간간하고 촉촉한 된장을 얻을 수 있다.

메주 손질하기 겨우내 띄운 메주를 찬물에 재빨리 씻은 다음 채반에 건져 물기를 빼고 햇볕에 2〜3일 동안 바싹 말린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메주콩 한 말 분량, 곧 보통 크기의 메주 5개(약 5 ㎏)를 준비하면 된다. 붉은 고추 5〜6개, 대추 10여 개, 참깨 1큰 술도 함께 준비한다. 메주는 구수하고 달큰한 냄새가 나는 것이 좋다. 역한 냄새가 나는 것은 잡균이 번식한 것. 잘랐을 때 속까 지 황록색으로 균사가 골고루 퍼진 것이 잘 띄운 메주다. 장독 준비하기 장독을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없애고 햇볕 에 말려둔다. 장 냄새가 밴 독은 뜨거운 물로 닦아낸 다음 참숯 을 빨갛게 피워 넣고 꿀 한 종지를 부어두면 냄새가 없어지면서 소독도 된다. 김치 역시 발효 식품이지만 장과는 발효균이 다르 므로 김치를 넣어두었던 독에는 장을 담지 않는다. 소금물 풀기 장 담그기 2〜3일 전에 미리 소금물을 만들어둔 다. 큰 항아리 위에 시루나 소쿠리를 얹고 베보자기를 깐 다음 굵은소금을 얹고 물을 부으면 소금이 녹아 내린다. 소금물 농도 는 염도계로 측정하는데, 겨울에 담그는 장에는 17〜18보메가 좋고 날이 더워질수록 진한 소금물을 쓴다. 메주콩 한 말당 물 36ℓ(약 2말), 소금 물 1ℓ당 소금 180g이면 알맞다.

 

 

포토뉴스장 담그기 장독에 메주를 차곡차곡 쌓아 절반 가량 채운 다음 미리 풀어둔 소금물을 체에 밭아 가득 붓는다. 메주에 비해 소금 물이 많으면 간장의 양이 많아지나 맛이 연하고, 반대로 물이 적 으면 간장이 진해진다. 메주가 떴다가 도로 가라앉으면 소금물 이 싱거운 것. 메주가 소금물 위로 1㎝ 가량 뜨도록 농도를 조절 한다. 빨갛게 달군 참숯, 고추, 대추, 참깨를 얹고 뚜껑을 덮어 사 흘 동안 그대로 둔다. 장 익히기 사흘째 되는 날부터 항아리 뚜껑을 열어 공기를 쐬 고 닫아주기를 40〜45일 동안 하되, 벌레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망사나 가제로 입구를 잘 봉한다. 이렇게 하면 메주가 불면서 소 금물이 조금씩 주는데, 장을 담그고 남은 소금물을 따로 항아리 에 보관했다가 줄어드는 양만큼 채워주면 된다. 장 가르기 장을 담근 지 50일 정도 지나 소금물이 거무스름해 지고 맛이 제대로 돌면 간장과 된장을 가른다. 메주가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건져내고 남은 국물이 바로 간장. 이것을 체 에 걸러 20분 정도 달인 다음 소독한 항아리에 따로 보관한다.

30〜50일 정도 지나면 맛이 제대로 든다. 된장 버무리기 콩 한 되를 삶았다 찧은 다음 건져낸 메주와 함 께 버무린다. 이때 콩 삶은 물을 버리지 말고 함께 붓고, 간장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삶은 콩 대신 같은 양의 메줏가 루를 넣어도 된다. 버무린 된장을 소독한 항아리에 담되, 가득 채우지 말고 10㎝ 정도 여유를 두고 담는다. 웃소금은 뿌리지 않는다. 장이 익기 시작하면 된장이 항아리 위로 봉긋하게 솟았 다가 가라앉는다. 50일 정도 지나면 맛있는 된장이 된다.
 
