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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세계알기]

99%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반란 ??? 1% VS 99%

한아름정원 2011. 10. 18. 21:24

 

"나는 1%다. 하지만 99%를 지지한다"

[해외 시각] 한 연봉 11억 금융인의 고백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부유층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월스트리트 시위가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저항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미 공화당과 부유층은 시위대가 계급투쟁을 선동하고 있으며,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이들을 매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월가 시위대가 비판하는 대상은
통계적으로 산출된 '1%'가 아니다. 일례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을 때 월가 시위대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슈퍼 부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겨냥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부를 불리는 일에만 골몰하는 소수의 기업과 부자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이라는 보수
진영의 주장이 낙인찍기와 색깔론에 불과하는 것은 월가 시위대의 주장만이 아니다. 월가에서 일하는 한 금융인은 14일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보내면서 보수 진영의 편가르기 전략은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해고 위험 때문에 '브래드 마허'라는 필명을 사용한 이 금융인은 자신이 미국에서 1%에 근접한 수입올리는 부자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소득을 올리기 위해 개인적인 생활을 희생해야 했으며, 일부 슈퍼부자와 달리 자신도 '99%' 처럼 삶의 질을 높이기에 버거운 처지라고 털어놓았다.

필자는 사람들이 슈퍼부자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미국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그러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시위대에 지지를 보냈다. 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미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하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 월가 점령 운동의 동조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던 15일 호주 시드니의 호주중앙은행(RBA) 앞에서 한 남성이 '99% > 1%'라고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난 '1%'다. 하지만 '99%'를 지지한다.

가끔씩 분명히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내겐 바로 지금이다. 월가 점령 시위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이 시위를 폄훼하려는 노력도 커지고 있다. 사회주의자, 혹은 무정부주의자 군중(mob)이라 는 표현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적 이상에 휩쓸린 좌익 운동이라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반자본주의자들이라는 비난에는 [시위대를] 반미주의자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는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이들을 속이기 위해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고전전인 분열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편가르기에 저항하는 운동에 직면해 그러한 분열 전략은 실패했다.

아무도 나를 반자본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라고 비난할 수 없다.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굉장히 성공한 사람이다. 지난해 내가 벌어들인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대부분은 금융 관련 분야에서 일하면서 올린 소득이다. 나는 아직 내 경력의 절반 정도에 막 도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으로 봤을 때 해를 넘길수록 더 많은 소득을 올릴 것이다. 내 수입이 어느 수준일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상위 1%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임이 틀림없다.

나는 '점령하라'라는 깃발 아래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시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시스템의 심장부에서 일한다. 이 시스템에서 누구보다 성공한 사람으로서 나는 시위대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우리의 정치·경제와 사회적 가치 시스템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이 운동은 두 가지를 다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다.

나는 1%에 해당하지만 사실은 연대하고 있는 99% 안에 속해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내 자신이 다른 누구만큼이나 거대한 기계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직업을 선택하면서 치른 개인적 비용은 끔찍하다. 몇 년 동안 나는 사적인 시간에도 밤낮없이 블랙베리를 통해 전달된 글로벌 자본의 요구에 복종해왔다. 글로벌 자본은 내가 일주일 내내 언제나 응답할 것을 요구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 같은 끔찍한 나날이었다. 내가 그러한 요구에 따르는 것을 멈추는 순간 난 재고의 여지없이 버림받았을 것이다. 물론 난 이 직업을 선택해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항상 값이 오르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고 세금은 선택사항인 진짜 부자는 아니었다.

고맙게도 내 소득으로 다음 달 공과금이나 통화료를 낼 걱정이나 응급 상황에 대한 공포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믿기 힘들겠지만 난 역시 임금에 목을 매고 살았다. 세금과 값비싼 아파트 임대료를 뺀 소득으로 더 좋은 집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했다. 그것도 최근 [대학 시절 발생한]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뒤의 일이다.

물론 난 재량 소득[가처분 소득에서 생활비를 뺀 잔액]이 있다. 재미있는 건 돈을 좀 가지면 돈을 좇는 일이 가치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난 사치품이나 값비싼 차, 여러 채의 주택같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일의 매력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부를 탐내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그들의 삶은 너무 의미가 없어서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친구와 어울리는 소소한 즐거움에서 기쁨을 느끼기 못한다고 할까? 5000달러짜리 핸드백이나 50만 달러짜리 스포츠카로 채워야 하는 공허함은 대체 어떤 종류의 공허함인가.

난 그런 것들을 살 수 없는 이들처럼 질투심의 발로로 그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무가치함을 광고하는 물건들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당황스러울 뿐이다.

어떤 노력을 기울이거나 위험을 감수하는데 따른 보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현 상황이 우리의 가치, 우리 사회에 대한 열망의 정점일까? 우리의 성과가 고르지 않게 분배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왜 우리는 슈퍼부자들이 세금을 회피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시스템을 용인하는가?

사람들이 슈퍼부자를 갈망하도록 부추기는 우리의 가치 체계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빈곤 상태에 머물거나 세금과 학자금 대출, 기본적인 생활비만 간신히 감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슈퍼부자를 갈망하도록 하는 우리의 정치·경제 시스템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금융 산업에서 나오는 부의 대부분이 소수의 손에 들어가는 반면 [금융시장의 실패로 인한] 손실은 일반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시스템이 구축될 때 더 도드라진다.

 

▲ 월가 시위를 본 딴 영국의 '런던 증권거래소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런던 세인트 폴 성당 앞에서 '자본주의는 위기다'라는 현수막을 건 채 텐트를 치고 노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난 시스템 속에서 성공해온 만큼 부가 공평하지 않게 전달되도록 조작된 정치·경제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살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어느 누구도 집이 없거나 굶주리면서 의료 보장을 못 받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에 충분한 부가 있다. 한 시스템에서 기업가 정신과 혁신, 위험 감수와 중노동에 대한 보상과 사회보장 제도가 공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강력한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실현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월가 점령 시위에 지지를 보낸다. 또 우리의 사상가와 창조가, 나와 같은 전문직들이 자신의 재능과 관점을 물질 만능주의적인 가치 체제의 무가치함과 우리의 경제·경제의 도덕적 파산을 지적하는데 쓰기를 요청한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