고추장은 간장·된장에 비해 만들기가 수월해 집에서 담가 봄직하다. 김복인 씨는 오래 전부터 띄운보리고추장을 담가 왔다. 띄운보리고추장은 찹쌀가루 대신 푹 쪘다가 띄운 보리 쌀로 담근 것인데,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강해 찌개 요리 에 쓰기에 좋다. 김씨는 찹쌀고추장 역시 찹쌀을 미리 삭혔 다가 담근다. 찹쌀을 삭히기만 하면 나중에 불 앞에서 주걱 으로 저어가며 섞지 쪾아도 돼 훨씬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포토뉴스띄운보리고추장 1 고춧가루 7되, 보리쌀 1말, 엿기 름 1되, 메줏가루 2되, 소금 2되를 준비한다. 보리쌀은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 다음 맷돌에 거칠게 갈고, 엿기름은 물에 불린 다음 체 에 거른다. 보리쌀 간 것에 엿기름물을 적당히 축인 다 음 시루에 안쳐 푹 찐다. 한 김 나 가게 식힌 다음 넓은 그릇에 살살 펴 담고 베보나 창호지로 덮어 따 뜻한 아랫목에 하루 동안 둔다. 다음날 환기를 시킨 다음 두꺼운 담 요를 덮어 3〜7일 동안 띄운다. 청 국장처럼 진이 나기 시작하면 다 띄운 것이다. 띄운 보 리쌀에 고춧가루·메줏가루·소 금을 넣고 섞은 다음 소독한 항아 리에 담는다. 간이 싱거우면 2〜3 일에 걸쳐 간장을 조금 더 넣어준다. 삭힌찹쌀고추장 1 고춧가루 2㎏, 찹쌀 1㎏, 엿기름 1㎏, 메줏가루 1㎏, 물 10ℓ, 소 금 300〜400g을 준비한다. 찹쌀 은 깨끗이 씻은 다음 넓은 그릇에 물과 함께 담가 10〜15일 동안 삭 힌다. 쌀알을 손으로 문질러 부드 럽게 바스러질 정도가 되면 다 삭 힌 것이다. 엿기름은 체로 쳐서 가 루와 껍질을 분리한다. 껍질은 고 추장 담그기 하루 전에 물 10ℓ에 넣고 빨듯이 주무른 다음 물과 함 께 끓여서 식혀둔다. 가루는 따로 둔다. 삭힌 찹쌀을 찬물 에 한 번 헹궈 곱게 빻은 다음 물을 약간 축여 시루에 넣고 찐다. 넓은 그릇에 찐 찹쌀가루와 엿기름 가루를 넣고 주걱으로 젓 는다. 삭힌 찹쌀을 찐 것이므로 얼 마 저어주지 않아 거무스름한 색을 띠면서 녹듯이 잘 풀어진다. 찹쌀가루 반죽이 식고 나 면 고춧가루와 메줏가루를 넣고 섞어준 다음 엿기름 끓인 물을 부 으면서 농떵를 맞추고 소금으로 간한다. 며칠 지나 소금이 다 녹고 나면 항아리에 담아 익힌다.
 
포토뉴스고추장은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 넘치거나 흰곰팡이가 생기기 쉽다. 따라서 고추장을 담글 때 간이 싱거워도 안 되고, 장독에 옮긴 후에 잡물이 들어가서도 안 된다. 항아리 를 깨끗이 씻어 잘 말린 다음 사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관할 때에는 반드시 항아리 주둥이를 밀폐시켜야 변질을 막을 수 있다.

고추장을 보관하는 항아리는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주둥이가 넓은 것을 사 용하는 것이 좋다. 짙은 붉은빛을 띠는 고추장을 깨끗한 항아리에 눌러 담은 다음 웃소금을 듬뿍 얹고 고운 망사로 덮어 맑은 날을 택해 2〜3일 간격으로 볕을 쬐어 주면 발효가 잘되고 영양 성분이 좋아진다.
 
된장 장독은 볕과 바람이 잘 드는 평평한 곳에 둔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뚜 껑을 잘 덮어두고, 청소를 할 때에도 물이  들어가지 않게 행주로 닦아내야 한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수시로 뚜껑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 이때 벌레가 들어가지 못 하도록 망사나 가제로 독 입구를 잘 봉해둔다. 밖에 두는 것이 마땅치 않다면 냉장 고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장을 뜰 때에는 물기 없는 숟가락이나 주걱을 이용하고, 뜨고 난 후에는 꼭꼭 눌러 주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한다. 곰팡이가 생겼을 때에는 된장을 퍼내고 곰팡이 와 물을 떠낸 다음, 더운물에 푼 메줏가루를 넣고 소금을 듬뿍 뿌린다. 여기에 된 장을 다시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면 된다

 

 

5. 항아리와 싱그러운 초록 식물로 꾸민 베란다 정원

남유선 씨의 아파트에는 항상 생기가 넘친다. 널찍한 베란 다에는 물론이고 집안 여기저기에도 초록 식물과 직접 재배 한 국화가 풍성하게 꽂혀 있다. 은은한 국화 향에 초록 식 물이 주는 싱그러움은 삭막할 수도 있는 남씨의 아파트를 ‘도심 속 공원’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포토뉴스남유선 씨(57·경기 김포시 장기동)의 집은‘ 아파트 같지 않은’ 아파트다. 시 골 장독간에나 있을 것 같은 항아리들이 거실은 물론이고 부엌, 베란다 여 기저기에 놓여 있다. 또 부엌 맞은 편 베란다는 온통 식물로 꾸며져 앞마당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남씨가 꽃보다 울창한 숲의 분위기를 좋아해 베란다에서 가꾸고 있 는 식물들도 온통 초록색이다. 초록 식물이 심어진 항아리 사이사이에 다양한 ? 양의 오래된 항아리가 장식처럼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시골집 장독대 같기도 하다.
 
포토뉴스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스킨답서스, 선인장, 아이비, 난초 등 비싸지 않고 가꾸기도 쉬운 식물들. 모두 집주인의 손길을 받아 반질반질 윤이 난다. 남씨 는 비싼 화분을 구입하는 대신 화원에서 버리는 식물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얻은 식물들을 정성을 쏟아 가꾸고 있다. 남씨의 취미는 항아리 모으기. 서울에서 생활 했던 남씨는 그동안 모아온 항아리와 식물들로 아파트가 좁아지자 지난해 4월, 미 련 없이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때문? 이곳에 오면서 가장 먼저, 가장 정성 들여 꾸민 곳도 베란다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이지만, 남씨가 이곳에서 얻는 마음의 위안 은 그보다 몇 배는 크기 때문이란다.
 
남유선 씨의 아파트에는 항아리가 없는 공간이 없다.

포토뉴스거실에 놓인 항아리들은 장식품으로, 부엌에 놓인 항 아리는 살림살이로, 현관에 놓인 항아리는 콘솔 대신 사용하고 있다. 베란다의 항아리는 식물을 재배하는 화기와 장식품으로 활용한다.
 

 

 

 

 

 

 

 

 

 

 

 

 

 

 

 

 

 

포토뉴스20여 년 가까이 모아온 항아리가 250여 개. 이제 항아 리에 그려진 문? 하나만으로도 어느 시대에, 어떤 용 도로 쓰였는지 알 정도로 전문가가 다 됐다. 남씨가 항 아리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중국으로 여행을 가, 그곳 에서 우리의 항아리를 보면서부터다. 그동안 그렇게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왜 진작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항 아리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단다. 그때부터 여기 저 기 돌아다니며 모아온 항아리들이 지금은 아파트 가 득이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용기도 항아리이고, 김장 김치도 항아리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할 정도로 항아 리에 대한 남씨의 예찬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